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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칸의 역사 / 마크 마조워 / 을유문화사>
유럽의 역사를 이해하려면 불가피하게 퍼즐 조각을 맞춰나가듯 각국의 역사를 읽어야 하는 것 같다. 맨 처음으로 읽었던 게 유럽의 서쪽 끝 <스페인사>였다. 그 다음이 유럽의 동쪽에 떡하니 버티고 있는 <러시아의 역사>였다. 이후 프랑스사-영국사-독일사 순으로 읽다보니, <발칸의 역사>를 읽기에 이르렀다. 맨처음 <스페인사>를 읽을 때에는, 이렇게 유럽의 역사를 쭈욱 훑어보자는 구상을 했던 건 아니었는데, 어쩌다 보니 발칸사에 이르렀다. 기회가 닿는다면 '이탈리아의 역사'도 읽고 싶기는 하지만, 독일처럼 통일국가의 역사가 짧기 때문에 적당한 책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아직 북유럽의 역사도 읽어보지 않았지만, 이 역시 나중에 기회가 닿으면 읽어봐야겠다. 북유럽은 '신화'를 주제로한 책을 읽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원래 독일사에 관한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은 했었지만, 발칸사를 읽은 것은 순전히 호기심 때문이다. 유럽에서 영토간의 경계가 가장 복잡한 곳이 이 발칸 지역이다. 게다가 얼마전까지 코소보 지역의 내전은 국제적으로 큰 문제였다. 머릿속에 둥둥 떠다니는 그 정도의 이미지를 갖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운이 좋았던 것이, <비스마르크에서 히틀러>도 그렇고 <발칸의 역사> 또한 책의 초반부터 '개념'과 '용어'를 확실히 짚고 넘어가고 어렵지 않는 문장을 사용해서 몰입하기 쉬웠다는 점이다.
◀ 전 유고슬라비아 대통령, 슬로보단 밀로셰비치(Slobodan Milošević)
수많은 서구 옹호자가 소망한 대로, 과연 발칸 민족들은 스스로 통치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결과는 어땠는가? 서로 간의 질시와 내분에 시달리는, 자생력이 없고 하잘 것 없는 나라들의 집합체가 되지 않았던가?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민족국가들이 무제한으로 확산하는 것을 반대한 자들이 우려한 '분열된 작은 국가 집단'의 모습이었다. 독일, 이탈리아와 같은 신생국들의 경우 19세기의 민족주의가 노후한 소국들을 더 크고 합리적인 경제 통합체로 묶어주는 역할을 했으나, 발칸의 경우는 그것이 반대의 결과로 나타났다.
"이곳의 이슬람교도는 진정한 이슬람교도가 아니다. 기독교인도 진정한 기독교인이 아니다" … "기독교도와 무슬림 사이에 끼어 살며 논쟁에 익숙지 않은 사람들은, 이 둘 중 어느 것이 더 좋은 종교인지 도무지 분간이 안 간다고 털어놓는다. 그러면서도 진리를 거부하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아주 신중하게 두 종교를 함께 믿으면서 금요일에는 모스크에 가고 일요일에는 교회를 다닌다" … 어떤 종교를 믿느냐는 질문에 마케도니아의 농부들은 성호를 그으며 "우리는 성모마리아를 믿는 무슬림입니다"라고 조심스럽게 답했다. … "무슬림에게 교회에 다니는 이유를 물으면 그들은, 오랜경험으로도 입증되었듯이 예로부터 유용성보다는 관습이 더 오래 가는 경우가 많았고, 따라서 우리보다 더 많이 알고 더 많이 볼 줄 알았던 고대인들이 인정한 관습이라고 말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자주 떠올랐던 생각은 '국민국가'라는 것이 불과 반세기 전까지도, 또는 지금까지도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매우 생소한 개념이었다는 것이다. 오늘날에는 국가를 이루는 제일의 구성단위가 '국민'인 것이 당연시되지만, 이곳 발칸반도에서는 비잔티움 시대 이래로 '종교'가 지역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제일의 요인이었다. 그것이 19세기 무렵 '민족'이라는 개념과 혼합되면서 발칸반도 전체가 정체성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코소보, 동티모르, 남수단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국가에 대한 합의를 제대로 보지 못한 지역에서 영토변경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이 지역은 오랫동안 무슬림과 기독교인들이 평화롭게 공존하던 지역이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종교에 따라 적 또는 동맹을 가른다는 것이 얼마나 인위적인 것인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이슬람교나 기독교나 (더 나아가서는 유대교도) 하나의 뿌리를 두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서로 다른 종교를 공생시킬 수 있었던 종래의 관용적인 정책은 '국민국가'를 수립해야 한다는 우선과제에 밀려 산산조각이 나고 만다.
루마니아의 전 대통령, 니콜라에 차우셰스쿠(Nicolae Ceausescu) ▶
개종하면 으레, 배교, 실존적 고뇌, 개인, 국가적 배신을 떠올리기 마련인 우리와 달리, 오스만제국의 많은 사람은 '진정한 신앙'을 위해 '이교도 종교'의 '무지한 세계'를 떠나는 것을 크게 중요시하거나 갑작스러운 일로 여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들의 관점으로는 한 종교에서 다른 종교로 이동하는 것이 한 종교를 포기하고 다른 종교에 빠져드는 행위라기보다는, 구종교에 새로운 종교를 하나 덧붙이는 행위로 보였다. 기독교에서 이슬람으로 개종한 사람이 부활절이 되면 계란에 계속 색칠을 했고, 유대인에서 무슬림으로 개종한 자들도 자신들 집에서 비밀리에 유대교 예배를 보았다.
현대 발칸의 정치 지형도는 프랑스혁명을 시작으로 1923년 오스만제국이 최후로 붕괴하기까지 기나긴 19세기를 거치며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냈다. 민족성의 원칙으로 구성된 독립 국가들이 로마인들의 계승자, '신의 노예이며 이 세상의 술탄'인, 오스만제국의 황제 아래 500년 역사를 이어온 제국을 대신해 들어선 것이다. 이 같은 발칸 민족주의의 승리는 일부, 봉기와 저항으로 오스만 지배가 붕괴하는 데 도움을 준 반칸인 자신의 노력으로 이룬 것이었다. 그런 반면 이들의 노력은 또, 그 자체로는 결실을 맺지 못하고 유럽 강대국들의 힘을 빌려서야 결실을 맺은 무기력한 것이기도 했다. 제1차 세계대전은 해방을 위한 발칸의 이 같은 투쟁과 유럽 국가 체계의 복잡한 관계가 정점에 달한 사건이었다.
이 과정에서 유고슬라비아에서는 밀로셰비치에 의해 인종청소(정말 혐오스러운 표현이다)가 자행되는가 하면, 루마니아에서는 차우셰스쿠에 의한 독재정권이 수립되어 자국민을 탄압하기에 이른다. (차우셰스쿠 정권하 루마니아의 음울한 시대상은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바 있는 <4개월 3주 그리고 2일>이라는 영화에 잘 묘사되어 있다)
문제는 소위 국민국가의 면모를 갖추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이 시기에 국민들은 무엇을 했는가 하는 점이다. 서유럽에 비해 한참 산업화가 뒤쳐진 발칸반도에서 대다수의 주민은 농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그러나 농민들은 왜 정당을 통해 독자적인 정치세력을 만들어내는 데 실패했는가? 발칸의 생활상 그 자체인 농민들이 정치세력을 만들어냈다면 발칸반도 내의 경계선 긋기는 좀 더 평화적으로 진행될 수 있지 않았을까? 이에 대해서도 저자는 당시 발칸반도에서 국민국가를 주창했던 사람들의 한계를 명확히 지적한다.
마치면서...
<비스마르크에서 히틀러까지>와 <발칸의 역사>를 읽으면서 계속 뇌리를 떠나지 않았던 것이 북위 38도를 기준으로 그어진 한반도의 휴전선이다. <비스마르크에서 히틀러까지>에서 깊은 통찰력을 보여준 제바스티안 하프너는 책을 발간할 당시만 해도 서독과 동독의 통일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현실적으로 통일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기정사실화했다. 주변국의 어느 국가도 독일의 통일을 원치 않는다는 것이 주된 까닭이었다. 하지만 89년 독일 통일을 목격한 뒤, 저자는 기존의 <비스마르크에서 히틀러까지> 말미에 통일에 대한 답변의 글을 덧붙여야만 했다.
이런 것을 보면 국가와 국가간의 경계를 정하는 것, 민족적 과업을 달성하는 것, 통일을 이루어내는 것이 얼마나 험난한 것인가 하는 점을 다시 한 번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유럽각국의 역사 모두 재미있게 읽었지만, '독일사'와 '발칸사'가 유달리 남다르게 다가왔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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