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0 / 바둑판에서 길찾기(KFC, King Fisher & Some Cookies)

캐피톨 컴플렉스를 나서면서..

릭샤를 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는데, 정확한 주소를 모르니 무작정 릭샤를 부를 수도 없는 노릇이고...=_=

돌아오는데 내 숙소가 위치한 섹터가 헷갈렸다. 17섹터와 20번대로 시작하는 어느 섹터의 경계에 위치한 숙소라는 것까지는 떠올랐는데, 그 어느 섹터가 어느 섹터인지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정확한 주소도 모르면서 릭샤를 탈 수도 없었지만 방향은 확실히 알았기 때문에(ㅠ;;) 걷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이미 어두운 밤이 돼서 낮에 봤던 건물들의 위치나 모양이 헷갈렸다.

다행히 숙소 앞까지 이르렀는데, 오늘 하루 먹은 게 너무 부실한 것 같아―바라나시에서 설사병이 도져서 저녁은 KFC로 떼웠다. 그나마 구글맵에 나온 KFC도 두 군데는 폐점한 상태라 KFC를 찾는 길도 아주 고역이었다― 과자라도 사가야 할 것 같았다. 길을 지나던 중 술 파는 가게가 보여서 King Fisher를 한 병 샀다. 그런데 정작 슈퍼마켓은 보이지 않는다. 통신사 가게의 점원에게 물어보니 이 섹터에는 슈퍼마켓이 없다고 한다. 어쩐지 유독 전자기기를 파는 가게가 많이 보이더라니.. 그러면서 나에게 왼쪽으로 쭉 들어가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첫 번째 KFC 방문 실패 후 다음 KFC를 찾아나서는 중

은근히 오기를 자극했다

상가단지가 구성된 섹터는 광장이 시원하게 정비되어서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쓰이고 있었다

상가마다 이런저런 가게들이 많았는데 장사가 잘 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밤이라 위치 구분이 쉽지 않아서 슈퍼마켓에 이르는 동안 여러 번 길을 물었다. 한 다섯 명에게 길을 물어본 것 같다. 그 때마다 돌아온 대답이 직진으로 조금만 더 가면 된다는 것이었다. 그 때마다 안심을 했지만, 또 다시 길을 물어야 하는 순간이 찾아왔고, 결론적으로 슈퍼마켓은 숙소에서 엄청 먼 곳에 위치해 있었다. 밤에도 길을 걷는 동안 지역 주민들이 뜬금없이 인사를 건네고, 내가 길을 물으면 나서서 열성적으로 알려주었다. 호의는 좋았지만, 알려준 것보다 슈퍼마켓이 워낙 멀리 위치해 있다보니 그렇지 않아도 바닥난 체력이 소진되는 게 느껴졌다.

정말 인도는 짧은 순간에도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난다. 돌아오는 길은 대충 방향을 가늠해서 좀 더 지름길이겠다 싶은 길로 왔는데, 어디선가 범상치 않은 비트가 울렸다"~" 좀 더 걸어가니 작은 힌두 사원 옆에 빨간 천막을 둘러놓고 한창 파티가 진행 중이었다.

다리는 천근만근이었지만, 이 어마어마한 비트의 마법에 걸리기라도 한 듯 천막 틈을 들여다 보았다. 무대를 중심으로 한가운데 돗자리가 깔려 있었는데, 돗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식사를 하고 있었고 무대에서는 악기 연주와 무용이 한창이었다. 그런데..그냥 일반적인 무용이 아니었다. 흥이 폭발하는 춤이었다. 발리우드에 나오는 그런.. 그런 춤이었다. 인도사람들 특유의 흥을 느끼는 동시에 질겁했다. 저렇게 춤을 추다가는 며칠 동안은 몸살을 앓을 것 같다. 사리를 두른 여성들이 온몸을 흔들며 안무를 펼치는데, 흥이라면 우리나라 사람들도 지지 않는다지만, 인도사람을 쫓아갈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이건 전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색적인 파티의 풍경 때문일까 숙소로 돌아온 후 TV로 발리우드를 보며 힘들게 사온 맥주와 과자를 먹었다. 미리 찬디가르 기차역으로 향하는 우버를 프론트에 부탁해 놓았다. 짧지만 고됐던 반나절의 찬디가르도 이렇게 저물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