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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불씨를 당기다일상/film 2018. 6. 7. 21:30
<버닝/미스터리/이창동/종수(유아인), 해미(전종서), 벤(스티븐 연)/148>
IDMB에서 평이 워낙 좋아서 오랜만에 영화관 방문. 영화 오프닝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름을 얼핏 봤던 것 같은데, 영화의 중반을 넘어서며 벤이 자신의 악취미를 드러낼 때서야 그게 무라카미 하루키의 <헛간을 태우다(納屋を焼く)>라는 걸 알았다. 일본어로 된 원서로 무라카미의 단편집을 접하던 때 읽었던 소설이었는데, 그게 어떤 내용이었더라 하고 기억을 더듬어가며 영화를 봤고, 영화가 끝난 후에는 단편집 <코끼리의 소멸(像の消滅)>을 다시 들춰보기도 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모티브로 하긴 했었도, 이 소설 자체는 약 30페이지 가량의 짧은 소설이기 때문에 148분이라는 짧지 않은 러닝타임을 메운 건 이창동 감독의 창작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실제로 영화에는 소설보다 여러가지 살이 덧붙기도 했고, 우리나라 정서에 맞게 각색된 내용도 있다.
1. 불 : 분노 또는 의심
좀 엉뚱하게 들리기는 하지만 태운다는 것(burning)은 소설에서는 '헛간'을, 영화에서는 '비닐하우스'를 의미한다. 종수에게 벤은 루시퍼 같은 존재다. 젊은 나이에 특별한 경제활동 없이 사치스러운 생활을 즐기는 벤은 파주에 위치한 종수의 집에 잠시 들른 날 종수에게 말한다. 자신은 취미가 있는데 한두달 간격으로 비닐하우스를 한 채씩 태운다고.
이 근방에 태울 만한 비닐하우스를 봐두었다는 벤의 말을 들은 종수는 그날 이후로 집 근처의 비닐하우스를 샅샅이 뒤지지만 벤이 태울거라던, 그리고 벌써 타 있었어야 할 비닐하우스는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찾다 찾다 불에 탄 비닐하우스를 발견하지 못한 종수는 꿈에서 불에 활활 타고 있는 비닐하우스에 홀린 듯 서 있는 어린 자신을 발견한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이 비닐하우스에 불을 당긴다.
난해한 이 행위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종수의 인생은 보람될 것이 없다. 자존심 강한 아버지는 사소한 다툼으로 재판정에 끌려 가 있고, 수년만에 만난 어머니는 후안무치로 아들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한다. 스러져가는 파주의 본가에 울려퍼지는 북한의 프로파간다는 종수를 억압하는 외부상황을 여실히 보여주는 듯하다. 무서울 정도로 무표정한 종수의 표정은 그만큼 자신의 마음 속에 나부끼는 분노를 의미한다. 급작스럽게 드러낸 벤이라는 존재는 종수에게는 처음에는 경계해야 할 대상이었다. 그러나 벤의 등장은 처음에는 잔잔한 파문으로 시작되었으며 결국은 커다란 출렁임이 된다.
2. 쪽빛 : 해미라는 메타포
남산의 끝자락에 해미는 살고 있다. 그녀가 사는 집은 북향이다. 그녀의 집에 빛이 들어오는 시각은 남산타워가 햇빛을 받아 해미의 집에 반사하는 짧은 순간이다. 종수에게 해미는 하나의 채널이자 해방구다.
해미는 어느 순간 아프리카에 여행을 갔다가 부시족의 의식(儀式) 가운데에서 '그레이트 헝거(Great Hunger)'를 발견한다. 단지 허기짐을 느끼는 '리틀 헝거'와 달리 인생의 의미를 찾지 못해 갈망을 느끼는 '그레이트 헝거'. 해미는 '그레이트 헝거'를 느껴 세상의 끝 아프리카에 다다랐고 그곳에서 벤이라는 인물을 만났다. 벤이 선(善)인지 악(惡)인지는 당장으로서는 분명치 않다. 분명한 것은 그녀는 벤에게 매료되었고, 그녀를 매개체로 하여 종수 또한 벤의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
기억할 만한 점은 사실 종수는 그녀를 잘 알지 못한다는 점이다. 첫만남에서 해미는 종수에게 먼저 아는 척을 하지만, 종수는 해미를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 그녀가 우물에 빠졌다는 이야기 또한 종수는 전혀 몰랐던 상황이지만, 주변인을 통해 이야기의 퍼즐을 억지로 끼워맞추기도 한다. 그리고 해미는 홀연히 사라진다. 분홍색 손목시계만을 남겨둔 채. 그녀는 종수에게 충분한 창구(窓口) 역할을 했을까?
3. 고양이와 판토마임 : 모든 것은 희미함 속에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은 이야기의 전개방식이 적나라하지 않다는 점이다. 종수는 해미가 키운다는 고양이를 끝내 보지 못한다. 해미의 집에 고양이의 배변이 있고 놓아둔 사료도 다 먹어해치우는데, 정작 고양이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고양이가 단 한 차례 등장하는 것은 영화의 후반부 중 벤의 집에서다. 어찌된 일인지 종수는 달아난 고양이를 품으로 불러 들이고, 다음 장면에서 해미가 즐겨 차던 분홍색 손목시계를 서랍장에서 발견한다.
'오렌지가 있다고 생각할 필요 없어. 오렌지가 없다는 걸 잊으면 되는 거야.' 해미가 종수에게 오렌지를 먹는 시늉을 해보이며 한 말이다. 문제는 어떤 방식에서 접근하느냐였는지 모른다. 종수는 마침내 결심을 세우고 벤과의 마지막 만남을 기다린다.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 불씨를 당긴다. 과연 종수를 움직이게 한 것은 무엇이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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