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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 II일상/book 2018. 3. 4. 02:55
칩거생활은 세월의 흐름을 정지시키므로 시간을 버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장소를 바꾸는 일일 때가 있다. 발베크로의 내 여행은 그저 자신의 치유된 모습을 보고자 나서는 회복기 환자의 첫 외출과도 같았다.
오늘날이라면 우리는 아마도 이 여행을 보다 쾌적하다고 여겨지는 자동차로 했을 것이다. 지구 표면이 변하는 다양한 단계를 보다 가까이에서, 보다 내밀하게 쫓을 수 있으므로, 어떤 의미에서는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여행이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행의 특별한 기쁨은 우리가 피곤할 때 도중에 내리거나 멈출 수 있는 데 있지 않으며, 오히려 그 차이를 될 수 있는 한 더 깊이 느끼게 하여, 우리 상상력이 단 한 번의 비약으로 살던 장소에서 욕망하는 장소 한복판으로 데려다 주듯이 우리 상념 속에 있던 차이를 그 전체 안에서 그대로 느끼게 하는 데 있다. 그리고 이것은 어떤 거리를 통과한다기보다는 상이한 모습으로 존재하는 지구상의 두 개별적인 고장을 결합하고, 하나의 이름에서 다른 이름으로 우리를 데려다 주며, 또 기차역이라는 그 특별한 장소에서 실현되는 신비스러운 작업으로 압축되어 더욱 기적적으로 보인다. 기차역은 도시에 속한다기보다는, 표지판에 새겨진 이름이 그러하듯 도시의 본질을 함유한다.
그러나 우리 시대 모든 분야에는, 사물을 둘러싼 현실과의 관계에서만 사물을 보여주려 할 뿐, 사물을 현실로부터 분리하는 본질적인 것, 즉 정신 활동은 제거하려는 이상한 습성이 있다.
―p. 12~13
이 아름다운 낚시하는 소녀의 내적인 존재는 아직 내게 닫혀 있는 듯했으며, 마치 내가 암사슴의 시야에 놓기라도 한듯, 그토록 내게는 낯선 어떤 굴절률에 따라 그녀 시선이라는 거울 안에 나 스스로의 모습이 몰래 반사되는 것을 얼핏 본 후에도, 내가 그녀의 내면에 들어가 있는지가 의문스러웠다. 그러나 내 입술이 그녀 입술에서 쾌락을 느끼는 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녀 입술에도 쾌락을 주어야 하듯이, 마찬가지로 나라는 관념이 그녀 존재 안에 들어가 자리잡고 그리하여 그녀가 나에 대한 관심뿐 아니라 감탄과 욕망, 또 내가 그녀를 되찾을 때까지 나에 대한 추억을 간직해 주기를 바랐다.
―p. 130
내가 유일하게 진실이라고 믿었던, 나를 정말로 행복하게 해 주리라고 믿었던 것으로부터 날 먼곳으로 데리고 가는 마차는 내 삶과 닮았다
―p. 134
*콩브레의 사회학에 따르면, 사람은 각자 자신의 태어난 카스트나 사회적 계급에 충실해야 하며, 그것을 벗어나는 사람은 사회적인 낙오자로 간주된다. 이 낙오자가 바로 부르주아이면서도 귀족 계급을 넘나든 이방인 스완이다.
―p. 166
"자네에겐 아마도 개인적인 가치 같은 건 없을지 모르겠지만, 게다가 그런 가치가 있는 사람은 아주 드문 법이라네! 하지만 적어도 얼마 동안 자네에게는 젊음이 있고, 젊은은 늘 매력적이라네. 게다가 가장 큰 어리석음은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감정들을 우습게 여기거나 비난할 만한 것으로 여기는 거라네. 나는 밤을 좋아하는데 자네는 밤을 두려워하고, 나는 장미 향기를 좋아하는데 내 친구는 장비 향기를 맡으면 열이 나고.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런 사실 때문에 그 친구가 나보다 가치가 떨어진다고 생각하겠는가? 나는 모든 것을 이해하려 하고 그 어떤 것도 비난하지 않으려 하네. 요컨대 너무 슬퍼하지 말게. 그러한 슬픔들이 고통스럽지 않다고 말하는 건 아니지만, 나는 다른 사람들의 이해를 받지 못한다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잘 아네."
―p. 212
"이렇게 젊은 시절엔 두 가지를 배워 두는 게 유익할 걸세. 첫 번째는 너무도 자연스러운 감정이라 말할 필요도 없는 감정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이고, 두 번째는 다른 사람에게 대답할 때는 그 뜻을 깊이 새겨 보지 않고 덮어 놓고 싸움을 걸듯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네. …젊음의 경솔함과 무분별함, 그리고 이해력의 결핍을 지적하는 편이 자네에게 더 도움이 되었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군. 나의 이 작은 잔소리 '샤워'가 자네에게 해수욕보다 더 유익하길 바라네. 하지만 그렇게 가만히 있지는 말게, 감기에 걸릴지도 모르니까. 잘 있게"
―p. 214~215
상상력이 제거되고 나면 쾌락을 쾌락 자체로 환원되어 결국은 무의미해지고 만다. 원하는 대상에 도달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확실성에 의해 깨어난 상상력은 우리에게 다른 목표가 숨겨진 하나의 목표를 만들고, 또 관능적인 쾌락을 다른 삶 속으로 뚫고 들어간다는 관념으로 대체하면서, 쾌락을 알아보거나 쾌락의 참된 맛을 음미하는 걸 방해하여 쾌락의 관능적인 영역으로 축소하지 못하게 한다. 가령 우리가 식탁 위에 차려진 생선을 처음 볼 때면 생선을 붙잡기 위해 필요한 수많은 술책과 우회들이 별 가치 없어 보이지만, 낚시질하며 보낸 오후 시간들, 우리가 그 생선들로 무엇을 할지 잘 알지 못한 채 수면에 소용돌이가 일고, 투명하고 유동적인 푸른빛 물결 속에 반짝거리는 살과 어렴풋한 형체가 스쳐가는 모습이 끼어들 때 비로소 그 가치가 드러나는 법이다.
―p. 262~263
유명해지고자 하는 욕망이 아니라 근면한 습관이 한 권의 작품을 탄생시키듯이, 현재의 기쁨이 아닌 과거에 대한 현명한 성찰이 우리에게서 미래를 보호해 준다
―p. 291
단념이란 언제나 처음부터 완전한 것은 아니다. 병자나 수도사, 예술가 또는 영웅의 단념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예전 마음으로 단념을 결심하며 이런 단념이 반응을 보이는 것은 나중 일이다. 그러나 그가 비록 어떤 사람들을 대상으로 작품을 만들기를 원했다 할지라도,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그는 사회로부터 멀리 떨어져 거기에 무관심해졌으며 오로지 자신을 위해 살았다. 마치 위대한 일을 하기에 앞서 고독을 몸으로 실천한다는 것이 처음에는 우리가 집착하는 작은 일상의 것들과 어울리지 않는 듯하여 두려움을 주지만, 이런 작은 것들을 멀리하면서 오히려 박탈감을 덜 느끼게 되는 것처럼, 그는 고독을 실천하는 중에 고독을 사랑하게 됐다. 고독의 실천을 체험하기에 앞서 우리의 모든 관심사는 우리가 알자마자 금세 중단되는 몇몇 기쁨과 어느 정도까지 그 고독을 양립할 수 있는가 하는 데 있다.
―p. 312
"아무리 현명한 사람이라도 젊은 시절 어느 한때는 생각만 해도 불쾌해져서 할 수 있다면 지우고 싶은 말을 하고 그런 삶을 경험하는 법이라네. 하지만 그런 사실을 그렇게 후회하지 않아도 되는 게, 현자가 되기 위해서는, 가능한 일이라면, 이 마지막 화신에 앞서 어리석고 추악한 단계를 모두 거쳐야만 하기 때문이지. 나는 명문가 출신 자손으로 중학교 시절부터 가정교사에게 정신의 고결함과 도덕적인 정중한 태도를 교육받은 젊은이들이 있다는 것도 잘 아네. 아마도 그들 삶에는 버릴 게 하나도 없으며, 그들이 말한 모든 걸 책으로 발표하거나 서명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들은 교조주의자의 무력한 후손들로서 그들의 정신은 더없이 초라하고 그 지혜는 부정적이며 볼모의 것이라네. 지혜란 거저 얻어지는 게 아니라, 그 누구도 우리를 도와줄 수 없고, 면제해 줄 수 없는 긴 여정을 통해 스스로 발견하는 것이라네."
―p. 367~368
의지는 연속적인 우리 인격의 인내심 많은 부동(不動)의 심부름꾼으로, 평소에는 어둠 속에 감춰져 무시당하면서도 한결같이 충실하며, 우리 자아의 변화에도 개의치 않고, 자아가 필요로 하는 것이 결코 부족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작업한다. 욕망의 여행이 막 실현되려는 순간 우리 지성과 감성은 정말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지 자문하기 시작하지만, 의지는 이 게으른 주인들이 여행을 할 수 없게 되었다는 걸 알면 그 즉시 여행을 경이롭게 여기리라는 걸 깨닫고, 역 앞에서 주인들이 길게 이유를 대며 수없이 망설이도록 내버려 둔다. 하지만 의지는 표를 사게 한 뒤 출발 시각에 맞춰 우리를 객차에 오르게 한다. 의지는 지성과 감성만큼 자주 변하지 않지만, 침묵을 지키고 그 이유를 말하지 않으므로 거의 존재하지 않는 듯 보인다. 우리 자아의 다른 부분들은 이러한 의지의 확고한 결단력을 따르지만 그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반면 그들 고유의 불안정성은 분명히 인식한다.
―p. 377
우정은…자아를 포기하게 한다. 우정의 표현방식인 대화조차도 피상적인 횡설수설일 뿐 우리에게는 아무 득이 되지 않는다. 한평생 말을 한다 해도 우리가 무한히 반복하는 것은 한순간의 공허일 따름인 반면 예술 창조의 고독한 작업에서 사유의 진행은 깊이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 사실 큰 고통이 따르기는 하지만, 이것만이 진실의 목적을 위해 우리가 발전할 수 있는, 또 우리에게 닫혀 있지 않은 유일한 방향인 것이다. 우정은 대화처럼 미덕이 부재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해를 끼치기까지 한다. 왜냐하면 순전히 내적인 방향에서 발전 법칙이 이루어지는 우리 같은 몇몇 인간에게는, 친구와 같이 있을 때면, 다시 말해 깊은 곳을 향해 발견의 여행을 떠나는 대신 자아의 표면에 머물러 있을 때면 권태의 감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데, 이런 권태의 인상도 다시 우리가 혼자 있게 되면 우정에 의해 수정되고 친구가 한 말을 감동적으로 상기하도록 설득되어 소중한 지침으로 여기게 한다. …생루처럼 그렇게 선하고 지적이고 인기 있는 친구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으며 기뻤을 때, 또 내가 느꼈던 그 어렴풋한 인상들을 밝혀내는 일이 내 의무라고 느끼면서 그 일에 지성을 집중하는 대신 오로지 친구 말에만 몰두했을 때, 난 자신을 속이고 진정으로 성숙하고 행복해질 수 있는 방향으로의 발전을 멈추고 있었다. 친구가 한 말을 되풀이하면서 내가 진정으로 혼자 있을 때 침묵 속에서 추구하던 아름다움과는 다른, 단지 로베르나 나 자신과 내 삶에 더 많은 가치를 줄 수 있는 아름다움을 찾으려고 애썼다. 난 이런 친구가 주는 아름다움 속에서, 마치 고독으로부터 따뜻하게 보호받는 듯 이 친구를 위해서라면 고결하게 나 자신을 희생하기를 갈망하게 되어 더 이상 자아 실현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반대로 소녀들 곁에서 맛보는 기쁨은 비록 이기적인 기쁨일지언정, 적어도 우리가 완벽히 혼자는 아니라는 걸 믿게 하는 거짓에 근거하지 않았으며, 우리가 다른 사람과 얘기할 때면 말하는 사람이 우리 자신, 낯선 사람들과 구별되는 우리 자신이 아니라, 그 낯선 사람을 본뜬 우리라는 걸 인정하지 않는 거짓에도 근거하지 않았다.
―p. 438
내 동공은 수평선의 넓은 지대로도 충분히 채워지지 않을 것 같았다. 자연이 내게 가져다줄 수 있는 어떤 생명도 초라해 보였으며, 내 가슴을 부풀어 오르게 하는 그 거대한 열망에 비하면 바다의 숨결도 아주 짧게만 느껴졌다. 나는 알베르틴에게 입을 맞추려고 몸을 기울였다. 죽음이 지금 들이닥친다 한들 별 상관이 없었으며, 아니, 차라리 죽음이 내게는 불가능해 보였다. 삶이 내 밖이 아닌 내 안에 있었으니까. 만약 한 철학자가 어느 날인가, 비록 먼 훗날이라 할지라도 내가 죽을 것이며 자연의 영원한 힘은 나보다 오래 살아남아 이런 자연의 힘 아래에서 나란 존재는 먼지 한 톨에 지나지 않으리라고 말한다 해도 나는 아마 연민의 미소를 감추지 못했으리라. 내가 죽은 후에도 여전히 이 둥글고 볼록한 절벽이, 이 바다가, 이 달빛이, 이 하늘이 존재한다니!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단 말인가? 어떻게 세계가 나보다 더 오래 지속된단 말인가? 내가 세계 속에서 시달리지 않고, 이 세계가 내 안에 담겨 있으며, 또 세계가 나를 채워 주기는커녕 내 안에서 다른 수많은 보물을 챙겨 놓을 빈자리를 느끼면서 하늘과 바다와 절벽을 한구석으로 경멸하듯 내던지고 있는데?
―p. 480~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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