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일 전쟁터에서 나를 생각하라일상/book 2017. 3. 7. 17:30
<내일 전쟁터에서 나를 생각하라 / 하비에르 마리아스 / 문학과 지성사>
'내일 전쟁터에서 나를 생각하고 네 무딘 칼을 떨어뜨려라. 내일 전쟁터에서 내가 살아 있었을 때의 모습을 생각하고, 네 녹슨 칼을 떨어뜨려라. 내일 내가 네 영혼을 무겁게 짓누를 것이고, 네 가슴 속으로 들어가 피비린내 나는 전투에서 네 생을 마감시키리라. 내일 전쟁터에서 나를 생각하라. 그럼 절망에 빠져 죽을 것이다'
수많은 일이 일어나지만 아무도 그런 사실을 알거나 기억하지 못해. 순간적인 생각이나 움직임, 우리의 계획과 소망, 말할 수 없는 의심이나 몽상, 잔인한 행위나 욕설, 우리가 했던 말이나 들은 말, 나중에 부정했거나 오해했거나 왜곡시킨 말. 지키겠다고 약속해놓고 지키지 않은 약속들에 대한 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아. 심지어는 그런 행동을 한 사람들도 모두 잊어버리거나 없었던 일로 생각해. 혼자 하거나 기록하지 않은 모든 것들은 잊히게 마련이야. 또한 혼자가 아니라 함께한 것도 거의 다 잊혀져. 우리에게 남겨진 흔적은 거의 없고, 그나마 얼마 안 되는 흔적에 관해서도 대부분 입을 다물어. 따라서 입을 다물지 않고 기억하는 것은 극히 일부분에 불과할 뿐이야. 사람은 자기 기억을 만드는 데 정신이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기억에 관해서는 관심도 없어.
―p. 87
우리는 의견을 가지고 태어나는 게 아니라, 단지 욕망만 가지고, 그러니까 최초의 욕망만 가지고 태어날 뿐이야. 그러나 이런 차원을 넘어 나는 다른 사람의 인생, 특히 극단적인 경우에 해당하는 우리 같은 인생을 계획해줄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내 자신에게 질문한다네. 자네도 알겠지만 이건 중요한 문제일세. 한 체제를 대표한다는 것은 첫째로, 개인의 자유를 대부분 상실한다는 걸 의미하지. 그리고 둘째로, 그것은 내가 생각하지 않아도 될 것을 생각하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뜻이네. 누구든 의무적이지 않은 것을 생각하는 것, 즉 자기와 상관없는 일을 생각하고, 생각 속에서 방황하는 행동은 인생에서 근본적인 거야.
―p. 193
<새하얀 마음>을 읽은 뒤로 하비에르 마리아스의 작품을 읽는 것은 두 번째다. <새하얀 마음>이 딱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모처럼 소설을 읽으려고 생각하다가 떠오른 게 하비에르 마리아스의 <내일 전쟁터에서 나를 생각하라>이다. (사실 맨 처음 그의 작품을 접한 것도 스페인어 문학계에서 가장 노벨상 수상이 유력시된다는 지극히 단순한 이유에서였다) <새하얀 마음>이 맥베스에서 모티브를 따온 것과 마찬가지로, <내일 전쟁터에서 나를 생각하라> 역시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등장하는 구절이다. 그 작품은 <리처드 3세>다.
우선 셰익스피어의 작품 가운데 <리처드 3세>가 있다는 사실도 잘 몰랐지만, 이쯤 되면 작가가 왜 이토록 셰익스피어를 흠모(?!)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그의 인터뷰들을 몇 개 찾아보았다. 대단한 이유랄 건 없고, 셰익스피어의 문학을 읽다보면 곁길로 샐 만한 해석의 여지가 많다는 것이 그가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 영감을 구하는 까닭이었다. 더불어 알게 된 사실은, 중세의 작가가 아닌 현대의 작가 가운데에서는 오르한 파묵, A.S. 바이엇, W.G. 제발트를 좋아한다는 것 정도였다.
그렇다면 <리처드 3세>와 <내일 전쟁터에서 나를 생각하라> 간의 연결고리가 무엇인가 하는 의문점이 남는다. 먼저 실존 인물인 리처드 3세가 누구인가 하는 점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리처드 3세는 요크 왕조(House of York)의 마지막 왕으로, 어린 조카를 죽이고 왕위를 찬탈한 인물이다. (조선왕조에 비유하자면 세조 쯤 될까) 셰익스피어가 요크 왕조 뒤에 들어선 튜더 왕조(House of Tudor) 시기에 활동했으니까, 리처드 3세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윤색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셰익스피어의 희곡에서 리처드 3세는 포악하고 패륜적인 면모가 부각된다. 그리고 리처드 3세는 <내일 전쟁터에서 나를 생각하라>에서 데안(Dean)에게 투영된다고 할 수 있다.
또는 시점의 제공자인 빅토르(Victor)에게 투영된다고도 할 수 있다. 시간에 의해 굴절되는 인간의 기억, 욕망에 따라 뒤틀리는 표면적 의사(意思), 표면적인 것에 의해 은폐되는 실체... 이 모든 것들이 빅토르에게 혼란을 가져오지만, 안개에 가려진 소용돌이의 와중에서도 그는 침착하게 자신의 답변을 구한다.
소설에서 또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점은, 소설에 등장하는 두 편의 영화다. 소설 속에서는 무의미하게 틀어놓는 영화처럼 묘사되지만 오손 웰스(Orson Welles)의 <한밤중의 차임벨(Chimes at Midnight)>과 미첼 레이센(Mitchel Leisen)의 <그 밤을 기억해요(Remember the Night)>가 등장한다. 이 가운데 <한밤중의 차임벨>이라는 영화 역시 셰익스피어가 자신의 작품에 즐겨 등장시켰던 팔스타프(Falstaff)라는 인물을 차용하고 있다. 허영심 많지만 겁많은 기사로 묘사되는 팔스타프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에는 세 차례 활용되었고, 이후 많은 예술가들(예를 들어 베르디의 오페라에도 팔스타프가 나온다)에게 영감을 준 캐릭터다. 이러한 맥락에서 팔스타프 역시 데안이라는 인물에 곧바로 대입할 수 있을 것 같다.
소설은 이처럼 입체적이고 다면적으로 인간의 내면을 파헤치고, 세상이 작동하는 원리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너무 애매모호한 그의 문체 때문에 주제가 묘연하다고 느끼기도 했다. 특히 하나의 문장이 길 뿐만 아니라, 한 단락도 긴 편이라 '가볍게' 읽히지가 않는다. 그렇지만 그가 다루는 내용이나 표현방식은 확실히 기발하다.
<새하얀 마음>에서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내일 전쟁터에서 나를 생각하라>에서도 일상적이지 않은 죽음이 전면에 등장하는데, 그가 다루는 죽음의 특징은 그 원인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그가 문제 삼는 것은 무엇이 우리를 죽음으로 이끄는가 하는 인과관계가 아니라, 죽음들을 둘러싸고 삶을 이어가는 우리 인간이 마주하는 근본적 문제들이다. 그런 면에서 이 소설은 다른 문학작품과 다르다. 많은 비극이 끝내 죽음을 택하는 주인공(대표적으로 <안나 카레니나>)을 등장시킨다면, 하비에르 마리아스가 만들어내는 화음(和音)에 '죽음'이라는 선율은 으뜸음으로 전제되어 있다.
여하간 '마음을 한바탕 휘저어 놓는 작품'이라기보다는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 작품'이었다. 그것도 그 나름대로 나쁘지 않았지만, 다음 소설은 좀 가슴을 뜨겁게 하는 작품을 읽고 싶다...'~' 그리고..하비에르 마리아스가 개인적으로 좋아한다는 A.S. 바이엇, W.G. 제발트의 작품들도 한 번 찾아봐야겠다:)
'일상 > book'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프리카 대륙의 일대기 (0) 2017.03.19 기업, 인류 최고의 발명품 (0) 2017.03.10 발칸의 역사 (2) 2017.03.05 비스마르크에서 히틀러까지 (0) 2017.03.03 영국사 (0) 2017.0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