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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스완네 집 쪽으로 II일상/book 2017. 10. 30. 00:03
어느 한 순간, 윤곽을 분명히 구별하지도 못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어떤 이름도 붙이지 못한 채 갑자기 매혹된 그는, 마치 저녁나절 습기 찬 공기 속을 감도는 장미 냄새가 우리 콧구멍을 벌름거리게 하듯이, 지나는 길에 그의 영혼을 크게 열어 준 악절 또는 화음을 받아들이려고 애쓰고 있었다. 이처럼 스완이 어떤 혼란스러운 인상을 받았던 것은 아마도 음악을 알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그 인상은 오로지 유일하게 음악적이고 영역이 좁은, 다른 어떤 인상으로도 환원될 수 없는 완전히 독창적인 것이었다. 아마도 우리가 듣는 음은 그 높이와 장단에 따라 우리 눈앞에 있는 다양한 차원의 표면을 감싸고 아라베스크 무늬를 그리며 우리에게 넓이, 미묘함, 안정감, 변화에 대한 감각을 주려고 한다. 그러나 그 음은 뒤이어 또는 동시에 나타나는 음이 불러일으키는 감각에 휩쓸리지 않으려고 이들 감각이 우리 마음속에 충분히 형성되기도 전에 사라져 버린다. 그리고 이러한 인상은 만일 기억이, 마치 파도 한가운데에 견고한 토대를 쌓는 일꾼처럼 이 빠져나가는 악절들의 복사본을 만들어 그것들을 다음에 오는 악절들과 대조하고 구별하게 하도록 해 주지 않는다면, 그 '액체성'과 뒤섞임'으로 계속 모티프들을 감쌀 것이고 그리하여 모티프들은 거의 식별할 수 없는 상태로 이따금 솟아오르다 이내 가라앉고 사라지면서 그것이 주는 특별한 기쁨에 의해서만 지각될 뿐 묘사할 수도 기억할 수도 명명할 수도 없는, 즉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 된다.
사실 스완만큼 악의 없는 신도도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신중하게 그들의 험담에 잘 알려진 농담이나 약간의 감동과 다정함으로 양념을 쳤다. 반면에 스완이 허용하는 극히 사소한 조심스러운 말에도, 이를테면 "우리가 하는 것은 욕이 아닙니다." 같은 관례적인 표현이 칠해지지 않았고, 또 스완이 그런 식으로 자신을 낮추는 것을 싫어했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일종의 불충으로 보였던 것이다. 일반 대중의 취미에 아부하지 않거나 익숙한 상투어를 쓰지 않아서 조금만 대담한 문체를 사용해도 대중의 반발을 불러일으키는 독창적인 작가들이 있는데, 스완이 베르뒤랭 씨의 노여움을 산 것도 같은 이치였다. 이들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스완에게서도, 그를 뱃속 검은 사람으로 믿게 한 것은 바로 그가 쓰는 언어의 새로움이었다,
이따금 어떤 생각이 움직여 지각하지 못했던 기억과 만나 부딪치면, 생각은 그 기억을 더 깊숙이 밀어넣었고, 그러면 스완은 갑자기 심한 아픔을 느꼈다. 마치 육체의 아픔이기라도 한 것처럼 스완의 생각은 그 아픔을 줄일 수 없었다. 아니, 차라리 단순한 육체의 아픔에 지나지 않았다면, 그의 생각과는 무관해서 생각을 아픔에 고정하고 아픔이 줄어들었다는 것을, 아픔이 일시적으로 멈추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나 그 아픔은 생각 자체였으므로 단지 기억만 떠올려도 되살아났다. 생각하지 않으려는 것 또한 여전히 생각하는 것이었고, 그 탓에 괴로워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행복을 알지 못한다. 우리는 스스로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불행하지 않다." 그러나 그는 이런 생활이 이미 몇 해 전부터 계속되며, 그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단지 이 생활이 언제까지나 계속되기를 바라는 것이며, 날마다 아무런 기쁨도 가져다주지 못하는 만남을 기다리느라 그의 연구나 쾌락, 친구, 결국에는 그의 삶마저 희생하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그는 자신이 잘못 생각한 것은 아닌지, 그녀와의 관계를 미화하고 파국을 막아 온 것이 오히려 그의 운명을 해롭게 한 것은 아닌지, 그리고 바람직한 사건은 그가 꿈속에서만 일어났다고 그토록 좋아했듯 그 자신이 떠나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 보았다. 우리는 자신의 불행은 알지 못한다. 우리는 우리가 믿는 것만큼 그렇게 행복하지 않다고 그는 중얼거렸다.
도대체 인간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어떤 기준을 택해야 하는 것일까? 결국 스완이 아는 사람치고 이런 비열한 짓을 하지 않을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그렇다면 그들 모두와 만나는 것을 그만두어야 한단 말인가? 그의 정신이 흐릿해졌다. 그리고 자기와 수준이 같은 사람들 모두 샤를뤼스 씨나 롬 대공, 그 밖의 다른 사람들과 자주 만난다는 것을 상기하면서, 이러한 사실은 그들이 비열한 짓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정도에 따라 그런 짓을 할 수 있는 사람들과 사귈 수밖에 없다는 걸 뜻한다고 자신을 설득했다. 그러고는 자기가 의심했던 친구들의 손을 계속해서 잡아야 했는데, 어쩌면 그들이 자기를 절망으로 내몰려고 한 짓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순전히 의례적으로만 악수했다. 그는 인간 삶이 대립되는 요소들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보편적인 진리라고 알고 있었지만, 개별적인 존재 각각에 대해서는 그가 모르는 삶의 어느 부분을 아는 부분과 같다고 생각했다. 그는 사람들이 말하지 않는 것을 말하는 것에 근거해서 그려 보았다.
"한 여인을 사랑한다고 느꼈을 때 우리는 '그녀 주변은 어떠한가? 그녀 삶은 어떠했는가?'하고 물어보아야 한다. 우리 삶의 모든 행복이 거기에 달렸기 때문이다"라는 구절은 얼마나 뼈아픈 진리가 되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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