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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드라마/이상일
/에피소드 A (치바) : 마키(와타나베 켄), 아이코(미야자키 아오이), 타시로(마츠야마 켄이치),
에피소드 B (오키나와) : 다나카(모리야마 미라이), 이즈미(히로세 스즈),
에피소드 C (도쿄) : 유마(츠마부키 사토시), 나오토(아야노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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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라는 감정을 일본영화가 어떤 느낌으로 표현할지 궁금했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아직까지 일본사회가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는 데 인색하기 때문이다.
희노애락(喜怒哀樂) 가운데 '노(怒)'는 인간이 가장 '인간다움'을 내려놓는 감정이다. 물론 그것도 인간이 자연히 느끼는 감정의 일부지만 말이다. 여하간 그런 감정을 일본영화가 어떻게 그려낼지가 궁금했는데 기대 이상이었다. 츠마부키 사토시는 물론이고, 특히 두 여배우의 연기가 눈에 띄었다. 미야자키 아오이는 <행복한 사전>이라는 영화에서 딱 한 번 본 적이 있었고, 히로세 스즈는 <바닷마을 다이어리>에서 딱 한 번 본 적이 있다. 그 때는 몰랐는데, 이 영화에서 연기가 대단했다;; (나머지 배우들의 연기도 좋았는데, 이 영화에서 처음 보는 얼굴들이었다)
영화가 끝난 뒤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감독은 재일교포 3세인 이상일 씨가 맡았다. (고등학교 때 교실에서 틀어주던 <훌라 걸스>의 감독이었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또한 영화의 원작은 요시다 슈이치의 동명 소설로, 도쿄 교외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을 연결고리로 서로 다른 세 가지 에피소드를 교차시킨다. (소설 원작을 따로 읽어본 적은 없다) 그런데 정작 '살인범이 누구인가'보다는 각 에피소드 안에서의 줄거리가 볼만하다. 때문에 이 영화는 단순 스릴러라기보다 오히려 세 편의 서로 다른 드라마 패키지에 가깝다. 그리고 꼭 '분노'라는 감정만이 이 영화를 지배하는 주제는 아니다. 오히려 이 영화는 '신뢰', '사랑', '가족'을 담은 영화다. 특히 '신뢰'는 세 개의 에피소드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다.
お前は大切なものが多すぎるんだよ。
本当に大切のは一つでいい。
大切なものは増えることはなくて、減っていくんだ。
너는 소중한 게 너무 많아.
정말로 소중한 건 하나로 충분해.
소중한 건 늘어나지 않고 줄어가거든.
# from 오키나와(沖縄)
각 에피소드의 소재가 특기할 만하다. 오키나와 에피소드는 오키나와의 미군기지 문제를 다루고 있다. 오키나와 내 미군기지 이전 문제 때문에 일본 중앙정부와 오키나와 현 간의 갈등이 깊었었는데, 이를 바라보는 일본사회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미군기지 정책에 반기를 드는 오키나와 지사를 아베 정부에서 대놓고 냉대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세 개의 에피소드 가운데 가장 사회고발의 성격이 강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 이색적이었다. 또한 오키나와의 풍광은 덤으로 또 다른 볼거리다.
# from 치바(千葉)
치바라면 도쿄도와 인접한 지역인데도 마을이 엄청 시골처럼 나왔다. 미덥지 않은 딸(아이코)을 독립시켜야 하는 아버지(마키)의 애틋한 마음과 조바심이 묘사된 에피소드다. 아이코는 빚에 쫓겨 치바까지 숨어든 어느 청년에게 마음을 의지하게 된다. 아버지는 딸의 행복을 빌고 기꺼이 이 둘의 사랑에 신뢰를 보내기로 마음을 먹지만, 그게.. 생각만큼 뜻대로 되지가 않는다. 드라마 <심야식당>처럼 사회에서 소외된 자들이 서로에게 의지하는 과정을 잘 묘사한 에피소드다. (일본사회의 계층이동이 우리나라보다 훨씬 어렵고 사회가 경직되어 있다는 것, 그리고 사람들도 이에 순응해버리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던 에피소드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자 제 위치에서 묵묵히 살아가고, 사회는 그 나름대로 굴러간다는 게 신기하다)
# from 도쿄(東京)
살짝 비중이 작게 느껴지는 도쿄 에피소드 또한 소외된 자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바로 동성애자(유마와 나오토)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것. 원작에서는 어떻게 설명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외모나 사건의 전개만 봐서는 당연히 이 에피소드에서 살인범이 나올 거라 생각했다;; 영화 후반부에 갑작스러운 고아원 친구의 등장이 약간 어색하기는 했지만, '사랑'보다는 '신뢰'에 방점을 둔 괜찮은 에피소드였다. 사람으로 붐비는 긴자 거리에서 유마가 흐느끼며 터덜터덜 걷는 마지막 장면을 어떻게 찍었을지가 궁금하다. 기억에 남는 장면 중 하나다.
# As All
'분노'라는 한 단어로 뭉뚱그리기에는 읽어낼 거리가 많은 영화였다. 일본 영화 중에는 보다보면 숨이 콱 막힐 정도로 갑갑함이 느껴지는 영화들이 더러 있다. 표정에 변화도 없고 로봇처럼 대사를 조곤조곤 내뱉는 배우들을 보다 보면, 너무 빈틈이 없어 보여서 갑갑함이 느껴진다고 해야 할지...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소재, 주제, 배우들의 연기가 전형적이지 않아서 좋았다. 색다른 느낌의 일본영화를 찾는다면 이 영화를 추천한다!!'일상 > film'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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