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일상/film 2017. 4. 10. 22:51
<어느 독재자/드라마/모흐센 마흐말바프/독재자(미하일 고미아쉬빌리), 손자(다치 오르벨라쉬빌리)/120>
원제는 <The President>. 감독은 이란 출신의 모흐센 마흐말바프. 감독의 이력이 좀 특이하다. 이란의 체제 비판으로 여러 차례 정치적 망명을 한 인물로, 더 이상 이란으로 되돌아갈래야 되돌아갈 수 없는 이란출신의 감독이다. 또한 이 영화의 배경으로 보자면 조금은 생소한 조지아(또는 그루지야라고도 알려진)를 무대로 삼고 있다.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에 낀 이 나라의 황량하고 쓸쓸한 풍경은 사뭇 이국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이 영화는 2010년 아랍의 봄, 특히 숙청당한 리비아의 독재자 카다피를 모티브로 삼고 있다. 특히 제목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듯 독재자의 말로를 풀어내는 영화인데, 감독은 의도적으로 영화의 서사에서 '종교적인 내용'은 배제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슬람이라는 종교적 분쟁보다는 독재자에 의한 비정상적 통치와 그 속에서 잉태되고 되풀이되는 폭력과 유혈사태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춘다. (사실 배경으로 나오는 조지아의 국교는 조지아정교로 이슬람교와 거리가 있다)
손자를 무릎에 앉히고 유리창 너머로 도시 전체의 조명을 다스려 보이는 절대권력자
영화 초반에서 '폐하'라고 불리는 흰수염의 사나이는 전화 한 통으로 도시 전체의 불을 껐다 켤 수 있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니고 있다. 그러던 어느날 쿠데타가 일어나고(어느 나라인지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는다), 사태의 심각함을 깨달은 독재자는 손자를 데리고 월경을 하기로 한다. 현대판 아방궁에서 호화로운 생활을 일삼던 이들에게 노상 생활은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할아버지는 손자에게 연극이라 생각하라고 타이른다. 그들은 유랑생활을 하는 집시로 꾸민 채 월경을 할 수 있는 바다로 향한다.
바다에 이르는 길 위에서, 손자에게 어른들의 세계―폭력과 광기―를 보여주고 싶지 않은 독재자 할아버지는 그때마다 손자에게 귀를 막으라거나 눈을 가리라고 한다. 그렇지만 귀를 막고 등을 돌리고 있으면 어느새 반대편에서 피흘리는 싸움이 벌어지는가 하면, 눈을 가리고 있자니 총탄이 오가는 소리가 살벌하게 들려온다.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 독재자의 정체가 발각되고 목이 날아갈 즈음, 어린 손자는 가르침에 따라 파도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려 하지만 눈에서 나오는 눈물을 감추지 못한다. 해변에 다다른 것을 자축하며 쌓아올린 모래성은 한 차례 파도와 함께 무너져버린다.
2014년 베니스 영화제에 초청되고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소개된 바 있는 <어느 독재자>
권력은 달콤하다. 어린 손자는 군악대의 음악소리만 들려도 고사리손으로 거수경례를 한다. 대소변을 보고 뒷처리를 할 줄도 모른다. 할아버지라고 다를 것이 없다.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잔혹한 방식으로 반군을 진압하면서도, 아무렇지 않은듯 사치스러운 생활을 영위한다. 영화 초반에, 공항으로 향하는 리무진 차 안에서 두 딸이 서로의 머리를 두들겨패며(;;) 나누는 대화로 미루어 볼 때, 이들이 쌓아올린 권력의 첨탑이 얼마나 부패했고 얼마나 악취를 풍기는 것인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다. 비대해진 권력의 영욕(榮辱)은 종잇장 한 장처럼 너무나도 극명하게 뒤바뀐다. 한때는 독재자에게 충성을 바쳤던 군인들이, 이제는 그를 죽이지 못해서 안달이 나서 두 눈에 쌍심지를 켜고 독재자의 소재를 찾아다닌다. 그렇지만 과연 그들에게 이 독재자를 심판할 자격이 있다고 할 수 있을까. 가령 자격을 갖춘 자가 등장한다 한들 무엇으로 과거의 폭정을 만회한단 말인가. 피를 피로 해결하려는 광기어린 민중들은 과연 말끔히 독재를 청산하고 민주주의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인가. 여러가지 질문이 동시에 떠올랐던 영화였다.
'일상 > film'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날개를 펼치는 방법 (0) 2017.04.13 고향으로(Zur Heimat) (0) 2017.04.13 일당백(一當百)의 사랑이야기 (0) 2017.04.04 분노 (0) 2017.03.31 마음 속 괴물 (0) 2017.0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