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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5 / 악바르의 묘(Akbar's tomb, Sikandra)여행/2017 북인도 2017. 2. 23. 16:05
시칸드라에 위치한 악바르의 묘
비즐리 정류소
이번에는 전도사가 무슨 설교를 하면서 종이를 나눠주고 있었다
버스에서 찍어서 사진이 약간 흔들렸다
머리가 하얗게 센 나이든 남성들의 경우에는 주황, 분홍의 헤나로 머리를 염색한 경우도 많았다
또한 사진에서처럼 남자들의 경우에도 미간에 빈디를 칠하는 경우도 많은데, 현지인한테 남자가 빈디를 칠하는 의미를 물어봤지만 정확히는 모르겠다
아마 여자와 비슷한 이유(기혼이라는 것을 표시)로 하는 것 같다고 대답해 주었다
인도의 길거리에는 유달리 인물 동상이 많다
게다가 꽃으로 화려하게 장식까지 해놨다
먼저 시칸드라로 가기 위해서는 비즐리 버스정류소로 가야했다. 타지 간즈에서는 정류소까지 거리가 꽤 되기 때문에 릭샤를 타야 했다. 릭샤를 탈 생각을 할 때마다 괜히 짜증이 난다. 아니나 다를까, 릭샤 운전수가 가다 말고 멈춰서서는 여기가 비즐리 버스정류소라고 한다. 몇 대 버스가 주차돼 있는 건 같기는 하다. 하지만 이건 어설퍼도 너무 어설프고 노골적이어도 너무 노골적이다. 운전수들이 하도 술수를 써서 릭샤를 탈 때마다 구글맵을 켜두는데, 비즐리 정류소까지 채 절반밖에 안 왔다. 아그라에 버스 정류소라고 해봤자 이드가 정류소와 비즐리 정류소 정도인데, 운전수가 이를 모를 리 없다.
그러고서는 50루피를 더 주면 비즐리 정류소까지 데려다 주겠다는데, 일단 비즐리 정류소로 가달라고 몇 번을 반복해서 말했다. 그리고 비즐리 정류소에 도착해서는 애초에 약속한 대로 100루피만 주었다. 운전수가 추가금액 50루피를 달라고 따진다. 거짓말 치지말라고 소리치자, 가까이에 서 있던 몇몇 시민들이 릭샤 운전수를 멀뚱멀뚱 쳐다본다. 릭샤 운전수도 멋쩍었는지 내 앞에서 유유히 사라진다. 아마 평범한 인도사람들도 모두 외국인들을 대하는 릭샤 운전수들의 이런 행패와 꼼수를 잘 알 것이다. 누가 봐도 너무나 노골적이므로..
우리나라의 70~80년대처럼 인도의 버스에는 버스 기사 외에 정류소의 위치를 알려주고 문을 여닫는 보조직원이 한 명 더 있다
내가 시칸드라로 가는 것을 알고 친절히 내릴 위치를 알려주었다
J를 만난 게 바로 이때다
악바르의 묘로 진입하는 길
잠시 아프리카 사파리에 온 줄..;;;
시칸드라로 향하는 버스는 파테뿌르 시크리로 향하는 버스보다 더 낡았고, 더 현지인들 뿐이었다. 딱 나만 외국인인 것 같았는데, 나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나중에서야 나 말고 또 다른 동양인이 버스에 타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의 이름은 J. 자연스레 악바르의 묘에 동행하였다.
악바르의 묘의 가장 특징적인 점이라면 단(壇)에 오르기 전에 작은 문이 세워져 있다는 점이다
악바르 대제는 포용적인 종교 정책을 지지했던 만큼, 본인이 무슬림임에도 불구하고
건축에 힌두교, 자이나교, 심지어 기독교의 양식까지 차용하는 것에 거부감이 없었다고 한다
놀라울 만큼 문양이 다양하다
악바르 묘의 입구
악바르의 묘에 다 도착한 후에 찍다보니 역광으로 나왔다
입구만 해도 아름답다
J라고 소개한 이 말레이계 호주인 친구는 벌써 2년 반째 아시아 국가를 여행하는 중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인 중에 버스를 이용하는 사람은 처음 본다고 했다. 원래 회계사로 일했었다는 그는 본인의 일에 회의를 느껴 일을 그만 둔 뒤 여행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 가운데에서도 아시아 국가만 여행하고 있었는데, 편의시설이나 교통망이 잘 갖춰져 있는 유럽이나 북미는 나이가 들어서도 얼마든 갈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이야기하느라 건물을 제대로 둘러보지 못한 것 같다
악바르의 묘에 대한 인상이 딱히 남아 있진 않았는데, 사진을 보면서 기억을 되살리는 중이다
악바르의 묘 정문
타지마할이 순백색으로 통일된 아름다움이었다면 악바르의 묘는 다른 건축물들에 비해 보는 재미가 색달랐던 건물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이 다음 일정에 들른 미니 타지마할이 이와 비슷한 느낌의 아기자기함이 있었다
2월이라는 게 무색하게 수풀이 우거지다
한국에서는 10개월이나 머물렀는데, 지금까지 여행한 곳 가운데, 한국과 중국의 쓰촨성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본인이 여행다닌 궤적을 남긴 구글맵을 보여주는데, 한국에서 안 가본 곳이 없다. 최남서단에 있다는 가거도에서부터 최동단에 있는 독도에 이르기까지 나보다 한국을 더 잘 아는 것 같다 싶을 정도로 자세하게 여행을 하고 다녔다. 나는 그를 여행 전문가라고 불렀다.
악바르의 묘 문양
건물의 내부
델리의 자마 마스지드에 샹들리에가 달려 있던 것처럼
악바르의 묘 입구중앙에는 팔각기둥 모양의 등이 대롱대롱 메달려 있었다
한국에 관해서는 한국의 산이 마음에 든다고 했다. 진짜 특이한 친구다. 내게 한국은 너무 익숙해서 산이든 도시든 그렇게까지 감흥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하니, 잘못 알고 있다고. 한국은 산이 정말 아름다운 곳이라고 말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산은 통영의 관망지리산이라고 했다. 처음 그가 능숙하지 않은 발음으로 '관망지리산'을 말할 때는 도대체 뭘 말하는 건가 싶기도 했고, 나 또한 통영 자체를 가본 적이 없다보니 무슨 산을 말하는 건가 싶었다. 나중에 뜻을 풀이하다보니 산의 정상을 오르면 지리산이 바라다 보여서 관망지리산(觀望智異山)이라고. 그냥 어설프게 산을 다니는 것도 아니었다. 산을 가면 꼭 정상까지 트레킹을 한다고 했다. 신통방통하다. (나중에 찾아 보니 통영 사량도의 지리망산을 말한 것 같다. 어찌 됐든 나는 여전히 처음 들어보는 지명이었다)
시계 방향으로 돌아보는 중
동서남북으로 문이 설치되어 있었다
저 멀리 보이는 건물은 악바르 대제의 아들 제항기르의 부인이 거주했던 공간이었다는데
좀 잘 이해되지는 않는다
악바르의 묘를 둘러보면서 인도에 대한 인상을 서로 공유했다. 나는 반반이라고 말했고, 그는 인도가 싫다고 말했다. 그는 도시를 구경하는 것보다는 자연경관을 보는 것이 좋다고 했는데, 인도에는 한국처럼 볼 만한 지형지물이 없다고 했다. 무엇보다 쓰레기가 넘쳐나고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태도가 싫다고 했다. 훌륭한 문화유산을 갖고 있고 그것이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으면, 유네스코에서 수령하는 보조금으로 유적을 잘 관리해야 하는데 유적지에 쓰레기가 넘쳐난다는 것이다. 내국인과 외국인간에 입장료 차이를 터무니 없이 크게 두는 것도 불만이라고 했다. 다른 나라는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오히려 외국인에게 혜택을 부여하는 마당에, 여기에서는 상황이 정반대일 뿐만 아니라 외국인을 돈으로 보는 경향이 심해서 불쾌하다고 했다. 끝으로 이번에 인도를 여행하는 것으로 다시는 인도를 오고 싶지 않다는 결론에 이르렀다'~';;(이야기에 막힘이 없어서 꿀먹은 벙어리처럼 듣고만 있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그렇기 때문에 이번 여행에서 인도를 꼼꼼히 둘러보는 게 그의 여행방침이었다. 자기 생각이 분명하다고 느꼈다.
건물의 회랑
그러고 보니 이날 점심도 건너뛰었던 것 같다
그랬으니 오후 일정을 그렇게 빡빡하게 돌아다닐 수 있었나보다
글쎄, 당시에 J의 말에 구구절절 공감하면서도 나는 여전히 뭔가 인도의 긍정적인 면이 분명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헝가리 친구가 인도에 대한 인상을 물어왔을 때에도 나는 확실한 답을 하는 대신, 어떤 면에서는 좋고 어떤 면에서는 싫다고 대답했다. 아직 인도라는 곳에 대해 명확히 의견을 내놓기에 턱없이 짧은 시간을 머물렀을 뿐이었다. 이후에도 J 는 몇 번 나한테 인도에 다시 올 생각이 있냐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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