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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스와 프시케 사이에서(Eros & Psyche)일상/film 2017. 4. 25. 23:32
<나의 사랑, 그리스 / 파리스(타우픽 바롬), 다프네(니키 바칼리),
기오르고(크리스토퍼 파파칼리아티스), 엘리제(안드레아 오스바트),
세바스티안(J.K.시몬스), 마리아(마리아 카보이아니) / 114>
한동안 영화 가뭄인가 싶었는데, 요새 보고 싶은 영화가 꽤 많다. 영화관을 갈 시간이 좀처럼 나지 않아서 딱 한 편을 고르고 고른 게 이 영화다. 이 영화 괜찮다. 왓챠에 만점으로 기록해두었다"a"
다만 번안된 영화 제목이 아쉽긴 하다. 영화제목만 보면 우드 앨런의 로맨스 영화가 떠오른다. 하지만 <나의 사랑, 그리스>는 <미드나잇 인 파리>나 <로마 위드 러브>와는 다르다. 영어제목이 <World Apart>, 희랍어 제목이 <ένας άλλος κόσμος>―영어로는 <An Elusive World>―다.
서로 달라 보이는 세 개의 에피소드가 결국 하나로 귀결되는데, 매우 정치적이기도, 철학적이기도, 또한 현실적이기도 한 영화다. 멋진 영화다'~' 바로 그리스 아테네가 무대이기에 가능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조금은 연출된 것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장면들도 있지만, 주제면에서 만족만족 대만족이다.
에피소드 1. Boomerang 난민유입과 파시즘
에피소드 2. Roseft 50mg 경제위기와 가족해체
에피소드 3. Second Chance 고대 그리스철학과 자아성찰(인류에 대한 반성)
옴니버스인 것 같지만 결국 하나의 이야기로 마무리되는 플롯 구성은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의 작품들―<바벨>이나 <아모레스 페로스(Amores Perros)>―을 떠올리게 한다.
나는 이런 소재가 좋다. 인간의 삶과 매우 밀착된 현실적 문제들에 대해 진솔하게 풀어내는 영화. 꾸밈없이 현실이 드러나는 영화.
루브르 박물관, 「에로스와 프시케」
때로 현실은 이해하려고 들수록 알 수가 없어진다. 그리스어 원제가 "규정짓기 어려운 세계(An Elusive World)"라 한 것에 백 번 공감한다. 바다에 떠밀려 목숨을 잃는 난민들, 직장을 잃어 실의에 빠진 시민들,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바로 "에로스와 프시케"가 필요한 순간이다. "마르스"가 무자비하게 검을 휘두르는 가혹한 현실세계에서, 감독은 혼돈의 이 세상에 사랑이 필요하다는 점을 역설한다.
세 개의 에피소드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것이 그리스정교회의 종교의식이다. 감독이 왜 이런 장치를 사용했는지 정확하게 이해는 못하겠지만, 아마도 '영혼'의 측면에서 프시케적인 요소를 드러내려 한 것이 아닌가 싶다.
"사람들의 모습은 서로 다르지만, 사랑에 빠진 사람들의 모습은 모두 똑같다"
뭔가 <러브 액츄얼리>에서 봤던 대사 같기도 하다. (위플래시에서 유감없이 광기를 보여줬던 J.K.시몬스가 저렇게 따뜻한 남자로 나온다는 것도 놀랍다;;ㅋㅋ) 여하간 그리스 신화를 풍부하게 활용하고 있기 때문에 명대사가 참 많다'ㅁ'
그리고...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난민 문제를 보며 다시 한 번 착잡함을 느꼈다. 분통 터지는 일이다. 프랑스에서 르펜―전쟁의 화신 마르스-_-..―이 저만큼 득표를 했다는 것만으로도 경악스럽다. 영화 속에서 파시스트들은 감히 "필그림"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한다. 그러나 영화는 마리아의 입을 빌려 말한다. 마리아는 파시스트 활동을 하는 남편에게 말한다.
"당신은 당신이 사회적 약자라고 하지만, 당신이야 말로 사회적 약자를 괴롭히는 가해자다"
정확한 대사는 기억나지 않지만, 대충 위와 같은 내용이다. 가장 약한 자는 강한 자에 약하고 약한 자에 강한 자다. 파시즘이 그렇다. 그들은 이방인(난민)들로 인해 자신들의 일자리가 사라졌다고 말하면서, 사회적 차원의 해결책을 모색하는 대신 폭력에 의지한다.
참 쉬운 것이 사랑이고 어려운 것이 사랑이기도 하다. 사람에게 가장 가까운 것이 사랑이기도 하고 좀처럼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이 사랑이기도 하다. 연인간의 사랑이든, 가족간의 사랑이든, 자선적 사랑이든.. 참 교훈적인 이야기이고 원론적인 이야기, 그렇지만 현실에서 좀처럼 이뤄지지 않는 이야기. 그늘은 빛이 있다는 반증이라지만, 그놈의 그늘에 볕뜰날은 언제 올지...
현실에 몸을 푹 담그고 있다보면 내가 그늘의 일부가 되는 줄도 모르게 된다. 그나마 가끔 이런 영화라도 보면서 볕을 쬔다. 아니, 볕을 어떻게 쬐어야 할지 생각해보게 된다. 볕이란 게 무엇일지 생각해보게 된다. <나의 사랑, 그리스>는 그런 점에서 내가 사는 세상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해준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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