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델마/드라마, 미스터리/요아킴 트리에/델마(에일리 하보), 아냐(카야 윌킨스)/116>
<라우더 댄 밤즈>를 통해 이 감독을 처음 알게 되었고, 당시 영화를 재미있게 봤던 기억이 있어 <델마>를 찾아보게 되었다.
1. ZOOM zoom ZOOM
영화는 광장에서 시작해서 광장에서 끝난다. 영화는 두 번째 장면에서―영화의 첫 장면은 딸과 아버지가 눈밭을 걷는 장면이다― 사람들이 오가는 활기 넘치는 광장을 보여주었다가, 알아차리기 어려울 정도로 천천히 줌을 당겨 이 영화의 주인공 델마에게 초점을 맞춘다. 이 영화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기존에는 영화에는 자주 사용되지 않는 촬영기법이 활용된다는 점이다. 인물을 최대한 클로즈업 해서 화면에 담았다가도 어떤 풍경을 담을 때에는 매우 넓은 화면을 쓴다. 이런 식의 표현기법으로 인해, 인물이 강조된 장면에서는 인물의 심리상태에 집중하고 풍경이 담긴 장면에서는 무슨 전조(前兆)를 의미하는지 떠올려가면서 볼 수 있었다.
2. Some Subjects
a. Religion
종교의 나라인 이스라엘을 다녀온지 얼마 안 돼서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영화에서 가장 시선을 끌었던 것은 영화 전반에 녹아 들어 있는 '종교'라는 주제다. 주인공 델마와 그녀의 가족은 매우 신실한 기독교 가정이다. 주인공은 일체 음주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대학생임에도 불구하고 교리에 어긋난 행동을 할 때에는 부모에게 전화해 고해성사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상당히 경직된 그녀의 생활은 대학생활을 거치면서 서서히 무장해제되기 시작한다. 창조론과 진화론 중 무엇이 맞는지, 무엇이 '예수적'인 것이고 무엇이 '사탄적'인 것인지 내적 갈등을 겪는 델마의 인간적인 모습을 통해, 종교라는 점을 중심으로 구심력과 원심력을 동시에 경험하는 우리들의 삶이 매우 안정적인 원을 그리면서도 상당한 긴장감 위에 놓여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b. Animal
델마의 초자연적인 능력을 묘사하기 위해 여러 동물이 등장한다. 가장 먼저 등장하는 것은 눈밭은 걷던 델마와 아버지가 사슴과 마주하는 장면이라 할 수 있다. 사슴은 현재의 균형을 깨뜨리고 있는 델마를 제거하기 위해 내적 갈등을 겪는 아버지의 심리를 보여주는 대상이다. 한참 눈 위에서 서성이던 사슴은 이내 시야에서 사라진다. 그리고 딸에게 총을 겨누던 아버지는 끝내 방아쇠를 당기지 않음으로서,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던 델마의 초현실적인 능력이 언젠가 수면 위에 오를 것임을 암시한다.
다음으로 자주 등장하는 동물은 뱀이다. 성경에 뱀이 부정적으로 묘사되어 있는 것처럼 영화에는 델마가 금단의 무언가에 호기심을 가질 때, 쾌락을 탐닉할 때 뱀이 항상 등장한다. 한 가지 좀 예외적인 장면은 꿈 속에서 뱀이 빨간 벽돌 건물―나중에 델마의 할머니가 있던 요양원으로 밝혀진다―로 향하는 장면이다. 이는 델마와 마찬가지로 초자연적인 능력을 지녔던 할머니와 델마간에 연관성이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듯하다.
끝으로 관심을 기울일 만한 동물은 새다. 가장 먼저 새가 등장하는 대목은 델마가 도서관 발작을 일으킬 때인데, 이 때 도서관 위를 맴돌던 검은 새떼가 까닭없이 창틀에 부딪친다. (이 장면은 히치콕 감독의 <새>라는 영화와 똑 닮아 있다;;) 새떼는 불길한 전조를 알리기도 하지만, '희망' 또는 '가능성'을 나타내기도 한다. 자신이 바라는 온전한 현실과 본인이 지닌 현실파괴적인 능력으로 인해 델마는 상당히 혼란을 겪는데, 이 때 그녀 곁을 지킨 것이 미력(微力)하나마 푸드덕대는 아기새다.
Donc..
영화의 끝으로 가면서 델마의 초자연적인 능력에 의해 누군가는 제물로 희생이 되는 반면 누군가는 구원된다. 전자는 아버지고, 후자는 어머니와 (델마가 사랑했던) 아냐라 할 수 있겠다. 전자와 후자를 가르는 차이점이라면 전자는 델마(뿐만 아니라 자신의 어머니)의 능력을 부인하고 지워버리려 한 반면, 후자는 델마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했다는 점이다. 물론 어머니의 경우 영화의 초반까지는 아버지에게 협조적이었으므로 델마가 능동적으로 마음을 열 수 있도록 도운 아냐보다는 소극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여하튼 각양각색의 소재가 동원되고 실험적인 촬영기법이 활용된 끝에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한 것은 알을 깨고 나오려는 아기새의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그 아기새는 델마이다.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발견하고 인지하고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이 영화가 말하듯 지난(至難)한 일인지도 모른다. 비록 델마처럼 특출난 모습이 아니라 그저 평범한 모습으로라도 말이다. '성장'이란 무엇일까 생각해 보기에 참신하면서도 색다른 영화였다.
'일상 > film' 카테고리의 다른 글
Degrade (0) 2018.09.12 어느 지식인의 허언(虛言) (0) 2018.09.11 Long Running Time, Long Running Actors (0) 2018.08.24 단죄(斷罪), 눈에는 눈 이에는 이 (0) 2018.07.21 아직 끝나지 않았다 (0) 2018.0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