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사라는 참을 수 없는 농담일상/book 2017. 9. 24. 11:51
<세계사라는 참을 수 없는 농담/알렉산더 폰 쇤부르크/추수밭>
탈레브에 따르면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구체적이며 분명한 것, 눈길을 사로잡으면서 흥미진진하고 낭만적인 것이다. 애당초 인간은 추상적인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다만 문제는 그 과정에서 사고의 오류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분류는 늘 일이 벌어지고 난 다음에 이루어진다. 우리는 과거를 되돌아보며 어떤 사건들이 그런 식으로밖에 일어날 수 없었다고 말한다. 예컨대 이런 저런 일들로 인해 프랑스혁명이나 1차 세계대전의 발발이 불가피했다는 식이다. 그러나 사건이 일어날 당시에는 어느 누구도 어떤 일이 시작되는지를 알지 못했다. 2001년 9월 11일 이후로 모두가 테러리즘에 대해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9월 10일만 해도 테러리즘에 진지하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었을까. 내일 후세대가 우리에 대해 어떻게 평가할지 오늘 우리는 알 수 없다.
―p.25
낙원 추방. 농업혁명을 이렇게도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낙원 추방' 이후 인간은 식량을 얻고자 신들의 관대함에 의지할 필요가 없어졌다. 직접 경작에 나선 인간은 식량을 비축하면서 점점 궁핍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삶은 더 힘들어져만 갔다. 정착생활이 시작되고 식량이 많아지면서 인구도 늘어났다. 자연히 더 많은 식량을 생산해야 했고, 여가 시간도 사라졌다. 신석기 혁명의 비극적 역설은 생활수준이 높아졌음에도 삶이 고된 노동으로 채워졌다는 점에 있다. 인간의 육체는 원래 엄청난 양의 물을 나르고 밭에서 쟁기질을 하도록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갈수록 더 많은 식구들을 먹여 살려야 함을 뜻했다. 동시에 비좁은 공간에서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 병균과 점염병에 취약해진다는 것을 뜻하기도 했다.
―p. 64~65
그때까지만 해도 종교는 항상 개별 종족, 기껏해야 개별 민족과 연관되어 있었다. 기독교는 하나님이 유대인과 맺은 옛 계약의 뒤를 이어 하나님의 모든 인간과 맺는 새로운 계약으로 스스로를 이해했다. 이제 각 민족과 사회계층을 포함해 인류 전체에서 유효한 최초의 보편 종교가 등장했다. 바울의 선교가 갖는 폭발력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다. 즉 '모든 이를 위한 종교'라는 그의 구상은 종파적 근본주의에 사로잡힌 기독교인들에 대한 선전포고이기도 했다.
…하나님이 우리 하나하나를 사랑한다는 메시지는 큰 호소력을 발휘했다. 개인주의와 인권이라는 근대적 개념, 개개인 모두가 가치가 있다는 믿음은 '우리 모두를 사랑하는 하나님'이라는 생각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한참이 지난 다음 비종교적 휴머니즘과 세속적 가치규범에서는 개인이 절대적 가치를 지니고 각각의 인간이 자율성을 갖는다는 사상을 종교로부터 가져왔다. 즉 인간 존엄성에 대한 세속적 개념은 바울이 전파한 기독교 메시지에서 종교적 함의만을 제거한 것이다.
―p.131~
이 개념―소프로시네(절제)―이 고대 그리스 연극의 핵심 주제가 된 것도 당연해 보인다. 고대 그리스 연극에서는 항상 같은 일들이 벌어진다. 무대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영웅적 행위를 통해 세계를 굴복시키지만 이런저런 사건들을 거치면서 결국 몰락에 이르고 만다. 그런데 지나친 욕심을 삼가라는 명백한 교훈을 떠받치고 있는 것은 무한한 인간 능력에 대한 존경심으로 가득한 비밀스러운 속삭임이다. 소포클레스의 비극 <안티고네>에서 부대 뒤의 합창단이 들려주는 노래를 들어보자 "세상에 무시무시한 것이 많다 하여도 사람보다 더 무시무시한 것은 없다네. …꾀를 써서 산속에 살고 들녘에 돌아다니는 짐승을 제압하지. …사람은 어느 때는 악으로, 어느 때는 선으로 이끌린다네."
―p.143~144
악을 멀리 밀어내고 싶은 욕구는 아주 당연하면서도 인간적이다. 희생양에서 보듯이 우리 조상들은 대리인을 희생시키는 의식이나 마녀 사냥을 통해 그 같은 욕구를 만족시켰다. 일체의 악을 거부하는 그러한 방법이 현대에 와서는 악을 상대로 '병적'이라는 딱지를 붙이려는 경향으로 나타나고 있다. 충격적인 범죄가 발생하는 즉시 우리는 범인을 보고 '미쳤다'고 한다. 그럼 일단은 그 범죄자를 우리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진 안전한 거리에 두게 된다. 하지만 이때 우리의 자기확신 기제가 일부러 도외시하는 사실이 있다. 감옥은 여러분과 나와 똑같은 인간들로 가득 차 있고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범죄는 대부분 정신적으로 건강한 이들에 의해, 대개는 격한 감정 상태에서 저질러진다는 사실이다.
―p.240
비트겐슈타인은 1930년 케임브리지에서 행한 유명한 윤리학 강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언어의 경계를 향해 돌진하고자 하는 욕구를 강하게 느꼈다. 그리고 이는 윤리학이나 종교에 대해 글을 쓰거나 말하는 모든 이들의 욕구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들이 갇혀 있는 울타리를 향해 돌진하는 이 같은 시도는 전적으로 가망이 없는 일이다. 윤리학이 삶의 궁극적 의미, 절대적 선, 절대적 가치에 대해 무언가를 말해보려는 바람에서 비롯되는 한, 그것은 과학이 될 수 없다. 윤리학이 말해주는 것은 우리의 지식에 결코 보탬이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것은 인간의 의식 속에 있는 어떤 충동의 증거이기에 이에 대해 나로서는 깊은 존경심을 갖지 않을 수 없으며, 절대 그것을 조롱할 생각이 없다."
영화 포스터에 배우들 사진들 싣는 것처럼 책리뷰에 저자 사진도 실어보기로...;;(진짜 학자라기보다는 저널리스트 같은 느낌이다..;;)
읽고 싶은 책이 너무 많은데 (그리고 실제로 이미 사둔 책도 많은데) 정작 책읽기를 게을리 하고 있다:( 저자가 서두에 미리 밝혀 두듯, 저자는 역사가도 아니고―본업은 기자다―결정적으로 독일인인고로 매우 서구중심적인 편파적 역사관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객관적인 역사라는 게 따로 있겠는가. 물론 유럽 바깥의 세계를 마치 세계사의 주변부처럼 묘사하는 게 심기를 불편하게 하기는 하지만, 단지 역사에 관심이 많을 뿐인 기자가 이렇게 통찰력 있게 글을 썼다는 게 대단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재미있어서 짧은 시간에 슉슉 넘기며 읽었던 것 같다. 바쁜 일상에 오랜 시간을 들이지 않고 인문서적을 접하고 싶다면 강력히!! 추천할 만한 책이다!:p
'일상 > book'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국화와 칼 (0) 2017.10.24 문화의 수수께끼 (0) 2017.10.09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스완네 집 쪽으로 I (0) 2017.08.20 레스토랑에서-맛, 공간, 사람 (0) 2017.08.11 젓가락 (0) 2017.0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