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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수수께끼/마빈 해리스/한길사>
소를 죽이고 쇠고기를 먹는 것을 금하는 금기는 흑소의 작은 체구와 그 놀라운 생존능력이 보여주는 적자생존의 산물 가운데 하나일지 모른다. 가뭄과 굶주림을 겪는 동안 농부들은 자기 가축을 잡아먹거나 팔아넘기고 싶은 유혹을 많이 느낄 것읻. 이런 유혹에 굴복한 자는 가뭄에서 살아남을지라도 결국은 자기 무덤을 스스로 파는 결과를 맞이할 것이다. 왜냐하면 소를 없앤 후 비가 오게 되면 그 때에는 이미 토지를 경작할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무엇보다도 다음 사실을 강조하고 싶다. 즉 굶주림을 겪는 동안 소를 대량 도살하는 것은 평상시 소의 유용성을 잘못 계산한 일부 농부들이 집단의 복지를 위협하는 것보다 훨씬 큰 위협이 될 것이다 암소를 죽이는 것을 아주 불경하게 간주하는 감정은 아마도 순간적인 욕구와 장기적인 생존조건 가운데 어느 것을 우선으로 할 것인지 결정해야 할 때 발생하는 괴로운 갈등에서 연유된 것 같다. 신성한 상징적 의미와 거룩한 교리를 갖추고 있는 암소숭배는 인도 농부들이 눈앞의 이익에 현혹되지 않게 해준다. 서구 '전문가'들에게는 암소숭배 때문에 인도 농부들이 암소를 잡아먹기보다는 차라리 자신들이 굶어 죽으려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성(性) 자체를 제외하고 여성과 남성을 차별할 수밖에 없는 단 한 가지 인간의 활동은 무기를 손에 들고 싸우는(기계화된 무기가 아닌) 전쟁이다. 남자는 일반적으로 여자보다 더 긴창을 사용할 수 있고 더 강한 시위를 당길 수 있으며 더 무거운 몽둥이를 사용할 수 있다. 또한 남자는 여자보다 더 빨리 달릴 수 있다. 더 빨리 적진을 향해 돌격할 수 있고 더 빨리 후퇴할 수 있다.
...인간의 주된 생물학적 적응양식은 해부학적 구조가 아니라 문화다. 나는 고양이나 말이 인간을 지배할 수 없는 것처럼, 단지 키가 더 크고 체중이 더 무겁다는 이유로 남성이 여성을 지배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남성이 자기 아내보다 무거우면 얼마나 무겁겠는가. 동물 중에는 남성보다 30배다 더 무거운 동물도 있지 않는가. 인간사회의 성적 지배관계는 양성 가운데 어느 성이 더 크고 강인한지가 아니라, 어느 성이 방어기술과 공격기술을 장악하고 있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남성지배권은 '적극적인 송환' 또는 '일탈의 확대'라고 일컬어지는 것이다. 이는 그들 자신의 신호들을 선택하고 증폭시키는 확성장치가 회로 중심에서 떨어져나감에 따라 잡음이 심해지는 과정을 의미한다. 남성들이 사나워질수록 전쟁은 더욱 빈번해질 것이며, 전쟁이 빈번해지면 사나운 남성들이 더 많이 필요하게 될 것이다. 또한 남성들은 사나워질수록 성적인 측면에서 더욱 공격적으로 변하여 여성들은 더욱 착취당하게 될 것이다.
...인간의 신체구조는 어떤 조건 속에서는 '운명적이다.' 전쟁이 인구조절 수단으로 우수한 역할을 하게 되었을 때 그리고 전쟁이 주로 손으로 사용하는 원시적 무기에 의존하고 있을 때는 남성 쇼비니즘적 생활유형이 어쩔 수 없이 우세한 생활유형이었다. 이런 조건 가운데 어떤 것도 오늘날 타당하지 않은 이상 남성 쇼비니즘적 생활약식이 퇴조할 것이라는 여성해방운동가들의 예견은 정확하다.
모든 사람이 똑같이 자급자족적 생산수단을 갖고 있는 자연조건 아래서 경쟁적으로 축제―포틀래치―를 여는 것은 전쟁이나 흉년 등 위기시에 노동생산성이 최하 수준으로 하락하는 것을 막는 실질적 역할을 한다. 더 나아가 이 지역에서는 개별부락에 하나의 경제구조로 통합할 수 있는 공식적인 통치기구가 없기 때문에 축제를 경쟁적으로 개최함으로써 경제적인 기대치를 광범위하게 확대해가는 조직망이 형성된다.
...우리가 호혜성의 원칙이 실제로 어떻게 준수되고 있는지 알고 싶다면 화폐와 매매가 전혀 없는 평등한 사회에서 살아봐야 한다. 호혜성이란 어떤 것을 정확히 계산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진 빚을 계산하는 것과는 정반대다. 사실 누군가가 실제로 어떤 것을 빚지고 있다는 것을 전적으로 부정하는 사고다. ...진짜 평등주의사회에서는 물품이나 용역을 제공받았다고 해서 공개적으로 감사를 표하는 것을 무례한 태도로 여긴다.
...진화론적인 관점에서 볼 때 최초의 선물시혜자들은 여분의 노동에서 얻은 생산물을 선물로 나눠주었다. 그것을 받은 사람들은 보답으로 또한 선물시혜자들이 더 많은 선물을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더 힘든일을 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시혜자의 힘은 막강해지고 이제는 더 이상 호혜성의 원칙을 지킬 필요가 없게 되었다.
로마가 지배하던 시기의 팔레스타인에서 두드러진 생활약식이 있었다면 그것은 복수에 찬 전투적 메시아니즘 생활양식이었다. 골리앗을 물리친 다윗의 승리와 전투적 메시아니즘 구원을 약속한 야훼에게 영감을 얻어 유대인 게릴라들은 로마의 관리와 군대에 대항해 끊임없이 투쟁했다. 예수와 그의 제자들의 생활양식이었던 평화의 메시아 숭배는 이 게릴라전이 계속된 시기에 바로 그 반란운동의 주도니 중심지였던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전개되었다.
...예수의 처형과 최초의 복음서가 기록된 시기 사이에 바울이 평화적 메시아 경배를 위한 정지작업을 했다. 그러나 예수를 유대의 전투적 메시아이자 구원자라고 믿음으로써 용기를 얻은 자들은 근본적으로 기원후 68년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게릴라운동을 주도했다. 예수를 거의 평화적이고 우주적인 메시아로 묘사한 복음서들이 기록될 수 있던 실제적 배경은 반로마전쟁이 실패로 끝난 후 후유증이 계속되던 상황이었다. 유대교의 메시아적 혁명투사들을 섬멸한 베스파시아누스와 그의 아들 티투스가 차례로 로마제국의 황제가 되자 순수한 평화의 메시아가 실제로 종교활동에 필요하게 되었다.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을 통해 결국 성취된 것들은 세속권력과 교회 모두를 경악케 했던 전투적 메시아니즘 전통의 운동들과 따로 떼어서는 이해될 수 없다. 그에 앞선 많은 사람처럼 루터도 자기는 종말시대에 살고 있다고 확신했으며 교황은 반그리스도요, 교황제도는 하느님 왕국이 실현되기 전에 무너져야 할 제도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루터가 생각했던 하느님의 나라는 이 세상의 나라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는 무장봉기보다는 설교로서 하느님 나라를 도래케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마녀광란은 저항할 수 있는 모든 잠재 에너지를 분산시켰다. 마녀광란은 가난한 자와 무산자들의 저항운동의 가능성을 박탈하고 이웃끼리 서로 싸우게 하며 모든 사람을 소외시키고 공포에 몰아넣었으며 불신을 고조시켰고 무기력하게 했다. 그 결과 지배계급에 의존하게 했으며 단순한 지역적인 문제에 모든 사람이 분노하고 좌절하게 했다. 이렇게 해서 마녀광란은 가난한 자들에게서 부의 재분배와 사회계급 타파를 요구할 수 있는 능력과 교회 및 사회제도에 대결할 수 있는 능력을 점점 더 박탈했다. 마녀광란은 과격한 전투적 메시아니즘을 거꾸로 바꾸어놓은 것이었다. 마녀광란은 사회특권층의 마법적 총탄이었다.
사실 이 책은 직전에 읽었던 책―세계사라는 참을 수 없는 농담―과 마찬가지로 머리 식힐 겸 이동중에 읽으려고 함께 샀던 책이다. 술술 읽혔던 앞선 책과 달리, 몇 페이지를 읽어본 결과 이 책은 머리를 식힐 수준으로 가볍게 읽을 만한 책이 아니라는 감이 들었고(=_=), 역대 최장이라는 이번 연휴기간을 이용해서야 좀 더 집중해서 읽을 수 있었다. 책이 쓰인 시점이 70년대라고 서두에 밝히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관심있는 문화인류학이라 하더라도 과연 시의성이 있을지 의문스러웠는데, 오히려 40년의 시차 덕분에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오늘날에도 유효한 내용들일 뿐만 아니라, 어떤 논지―예컨대 필자는 당시 대두되던 여성해방주의자들을 염두에 두고 '전쟁'을 해석한다―들은 당시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어서 이 책만의 고유한 색깔이 느껴진다.
여러 장으로 나뉘어 있지만, 내용으로 분류하면 크게 다섯 가지로 추릴 수 있을 것 같다 : i) 힌두교의 암소숭배 ii) 남태평양 원시부족의 전쟁 iii) 북아메리카 인디언들의 화물숭배(貨物崇拜) vi) 기독교의 전투적 메시아니즘 v) 마녀광란으로 본 전투적 메시아니즘의 투영.. 내용은 이러하다. 이 가운데 가장 이해하기 난해했던 것이 '화물숭배'에 대한 대목이었고,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전투적 메시아니즘'에 관한 부분이었다.
'화물숭배'가 난해하게 느껴졌던 것은 우선 화물숭배라는 생소한 용어 탓이 큰 것 같고, 생각을 정리하다보니 '화물숭배'보다는 '명예욕'이라는 어휘로 치환시키면 보다 맥락이 쉽게 통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으로 '전투적 메시아니즘'에 관한 대목인데 무척 흥미롭게 읽었다.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설파하는 기독교에서 메시아니즘이 어떠한 과정을 통해 태동했으며, 그 '메시아니즘'의 성격이 현대인들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이는 것과 달리 '평화적'이기보다는 '전투적' 측면이 있음을 필자는 역설한다.
쉽게 말해, 태초의 유대인들에게 '메시아'는 로마군의 핍박으로부터 자신들을 구원해줄 영웅적 존재를 의미했었다. 그러한 의미에서 메시아는 유대인들에게 실제적인 군사적 영웅을 의미했다. 그러나 로마군의 지배가 기정사실화되었을 때,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종교를 지키기 위해 복음의 내용을 다듬는 작업에 착수한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초세계적인 존재로서의 '평화적 메시아'다. 자타를 구분하지 않는 평화적 메시아라는 이데올로기를 통해, 유대인들은 로마인들에게 자신들의 종교를 흡수시킨다. (바울의 전도 과정이나 초기 기독교인들이 박해받는 과정이 헨리크 시엔키에비치의 <쿠오바디스(어디로 가나이까)>)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전투적 메시아니즘-평화적 메시아니즘'이라는 이분법은 기원후 서양사를 서술하는 잣대로 쓰임새가 있다. 매커니즘은 다음과 같다.
1. 현실의 부조리함을 느낀 사람들이 '전투적 메시아'를 기다린다.
2. 현실의 부조리함이 팽대할 수록 사람들은 더욱더 '전투적 메시아'를 갈망한다. 반대로 그러한 현실부조리 위에 서 있는 기득권은 위기의식을 느낀다.
3. 기득권―또는 온건한 변화를 바라는 사람들―은 '평화적 메시아'를 통해 불만에 찬 사람들의 생각을 환기시킨다.
4. 현실적 부조리는 해결되지 않지만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분산된다.
매커니즘의 적용은 다음과 같다.
1. 16~17세기 유럽의 평민들은 귀족들의 수탈과 중과세에 시달리고 있었다.
2. 귀족들의 학정은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평민들의 불만이 극도에 달하자, 귀족들 또한 대응의 필요성을 느낀다.
3. 불특정 평민을 마녀로 심문한 후 화형에 처하게 한다. (사료(史料)가 방증하듯 공교롭게도 마녀로 재판에 회부된 인원 중 귀족 계층은 극히 드물다)
4. 참고로 마녀재판이라는 희대의 종교재판이 공공연히 진행될 수 있었던 것은, '기독교의 교리에 마녀라는 존재는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온 교황청에서 기존입장을 번복했기 때문...'ㅁ'
5. 화형당하는 마녀들을 목격한 일반인들은 가시적인 이벤트에 만족하고 일상으로 복귀한다.
후스, 칼뱅, 루터에 의해 이뤄진 종교'개혁'도 같은 매커니즘으로 이해될 수 있다. 좀 예외적인 사례로 일반 시민들이 왕을 참수한 프랑스혁명이 있지만, 이 역시 로베스 피에르에 의한 공포정치로 이어졌다는 점, 이후 왕정복고 운동으로 이어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위 매커니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서양사를 마빈 해리스처럼 해석하는 시도는 처음이어서 대단하다 싶었다.
꼭 메시아니즘에 대한 해석이 아니더라도, 마빈 해리스는 그 동안 사회과학적 주제로 다뤄질 수 없다고 여겨져온 특이사례들―힌두교의 암소숭배, 마링족의 돼지숭배―을 경제적인 측면에서 산술적으로 접근한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경제가 평형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즉 필요에 의해 암소숭배와 돼지숭배가 출현했다는 마빈 해리스의 주장은 매우 설득력 있다. 이러한 책이 이미 70년대에 쓰여졌다고 하니, 그만큼 그 동안 내가 뒤쳐진 시간에 살아왔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글을 쓰다보니 생각이 좀 정리되는 듯 하기는 한데, 막상 읽을 때는 아리송한 내용도 많았고 어려웠다. 지금은 <국화와 칼>을 읽고 있는데 내용의 깊이와는 별개로 익숙한 주제이다 보니 훨씬 쉽게 읽힌다. 반면 이 책―문화의 수수께끼―에서 다루는 내용은 후기를 쓸 수나 있을까 싶었던 어려운 주제라 후기 쓰기를 미루고 미루다 이제서야 쓴다. (쉬워보이는 책 제목과 너무 다름...) 어쨌든 연휴기간에 책이라도 읽어서(한 권이지만-_-ㅎㅎㅎㅎㅎ) 다행이다...이로써 야밤에 후다닥 쓰는 독서 후기 끄읕!;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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