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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지식인의 허언(虛言)일상/film 2018. 9. 11. 23:22
<더 스퀘어/(블랙)코미디/루벤 외스틀룬드/크리스티안(클라에스 방), 앤(엘리자베스 모스)/151>
SQUARE n. a person who is conventional or conservative in taste or way of life
1. 야만과 문명
i) 새로운 기획전시를 홍보하기 위한 광고에서 연출가들은 폭파되어 사라지는 굶주린 여자아이를 등장시킨다. 금발의 서양소녀가 뜬금없이 폭파되는 장면은 정말 연출가들의 의도에 부합하는가? 야만스러운 이슬람 문명에 속수무책으로 도전에 직면한 서양세계를 말하고 싶기라도 했던 것인가? 영상에서 소녀를 무참히 제거해버리는 표현방식은 과연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옹호될 수 있는 것인가?
ii) 크리스티안은 만찬행사에 행위예술가를 초대한다. 분노에 가득찬 유인원을 연기하는 이 행위예술가는 어느 순간부터 예술과 현실의 경계를 넘어서기 시작하며, 만찬에 초대된 손님들을 위협하기에 이른다. 크리스티안은 예술이라 명명하였던 것이 오히려 예술의 가공자들을 유린할 때에 크리스티안은 그저 무력한 모습을 보여준다. 크리스티안이 말하는 이른바 예술이라는 것은 기획자 본인도 다룰 수 없는 대상이 되어 버린다. 그러나 크리스티안은 여전히 고상한 수석 큐레이터로 남아있고자 한다.
2. 빈부(貧富)
크리스티안은 소매치기 당한 커프스 단추와 휴대폰을 찾기 위해, 휴대폰의 위치를 추적한지 그 건물에 입주해 있는 모든 이들에게 위협하는 글을 남긴다. 그 건물은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다세대 주택이었고, 어느날 이곳에 살던 한 소년이 자신의 무고함을 주장하며 크리스티안 앞에 나타난다. 자신이 도둑질한 것으로 오인하는 부모님에 대해 크리스티안 본인이 해명할 것을 요구하는 것.
어린 소년의 말에 크리스티안은 전혀 귀기울이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것만을 찾는다. 또 자신이 사는 곳까지 찾아와 소년이 고함을 지를 때에조차 자신의 대외적 이미지에만 신경을 쓰는 크리스티안의 모습은 옹졸해 보이기까지 한다. 우스꽝스럽게도 크리스티안은 자신의 커프스 단추를 자신의 옷에서 발견하게 된다.
부와 명예를 등에 업고 다름 아닌 한낱 꼬마에게 위세를 떨치는 모습을 통해, 그가 평소 예술과 사회에 대해 말하면서도 정작 사회적 약자에 대해서는 매우 편협한 위선자임을 알 수 있다. 또한 부족함 없이 자라나는 크리스티안의 두 딸(스웨덴인)과 크리스티안을 찾아온 소년(이주민)의 허름한 모습이 대조적으로 비춰지면서 이주민의 빈곤이 고착화되는 사회현상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다.
3. 여성
크리스티안은 자신의 사회적 권위를 이용하여 상대를 성적으로 이용했다는 사실을 주저함 없이 인정한다. 또한 자신을 인터뷰하러 온 미국인 여성기자에게 줄곧 젠 체하지만, 정작 인터뷰가 진행되는 순간 자신이 어느 일간지에 실었던 논평에서 어떤 말을 했었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우둔한 지식인인 크리스티안. 소위 사회적 지위를 운운하며 스스로 추켜세우는 그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SQUARE n. an open place or area formed at the meeting of two or more streets
그래도 크리스티안은 용기가 있는 인물이었다. 그는 자신이 만들어 놓은 사각형에 갇혀있지 않고 마침내 광장으로 나왔다. 그가 신규 예술 프로젝트에 부여하고자 했던 돌봄, 책임, 평등의 의미는 그의 실천과 함께 진정한 의미를 띨 수 있었다. 요컨대 그는 대중으로부터 괴리된 지식인이 되는 대신 대중과 접점을 찾고 자신의 허물을 스스럼없이 인정하는 예술가가 되기를 택한 것이다. 소통에 나선 그의 용기는 과연 사람들로부터 어떤 반응을 이끌어낼 것인가? 예술과 일상, 야만과 문명, 빈부의 격차, 성별과 권력이 교차하는 <더 스퀘어> 속 세계는 다름아닌 우리의 세계이기도 하다. 우리가 지향하는 것은 무엇이며 성숙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는지 생각해보게 된다.'일상 > film'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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