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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6 / 라말라(Ramallah) : 마나라 광장(Manarah Square)여행/2018 이스라엘-팔레스타인 2018. 9. 24. 01:09
다마섹(다마스커스) 게이트 인근의 아랍 버스터미널은 서안지구를 연결하는 대부분의 시외버스가 정차한다
그러한 곳답게 시간에 맞춰 기도를 올리는 무슬림의 모습도 보인다
라말라로 오기까지 예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만큼 도로 역시 열악했다
상당히 어수선한 라말라의 첫풍경
또 느낀 점은 경제가 열악할 수록 거리에 택시가 넘쳐나는 것 같다
이스라엘 지역에 비해 유달리 많이 눈에 띄는 택시비율
어수선한 거리의 풍경으로 인해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혼란스럽기는 하지만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사는 모습도 제법 '현대적'이다
라말라는 팔레스타인의 사실상(de facto) 수도라고도 한다. 유대인이 이 나라를 틀기 전까지만 해도 예루살렘이 팔레스타인의 중심이었지만, 이스라엘의 세력이 확고한 지금은 라말라가 팔레스타인 지역의 구심점이라 할 수 있다. 베들레헴 때와 달리 라말라로 가는 길은 정체가 심해서 직선거리상 먼길이 아닌데도 도착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라말라의 풍경은 굉장히 이색적이다. 국민소득이 높은 이스라엘에 비해 거리나 사람들의 행색이 누추하다는 것이 첫인상이다. 그렇지만 이곳이 이스라엘로부터 핍박받는 지역인가 하는 생각이 들만큼 활력이 넘친다. 라말라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마나라 광장을 중심으로 제법 현대적인 상점들도 즐비하다.
마나라 광장으로 향하는 거리
내가 가려고 눈여겨둔 곳은 스타&벅스라는 카페
팔레스타인까지 와서 웬 카페냐 할 수도 있지만
그냥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보고 싶었다
인도와 차도의 경계가 모호한 마나라 광장
여하간 광장은 광장이다
계속 내 시야에 잡혔던 분홍 옷차림의 아저씨
허리를 숙이면 저 구릿빛 관에서 음료가 나온다
사실 라말라로 오기로 한 건 그야말로 즉흥적인 결정이었기 때문에, 딱히 어디를 둘러봐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고 팔레스타인인들의 상징적으로 여기는 장소에 온다는 것에 의의를 두었다. 라말라로 오는 길에 본 아라파트의 그림이나 마나라 광장의 팔레스타인 국기와 사자상들은 그 자체로는 엄청난 풍경은 아니었지만 어떻든 상관없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렇게 사는구나 하며 바라볼 수 있다는 것으로 충분했다.
인연은 우연한 기회에 찾아왔다. 정말로 목적지가 없었던 나는 마나라 광장에 위치한 ‘스타 앤 벅스’라는 현대식 카페에 들어가 넋놓고 앉아 있었다. 햇빛을 피해 앉아 있는 나에게 직원이 다가와서는 저쪽에 있는 여대생 두 명이 나와 대화를 하고 싶단다.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고 멍하니 있는 상황에서 카페 직원이 만남을 주선하는 이 상황이 엄청 재미있게 느껴졌다. 한 번도 본 적도 머릿속에 그려본 적도 없는 히잡 차림의 여대생들하고 대화를 하라고? 도대체 무슨 대화를?
3층에 자리잡은 카페는 라말라의 중심 마나라 광장을 내려다보기에 딱이었다
이곳에서는 다윗의 별은 찾아볼 수 없고 온통 아랍글자와 팔레스타인 국기다
카페의 유리창에 착 달라붙어 셔터를 눌러대는 모습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유별나 보였나보다
내가 만난 두 여대생은 라하프와 아예츠라는 두 팔레스타인 학생이었다. 라하프는 영어가 유창했던 반면 아예츠는 라하프와 내 얘기를 듣기만 할 뿐 대화에 참여하지는 않았다. 나중에 깨달은 사실이지만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자신들이 처한 상황에 대해 대외에 적극적으로 알리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특히 서양인조차 찾기 힘든 이곳에 나 같은 극동 아시아 사람이 오면 팔레스타인의 현지사정을 파악하려고 온 사람, 또는 대외적으로 이스라엘의 부당한 통치를 알릴 수 있는 사람으로 여기는 것 같았다.
군사학을 공부한다는 이 두 학생과 대화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대목은 ‘이름’에 대한 부분이었다. 첫 번째는 라하프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내 말을 가로막았을 때였는데, 라말라에 관해 묘사할 때 ‘이스라엘’이라는 단어를 쓰지 말아줬으면 한다고 했다. 내가 들어와 있는 이 지역은 엄연히 팔레스타인 지역이라는 것이었다. 무의식중에 ‘내가 느낀 이스라엘은 이렇고, 이스라엘은 또한 저렇기도 하고..’ 말하고 있었는데 듣기에 거북했던 모양이다. 역지사지를 해보자면 어느 외국인이 독도를 관광하면서 ‘다케시마가 아름답군요’하고 말한다면 얼마나 기가 찰까.
두 번째는 이 두 학생의 이름이 문제였다. ‘아예프’라는 이름은 발음은 나름 수월하게 할 수 있었는데, ‘라하프’에서 ‘하’라는 발음이 어설펐나보다. 나는 분명 ‘하’를 발음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두 학생의 귀에는 이음절짜리 ‘라프’로 들려서 내가 어설프게 발음할 때마다 실소를 멈추지 못했다. 아랍어에는 목구멍에서 깊이 내뱉는 ‘하’ 발음이 있는데 딱 한 번 그럴듯하게 발음할 수 있었다.
내게 시간을 할애해준(?) 두 팔레스타인 친구를 소개합니다 :) 라하프(왼) & 아예프(오른)
마나라 광장을 좀 벗어나 시청으로 향했다
라말라를 세운 시민들//
라하프와 아예프는 팔레스타인에서 고등교육을 받고 있다는 것부터가 남다른 기회를 얻은 친구들 같았다
라하프가 굉장히 유서 깊은 주택이라 해서 찍었지만 정작 안내소로 쓰이고 있던 장소//
또한 두 학생 모두 신세대다운 면이 있어서 내게 SNS로 친구를 맺자고도 했지만 내가 SNS를 하지 않는다
그런가 하면 카페에서 만났을 때 이 두 친구도 시샤(물담배)를 피우고 있었던 걸 보면
아랍문화에서 담배가 굉장히 보편적인 것 같다
시청
내친김에 라하프는 내게 라말라를 소개해주고 싶다며 아예 카페를 나서 시청 방면으로 가기 시작했다. 커피 값도 본인들이 계산했다. 너 이게 무슨 꽃인지 알아? 여기서는 되게 흔한 꽃인데 자스민이라고 하는 거야. 저 건물은 엄청 오래된 건물이야. 여기가 구시가지인데 괜찮은 공원이 있으니 거기 가보지 않을래? 대화는 이런 식으로 피상적이었다. 그렇다. 라말라에는 팔레스타인의 역사랄 것이 없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그저 예루살렘에 역사를 남겨둔 채 라말라로 황급히 거처를 옮겨야 했을 뿐이다. 오래된 건물이라면서도 어떤 의미가 있냐고 물으면 대답하지 못했고, 하다 못해 거리에서 발견한 꽃을 소개할 뿐이었다. 물론 자스민을 직접 눈으로 본 건 처음이었지만 말이다.
We Ramallah
시청 인근에는 제법 근사한 음식점들이 모여 있다
평범한 여느 대학생들
그러나 우리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조금만 시선을 돌려도 휑한 공터에 무계획적으로 들어선 빌딩들이 보인다
팔레스타인에서 먹은 저녁 한 끼
전투기 소리가 들리지 않는 맑은 하늘이었는데 저녁까지 생각보다 근사해서 속이 얹힌 것처럼 불편했다
물론 잠깐 대화를 나누어 보았을 때, 이 두 학생은 생각이 깊은 친구들이었다. 내가 대놓고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자행되는 테러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팔레스타인의 극단주의에 대해 설명하고, 히잡 착용이 여성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 아니냐고 하면 이것 또한 구구절절 변명 아닌 설명을 해주었다.
가령 비교적 영토와 수자원을 확보하고 있는 서안지구와 달리 매우 좁은 공간에―그것도 수자원도 없는 이 지역에서는 이스라엘 정부에 기근세라는 명분으로 부당한 세금까지 내야 한다―고립되어 있는 가자 지구의 경우는 생존권마저 위태롭지만 이스라엘 땅으로 넘어갈 수도 없으며 이집트에서도 받아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한 본인들은 순수하게 종교적인 입장에서 의복을 착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슬람교의 수호자를 자처하고 있는 사우디 아라비아의 여성들이 정작 해외여행을 가서는 히잡을 안 쓰는 것을 보면 그러지 않았으면 한다고도 했다. 어떤 것은 말 그대로 변명으로 들리기도 했고, 또 어떤 것에는 공감이 가기도 했다.
팔레스타인 사람의 바람은 자신들의 땅에 살아오던 대로 사는 것이라고 한다
눈대중으로 길을 익혀두기는 했지만(GPS 안되는 상황) 내심 길을 잃을까 조마조마 했다
다시 마나라 광장
왔던 길 그대로 되돌아 가는 길
저물녁의 햇빛에 내마음은 항상 동요한다
정신없이 시간이 흘러가 있었다. 목적 없이 왔던 라말라에서 우연으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시청을 좀 지나서 두 일행과 헤어진 나는 예루살렘에서 도착한 뒤 저녁을 먹기에는 시간이 너무 늦어질 것 같아 라말라에서 저녁을 해결하기로 했다. 과연 이곳이 살던 땅을 떠나온 사람들이 급히 마련한 보금자리인가 싶을 만큼 근사한 식당이었다. 갈릴리 호수를 여행할 때 하늘을 가로지르는 전투기의 불길한 굉음을 들을 때마다 간담이 서늘해지곤 했는데, 정작 팔레스타인 지역에서는 전투기가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베들레헴의 장벽을 방문했을 때 기념품가게에서 기념할 만한 작은 그림을 샀다. 그 그림 속 청년은 무언가를 향해 폭탄 대신 꽃다발을 던지려 하고 있었다.
다시 되돌아온 예루살렘에서 느낀 안도감은 순전히 익숙함에 대한 안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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