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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사 / 레이몬드 카 外 / 까치>
전체적으로 볼 때 스페인은 소규모의 서로 적대적인 혹은 무관심한 여러 공화국들이 하나의 느슨한 연방 형태로 묶여 있다. 몇몇 위대한 시기(중세 칼리프 시대, 레콩키스타 시대, 황금세기)에 이 작은 중심들이 공동의 감정 혹은 이념을 공유함으로써 화합으로 나아가기도 했지만, 얼마 가지 않아 그 약효가 떨어지면 그들은 다시 뿔뿔이 흩어졌고, 독립적이고 이기적인 존재로 돌아갔다.
스페인은 독립적인 여러 작은 정치체들로 구성된 나라이다. 그들은 서로 적대적이며, 서로를 괴롭히고 경멸하며, 끊임없이 전쟁을 한다. 각 지방, 각 종교 단체, 각 직업은 다른 지방, 다른 종교 단체, 다른 직업과 분리되어 있고, 자기들끼리 뭉친다. 근대 스페인은 에너지가 없는, 그리고 각각의 특정한 이해가 보편적 이해와 상치되기 때문에 항상 서로 적대시하는, 작은 공화국들로 이루어진 괴물 같은 나라라고 할 수 있다.
이미 다른 포스팅을 통해 여러 차례 언급한 바 있지만, 개인적으로 스페인이라는 나라에 대해 관심이 많은 편이다. 또한 역사책 읽기를 좋아하다보니, 자연히 스페인사 책을 찾게 되었다. 가볍게 읽는 개론서가 아니라, 그보다 심층적으로 다룬 스페인사 서적은 국내에 사실상 이 책 한 권인 것 같다.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갈 수록 정치지형이 너무 복잡해져서 흐름을 구분하기 어려웠던 것을 제외하고는 상당히 흥미롭게 읽었다.
유럽사, 그 가운데에서도 고대사를 읽다 보면 항상 따라붙는 궁금증이, 로마제국의 전성기에 로마제국의 바깥 영역에 있던 유럽대륙의 역사는 도대체 어떻게 진행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로마군이 게르만 족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을 정벌했다는둥의 문헌이 나오기는 하지만, 반달족이니 수에비족, 고트족, 프랑크족에 이르기까지 영토조차 불명확한 초기국가(국가라고 하기도 어려운 부족사회)들이 정확히 어떤 모양새를 갖추고 살았는지 문득문득 궁금해지는 것이다.
이 책은 그나마 구체적으로 스페인사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로마시대~비시고트시대~초기중세시대에 이르는 스페인을 파악하기 위한 고문헌이 너무 부족하다는 점을 고백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스페인이라는 나라의 윤곽이 잡히는 것이 중세 후기, 그러니까 10세기도 훨씬 지난 시점부터였으니 고대사에 대한 궁금증이 완전히 해소되지는 않았다. 뭔가 이렇게까지 이야기하니 역덕(?) 같다. 그렇지만 신라, 백제, 고구려의 삼국시대에 대해 기원전 역사부터 비교적 상세히 파악할 수 있는 우리의 역사가 길긴 길구나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책은 선사시대, 고대사, 중세사, 근대사, 현대사 각 부문의 권위적인 학자의 서술로 구성되어 있다. 중세사 파트에서는, 프랑스의 경우 프랑크족을, 독일의 경우 게르만족을 모태로 삼고 있듯, 스페인의 경우 비시고트족(또는 서고트족)을 정체성으로 삼아도 무방하다고 말한다. 다만 정체성이 명확해지려는 시점에 아랍세력이 침투함으로써 북유럽과는 달리 정체성의 위기와 굴절을 겪었다는 점 또한 언급한다.
쉽지도 않은 내용을 끝까지 노력하며 읽어가긴 했지만, 사실 서문만 해도 스페인의 역사에 대해 훌륭히 압축하고 있다고 본다. 위에 발췌한 내용 역시 서문에서 뽑은 내용이다.
개인적으로 스페인내에서 분리주의 운동이 거세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 기원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지 못했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스페인의 자연적, 문화적 환경이 지역에 따라 매우 상이하며, 그 결과 기반산업과 생활양식의 경로 자체가 달라졌고, 이러한 사실은 스페인 역사에 역동성을 불어넣는 한편 불협화음의 단초가 되기도 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특히, 공화군과 국민군간의 내전이 격화되었던 근현대사 부분을 주의깊게 읽었다. 마치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가톨릭교를 등에 업은 보수주의적 국민군의 승리와 프랑코 독재정권의 수립에 이르기까지의 험난한 여정은, 한때 은화(銀貨)를 쌓아올리며 세계를 호령하던 스페인제국의 영광과 무적함대의 위용과 비교해볼 때 참으로 초라한 것이었다. 부침(浮沈)의 역사 속에서도 뛰어난 예술가와 소설가들이 등장하여 국제사회에 스페인에 대한 또렷한 인상을 각인시켰다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페인이라는 나라가 지닌 저력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여튼..급작스러운 마무리이지만 이번 포스팅의 마무리는 조금 특별하게 피카소의 <게르니카>와 <한국전쟁>으로 대신하고자 한다.
#게르니카(피카소 作)
#한국전쟁(피카소 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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