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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끝나지 않았다일상/film 2018. 6. 27. 22:40
<아직 끝나지 않았다(Jusqu'à la garde)/드라마/자비에 르그랑/미리암(레아 드루케), 앙투안(드니 메노셰), 줄리앙(토마 지오리아)/93>
불꽃 튀기는 변론과 함께 꽤나 숨가쁘고 무거운 분위기에서 영화는 막을 연다. 마치 가족 내 송사(訟事)로 인해 앞으로 전개될 치열한 논리 다툼을 예고하는 듯하던 영화는 도입부를 넘긴 뒤로는 일체의 법적 논리와 무관하게 비이성적으로 흘러가는 가정 폭력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 영화가 그려내는 가정폭력의 이미지가 무서운 이유는 그것이 물리적인 폭력행사를 담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영화에는 피를 흘리는 장면이나 구타당하는 장면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영화 속 가정폭력은 눈으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드러난다. 회유하는 듯 하지만 협박하는 말투. 건전한 관계를 다시 만들어나가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여전히 과거에 대해 광적인 집착을 드러내는 가장의 모습. 영화에서 가장은 가정의 울타리를 지켜주는 사람이 아니라, 울라티 밖에서 울타리를 무너뜨리는 존재다.
친권이라는 법적 권리를 빙자하여 위압을 행사하는 아버지의 모습에서는 일견 가족법의 한계마저 느껴진다. 스스로 부모를 선택할 수 있는 누나 조세핀과 달리 어린 앙투안은 연령 미달로 부모를 선택할 수 없지만, 그가 아버지를 반기지 않는다는 것도 아버지의 그늘 아래 안전할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하다. 그러나 가정의 해체보다 가정의 유지에 중점을 둬야 한다는 까닭과, 가족의 나머지 구성원이 두려움에 시달리고 있다는 물증이 없는 까닭에 가정법원은 양육권과 친권을 주장하는 아버지의 손을 들어준다.
법의 잣대는 명확할 때에 효력을 유지할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 앙투안과 같이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은 때로 바로 그 잣대의 희생양이 되기도 한다. 마치 선거권 연령을 낮추는 문제와 관련해서 청소년이든 어른이든 참정권에 대한 이해도가 다르듯, 앙투안은 비록 부모를 선택할 수 없는 연령으로 분류되지만 엄마를 위해 영악한 거짓말을 지어낼 만큼 판단력이 있는 아이이다.
조세핀의 생일파티에서 점증하던 긴장감은 이내 극단적인 폭력행사로 끝을 맺는다. 마지막 장면에서 만성화된 가정폭력의 말로를 발견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이 와중에도 가해자는 본인이 피해자라 생각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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