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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4 / 아그라에서의 첫날을 마무리하며여행/2017 북인도 2017. 2. 21. 15:30
숙소 옥상에서 바라본 타지 마할
아그라로 가는 마지막 버스가 떠나기 전에 가까스로 버스정류소에 도착했다. 어떻게 알았는지 정류소의 레스토랑 주인이 내게 와서 반색한다. 그러더니 강매하다시피 자신의 레스토랑으로 끌고 간다. 그 와중에 나는 버스기사에게 버스 출발시각을 물어봤다. 5분내 출발.
맨 처음 그가 메인 입구로 가라며 길을 알려줄 때 보여준 호의는 감동적일 정도였다. 그렇지만 지금 이때만큼은 으르렁대는 맹수 같았다. 아예 대놓고 내 지갑 안에 현찰이 얼마나 들어 있는지 묻는다. 대화가 이 정도에 이르면 나도 가차 없이 등을 돌려야 하는데, 도대체 무엇 때문에 사람이 이토록 인간성을 내려놓는 건지 안타깝다는 생각마저 들어서, 원치않은 물품이라도 그냥 사주려 했다.
그런데 하필 아그라역에서 숙소로 이동하는 동안 운전수와 한바탕 실랑이를 벌이느라, 지갑에 현금을 챙겨온다는 게 깜박했다. 현금이 넉넉했다면 마실 거라도 사고 끝냈을 텐데, 현금까지 없다니 상대방이 이를 바득바득 가는 게 보였다.
버스가 출발 채비를 하니 정말 이젠 나도 발걸음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보아 하니 그가 원하는 건 커다란 돈이었는데 내게서 얻어낼 게 푼돈뿐이라는 걸 깨닫자 나는 이미 쓸모없는 폐품이었다. 나의 쓸모없음을 깨달은 나도 아쉬울 것 없이 버스에 몸을 실었다.
숙소로 돌아온 뒤에 숙소 직원에게 오늘 겪은 일을 이야기했다. 그러자 되돌아온 말이 무슬림 밀집지역은 항상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었지만, 그렇다면 델리는 뭔가. 더하면 더했지 아그라보다 결코 덜하지는 않았다. 심리적인 소진상태가 될 지경이었다.
가난은 인도사람들에게 등식과도 같은 것이다. 인도에 있으면서 충격적인 장면들을 많이 보았다. 불과 삼일뿐이었지만 말이다. 쓰레기더미를 뒤져 먹을 것을 찾는 소와 돼지, 옆에서 열차가 달리는데도 아무렇지 않게 철로를 왔다갔다 하는 사람들, 기차를 바라보며 노상방뇨를 하는 사람들, 반나체로 길바닥에 늘어져 있는 사람들, 무방비로 뛰어다니는 아이들. 아그라행 열차 안에서 한 백인커플은 차창밖을 보며 연신 'interesting'이라며 감탄사를 남발했다.
마치 동물원 우리 안에 갇힌 동물을 구경하는 듯한 그들의 표현이 지나치게 무심하다 싶기는 했지만, 사실이 그랬다. 그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모습이다. 나는 이를 헝가리 청년에게 'chaotic'이라는 표현으로 바꿔 말했다. 인도에서는 앞과 뒤가 바뀌고 왼쪽과 오른쪽이 바뀐 것 같다. 그런 곳이 인도다.
화장실조차 갖춰지지 않은 천막에서 살아가는 여성이 갓난아기를 품에 안고 있는데, 사리 차림에 미간에는 빈디를 칠하고 있다. 집과 화장실이 없는데, 종교적인 구색을 갖춰봐야 뭐한담? 인도사람의 절반은 릭샤 운전수가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만큼 릭샤가 넘쳐난다. 먹을 것은 풍족한데 인도사람들은 왜 이렇게 가난하고 민심이 흉흉한 것일까. 왜 이렇게 직장도 없이 거리에 나앉은 사람이 많은 걸까. 이런 나라에서 우주로 위성은 어떻게 쏘아올렸을까. 어떻게 인도에서 아라비아 숫자가 탄생했을까. 이 모든 것들이 아무런 개연성이 없어보이는데, 단지 '인도'라는 이름 하나로 묶인다. 표준적인 인도인의 모습이라는 것을 아무리 봐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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