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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쉬르의 마지막 강의일상/book 2018. 11. 13. 23:25
<소쉬르의 마지막 강의/페르낭드 드 소쉬르/민음사>
이러한 차이들을 만든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장소의 차이인가?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잠시만 성찰해 보아도 이 같은 차이들이 시간을 통해서만 도래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변화는 흘러간 시간을 함의한다. ···우리가 지리적 사실의 설명에 있어 분리선을 갖다 놓는 것은 언어에 대한 일종의 비유를 통해서이다. 시간이라는 요인이 두 측면에 걸쳐 있기 때문에 우리는 축약을 통해서 그것을 제거하며 우리가 사용하는 표현들을 취하게 된다. 한 가지 더 말해 둘 것은 차이들을 만드는 데 작동하는 것은 오직 시간이라는 것이다.
1) 향토 정신의 힘. 제한된 공동체에서 발달하는 습관들로서 그것들은 강력하다. 각 개인의 유년기의 습관들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로서, 그 자체에 양도된 이 같은 영향은 여러 관습들을 무한하게 다양화시킬 수 있게 된다.
2) 사람들을 정확하게 만드는 것 옆에는 인간들을 서로 섞고 이어주는 모든 것이 존재한다. 이 두 번째 힘은 첫 번째 힘을 교정한다. 마을에는 다른 곳에서 온 나그네가 있다. 또는 마을의 주민들은 축제, 장을 보기 위해 이웃지방으로 이동하는 경우가 생긴다. 전쟁의 영향은 다양한 장소의 사람들을 결합시키기도 한다. 등등
―p.126
언어에 대한 우리의 최초의 개념은 그 둘로 구성된 혼합적 총체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자 표기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고 그것을 제자리에 갖다 놓는 일은 언어 자체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교정해 줄 것이다. 문자 표기로부터 분리되지 않은 언어는 아직 정의되지 않은 대상이다. 언어와 문자는 두 개의 기호 체계로서 그 가운데 하나는 다른 하나를 오직 재현하는 사명을 갖는다. 그것들 각각의 상호적 가치는 잘못 인식될 수 있는 위험 소지가 전혀 없어 보일 수도 있다. 요컨대, 하나는 다른 하나의 하인이거나 이미지일 뿐이다.
이런 상황은 여러가지 원인에 기인한다. 첫 번째 원인은 문자 표기를 통하여 고정된 단어들의 이미지가 영속적이며 견고한 대상으로서 우리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 주기 때문이다. 이 이미지는 고정된다. 둘째, 개인들 대부분은 청각적 인상보다는 시각적 인상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미지는 실제로 살과 뼈로 이루어진 것으로 나타나는데, 그 이유는 이미지가 고정되고 촉지 가능하며 가시적이기 때문이다. 반면 음성 언어는 포착되지 않고 그것이 공명을 멈추자마자 허공에서 사라진다. 세 번째 원인으로서, 우리는 문자 표기라는 액면 그대로의 사실만 염두에 두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문어라고 부르는 것을 성립하는 모든 것과 더불어 고려하기 때문이다.
―p.136~137
언어(랑그) 속에서 우리는 상기 가능한(évoquables) 기호들의 총합을 갖고 있으나, 그 운동은 오직 발화(파롤)를 통해서만 개입하는 것이며, 그것의 잠재적 상태 속에서 이 같은 기호들은 완벽하게 실재적이다. 따라서 이 같은 대상은 단지 구체적인 본질에 속할 뿐 아니라 직접적인 연구를 가능하게 하는 종류에 속하고, 마치 수집가의 상자 속에 분류되어 있는 나비들과 흡사하다. 우리는 언어(랑그)와 관련된 것을 고정시킬 수 있다. 요컨대 이 같은 특징 덕분에 하나의 사전과 문법은 언어(랑그) 속에 포함되어 있는 것을 표상하는 납득할 만하며 적절한 이미지라고 말할 수 있다.
―p.268
첫 번째 혹은 최고 진리는 다음과 같다. 언어 기호는 자의적이다. 하나의 주어진 청각 이미지를 한정된 개념과 결합시키는 관계, 그리고 개념과 청각 이미지에 기호로서의 가치를 부여하는 관계는 철저하게 자의적 관계다.
두 번째 원리 또는 두 번째 최고의 진리는 다음가 같다. 언어 기호는 하나의 외연을 소유하고 있고, 이 외연은 하나의 유일한 차원에서 전개된다. 이 같은 원리로부터 일정 수의 적용들이 도출된다. ···만약 우리가 문장 속에서 단어들을 재단할 수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이 원리의 결과인 것이다. ···여러 개의 차원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복잡화를 제공할 수 있는 기호들의 종류와 비교하여 청각 기호는 하나의 선의 상태로 형상화될 수 있는 공간 속에서만 복잡화를 제공할 수 있다. 기호의 모든 요소들은 하나의 연쇄를 이루면서 계속된다.
―p.275~277
어떤 언어든지 임의의 한 언어를 연구하면서 그 언어가 무근거적인 것으로 이루어진 파괴될 수 없는 덩어리에 대하여 근거적 요소에 부여하는 자리를 우리는 곧장 이해할 수 있다. 즉 설정해야 할 층위가 존재하며 그 층위에서 무근거적 요소의 비율이 '영(0)'으로 환원될 수 없으며, 또한 일정한 최소치 아래로 내려갈 수도 없다. 영어는 무근거성에 대해 독일어보다 훨씬 중요한 자리를 부여한다. 하지만 이 같은 대립의 양상들 가운데 하나를 선명하게 부각시킬 수 있다는 의미에서 우리는 무근거성이 최대치에 이르는 언어들은 보다 어휘적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그것이 최소치에 이르는 언어들은 보다 문법적이라고 진술할 수 있다.
―p.294~295
언어(랑그) 속에 발화(파롤), 즉 지각된 발화들의 합을 통하여 직접적으로 또는 간접적으로 언어 속에 들어가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마찬가지로 언어(랑그)라고 불리는 생산물의 구축을 통해서만 가능한 발화가 존재한다. ···이 같은 생산물을 구축하고 고정하는 것은 집단적 지성의 작품이다. 한 단어가 언어 속에 진입했다고 말하는 것은 그것이 집단적 승인을 획득했다고 말하는 것이다. 언어(랑그) 속에 있는 모든 것은 암묵적으로 집단적이다. 반면 집단적 발화는 없다. 발화 행위는 개인적인 것으로 남아 있으며 더구나 그것은 순간적인 것이다. 시장이라는 장소에 모여 있는 군중을 생각해 보라. 어떤 방식으로 언어(랑그)가 이 언중 속에 현존하는가. 그 언중을 구성하는 사람들 각자의 두뇌 속에 존재하는 저장의 형식 아래에서 존재한다. ···이것은 비록 각 개인의 내부에 있지만 동시에 집단적이며 이것은 개인의 의지를 벗어나 위치해 있다.
―p.297~298
어떤 용어를 택하건 개념의 측면으로 미끄러질 것이며, 한 부분만 지칭하게 될 위험에 처할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한 부분조차 갖지 못할 수도 있다.
―p.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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