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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으로(Zur Heimat)일상/film 2017. 4. 13. 14:55
<랜드 오브 마인/전쟁/마틴 잔트블리트/라스무센 상사(롤란트 묄러), 세바스티안(루이스 호프만)/90>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의 <하늘을 걷는 남자> 이후로 이렇게 오금이 저리는 오랜만이다. 스릴러물이라 그런 게 아니고, "소재" 때문에 그렇다. <하늘을 걷는 남자>에서는 펠리페 페팃이라는 실존 인물을 연기한 조셉 고든 레빗이 쌍둥이 빌딩 꼭대기를 외줄타기하는 연기를 한다;;; 이게 연출된 장면이라는 것도 알고, 실제 횡단에 성공했다는 것도 아는데, 외줄타기를 하는 장면을 보면서 왜 손에서 땀이 나던지...
이 영화 역시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실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패전국이 된 독일로부터 차출된 소년병들은 덴마크의 서해안에 매설된 지뢰를 해체하는 작업에 동원된다. 이 영화는 그 임무를 담당한 13명의 소년병 소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런데 이 '지뢰'라는 것이 눈에 보이지도 않고 언제 터질지 알 수 없다보니 긴장상태로 영화를 봤다.
세바스티안 슈만(左)와 라스무센 상사(右)
라스무센 상사는 어느덧 소년들에게 마음이 기운다
또 하나 떠올랐던 것이 프리모 레비의 에세이 「이것이 인간인가」다. 「이것이 인간인가」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살아남은 유태인들의 이야기다. 그런 점에서 독일 소년병들을 보며 「이것이 인간인가」를 떠올린 건 좀 아이러니하다. 세계대전에서 독일은 분명 가해자였고 유태인은 피해자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프리모 레비가 지적했듯, "언어적으로 풀어내기 어려운 회색지대"라는 것이 존재한다. 과연 무고한 소년병들에게 나치의 책임을 물을 수 있을 것인가. 그것도 폭력이라는 수단으로.
영화 속 덴마크 대위는 말한다. "전쟁에 나갈 수 있는 나이면, 지뢰를 해체하는 작업도 할 수 있어. 소년들의 죽음 따위 슬퍼할 필요도 없어"라고. "눈에는 눈, 이에는 이." 피는 피로써 갚아 마땅하다는 것이 당시 독일을 향한 대다수 유럽 국민들의 감정이었다. 해안의 지뢰를 해체하는 데 동원된 소년병 13명 가운데 결국 살아남은 소년은 단 4명. 그마저도 원래의 약속대로 독일로 복귀하기는 커녕 또 다시 다른 지뢰매설 지역으로 차출된다. 라스무센 상사의 도움으로 독일로 탈출하는 데 성공하긴 하지만, 이는 극히 일부의 기적적인 이야기에 불과하다. 해피엔딩을 맞이할 운이 없던 절대다수의 소년병들은 독일땅을 밟아보지도 못한채 지뢰와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닐 맥그리거의 「독일사 산책」을 보면 오늘날을 살아가는 독일인들이 자국의 역사적 과오에 대해 어떤 해석을 내리고 있는지, 어떻게 주변국과 화해를 모색하고 있는지 잘 설명되어 있다. 독일인들은 전후 폐허가 된 자국의 건물을 복원하는 대신, 전쟁의 상흔이 고스란히 드러나도록 무너진 건물 위에 건물을 덧대는 방식을 택한다. 자신들의 역사적 잘못을 잊지 말자는 것이다. 저자는 그 대표적인 예로 베를린의 브란덴부르크 문을 서두에 거론한다. 일면만 봐서 브란덴부르크는 웅장한 개선문이지만, 이면은 콘크리트를 덧댄 밋밋한 인공물이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던가. 독일인들의 이러한 역사적 인식이 얼마나 오래갈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렇지만 '독일인'이라는 주홍글씨에도 불구하고, 반 세기 동안 성공적으로 경제성장을 이루고, 통일을 이루고, 주변국에 먼저 화해의 제스쳐를 취하는 것을 보면 대단하다 싶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패전 뒤에도 분단을 경험하지도, 책임을 추궁당하지도 않은 일본이 보여준 모습은 독일과 너무나 대조된다.
이 영화 직전에 봤던 <어느 독재자>와 더불어서, 폭력을 폭력으로써 해결하고자 하는 인간의 나약함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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