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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 I일상/book 2018. 2. 11. 23:15
인과관계란 가능한 거의 모든 결과를 만들어 내며, 따라서 우리가 가장 기대하지 않았던 결과도 만들어 낸다. 이 작업은 우리 욕망이나 삶 자체로 인해 더욱 느리게 진행되어 우리 욕망이나 삶이 멈추었을 때 비로소 실현된다.
―p. 86
변하지 않을 내 취미와 내 삶을 행복하게 해 줄 것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아버지는 두 가지 무서운 의혹을 내 마음속에 심어 넣으셨다. 첫 번째는 (매일 나는 아직 속도 대지 않은 삶의 문턱에 있으며 내 삶은 다음 날 아침에야 시작되리라고 생각해 왔는데) 내 삶이 이미 시작되었으며, 게다가 뒤이어 올 삶도 지나온 삶과 별로 다르지 않을 거라는 의혹이었다. 두 번째는 사실을 말하자면 첫 번째 의혹의 또 다른 형태에 지나지 않았지만, 내가 '시간' 밖에 있지 않고 소설 속 인물처럼 시간의 법칙에 종속된다는 점이었다. 이론적으로 우리는 지구가 회전한다는 사실을 알지만 실제로는 깨닫지 못하며, 우리가 걷는 땅도 움직이지 않는 듯 느끼며 그래서 편안히 살아간다. 삶의 '시간'도 이와 마찬가지다.
―p. 104
집에 돌아왔다. 나는 방금 나이 든 사람의 1월 1일을, 더 이상 새해 선물을 받지 못해서가 아니라 새해라는 존재를 믿지 않기에 이날만큼은 젊은이들과 다른, 그런 나이 든 사람의 새해 첫날을 체험했다. 새해 선물을 받았지만, 나를 즐겁게 해주는 단 하나의 선물인 질베르트의 편지는 받지 못했다. 하지만 그래도 난 아직 젊었다. 질베르트에게 편지를 쓸 수 있었고, 편지를 통해 내 고독한 사랑이 꿈꾸는 걸 얘기하면서 그녀에게서도 비슷한 감정이 일깨워지기를 기대할 수 있었으니까. 나이 든 사람의 서글픔은 편지를 써 봐야 아무 효과도 없다는 걸 깨닫고 그런 편지조차 쓰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p. 114
하지만 질베르트는 여전히 샹젤리제에 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난 그녀를 만날 필요가 있었다. 얼굴조차 기억이 안 났으니까.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볼 때의 저 탐색하고 불안해하며 요구가 많은 태도, 다음 날 만남에 대한 희망을 줄지 혹은 빼앗아 갈지 모르는 말에 대한 기다림, 그 말이 말해질 때까지 동시에 또는 번갈아 나타나는 기쁨과 절망의 상상, 이 모든 것은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우리 주의를 지나치게 동요하게 만들어 그 사람에 대한 어떤 선명한 이미지도 포착할 수 없게 한다. 어쩌면 또한 동시적으로 일어나는 이 모든 감각 활동들이 우리 시선만으로 감각 너머에 존재하는 걸 알려고 애쓰면서 수많은 형태나 온갖 맛, 그 살아 있는 사람의 움직임에는 너무도 무관심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랑하지 않을 때라야 우리는 그 사람의 움직임을 고정할 수 있다. 이와 반대로 사랑하는 사람은 항상 움직인다. 따라서 우리에겐 언제나 실패한 사진만이 있다.
―p. 117
대중의 몰이해를 피하려는 천재는, 어쩌면 동시대인들에게는 작품 이해에 필요한 거리가 부족하므로 후대를 위해 쓰인 작품은 후대에 의해서만 읽혀야 한다고 말할지 모른다. 마치 너무 가까운 시대의 그림이라 우리가 잘못 판단하는 몇몇 그림들처럼. 그러나 현실에서 잘못된 평가를 피하려는 모든 비겁한 노력은 혓된 짓이며 이런 평가는 피할 수 없다. 천재의 작품이 즉각적인 찬미를 자아내기 어려운 이유는 작품을 쓴 자가 예외적인 인물로서 그와 비슷한 인물이 거의 없다는 데 있다. 천재를 이해할 수 있는 드문 지성을 생산하고 또 배양하고 증식하는 것은 바로 작품 그 자체다. 모든 걸작들이 다 그렇듯이, 예술가의 가치가 아니라면 적어도 지식인 사회에서 발전해 나간다. 작품 자체가 이런 후대를 창조해 나가야 한다. 그러므로 작품이 보존되었다 후대에 가서야 알려지는 경우, 그 후대는 작품의 후대가 아니라, 단지 오십 년 뒤에 사는 동시대인들의 모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예술가는 자신의 작품이 제 갈 길을 원한다면, 작품을 아주 깊은 곳으로, 아주 먼 미래의 한복판을 향해 내던져야 한다.
―p. 186~187
천재든 그저 재능이 뛰어난 자든 그들을 탄생시키는 것은 남들보다 탁월한 지적 요소나 세련미가 아니라, 그런 요소를 변형하고 전환하는 능력이다. 전구로 액체를 데우려면 가능한 가장 전력이 센 전구를 사용하려고 할 게 아니라, 그 전구가 빛을 그만 내고 대신 열을 내도록 유도해야 한다. 하늘을 날아다니기 위해서는 가장 강력한 엔진이 필요한 게 아니라 그 엔진이 지면을 달리던 걸 멈추고 따라가던 방향을 수직 방향으로 돌려 수평적 속력을 모두 상승력으로 전환할 수 있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가장 훌륭한 작품을 만드는 이들은 가장 세련된 환경에서 살고 가장 재치 있는 화술과 가장 폭넓은 지식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갑자기 그들 자신만을 위해 살기를 멈추고 자신의 개성을 거울처럼 투명하게 만들어, 비록 현재의 삶이 사회적으로 또 어떤 점에서는 지적인 면에서조차 초라하다 할지라도 그 삶을 거울에 반영하는 자이다. 천재란 사물을 반영하는 능력에서 나오지 반영된 광경의 내적인 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p. 227
사랑하는 동안 우리는 일종의 예외 상태에 빠져 있으므로 표면적으로는 아주 단순한 사건, 언제라도 생길 수 있는 사건에도 상당한 중요성을 부여하곤 하는데, 사실 사건 자체에는 그만한 중요성이 없다.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뭔가 우리 마음 속의 불안정한 현존이다. 우리는 이런 불안정한 상태를 유지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하지만,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이미 사랑은 우리 마음을 떠나고 없다. 사실 사랑에는 지속적인 고통이 따르는 법이라 기쁨이 이 고통을 완화하고 잠재적인 것으로 만들며 유예하기도 하지만, 매 순간 언제라도 우리가 바랐던 것을 얻지 못하면 이 기쁨은 이미 오래전에 그렇게 되어야만 했던 끔찍한 고통으로 바뀐다.
―p. 273
사랑하는 여인을 절대 다시 보고 싶지 않다는 말이 진심이 아니라면, 그녀를 다시 보고 싶다는 말 또한 진심이 아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의 부재를 견딜 수 있다면, 그건 아마도 사랑하는 이의 부재가 짧을 거라고 기대하면서 어느 날엔가는 다시 만날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곧 이루어질 것 같으면서도 끊임없이 유예되는 이런 만남에 대한 나날의 몽상이, 질투가 따르는 만남에 비해 어느 정도는 덜 고통스럽다고 느껴지기 때문에, 사랑하는 여인을 다시 본다는 소식이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은 충격을 주기도 한다. 지금 우리가 나날이 미루는 것은 우리의 이별이 야기하는 그 견딜 수 없는 불안의 끝이 아니라, 어떤 돌파구도 없는 감동이 재개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p. 339
나는 마침내 이런 평온함을 되찾았다. 왜냐하면 어떤 꿈 탓에 우리의 심적 상태나 욕망을 바꾸면서 우리 정신 안에 들어온 것 역시 시간의 흐름과 함께 점차 사라질 테니까. 그 어떤 것도 영속성과 지속성을 보장받지 못한다. 우리 고통조차도. 게다가 사랑 때문에 괴로워하는 사람들은, 마치 우리가 몇몇 병자에 대해 말하듯이, 스스로가 자신의 의사이다. 위로는 고통을 초래한 자로부터만 올 수 있으며, 이 고통 또한 그의 발산물이므로 치료약 역시 그 고통 속에서 발견된다.
―p. 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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