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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단편소설 두 편일상/book 2018. 11. 19. 00:19
투쟁 영역의 확장/미셸 우엘벡/열린책들
저물녘 맹수들의 싸움/앙리프레데리크 블랑/열린책들
<투쟁 영역의 확장>
내가 본 것들을 쓰지 않는다면 나는 그만큼, 어쩌면 그보다 조금 더 고통스러울 것이다. 나는 다만 조금 더 고통스러울 것임을 강조하고 싶다. 왜냐하면 글쓰기가 고통을 덜어주는 것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지난 일을 되새기게 하고, 그 성격을 규정할 뿐이다. 그것은 일관성이 있는지, 사실적인지 하는 의문을 갖게 한다. 우리는 여전히 핏빛 안개 속에서 헤매고 있지만, 거기에는 어떤 좌표들이 있다. 불과 몇 미터 앞에 혼란이 있다.
독서의 절대적이고 기적적인 힘과는 얼마나 대조되는가! 평생 읽기만 하면 소원이 이루어질까? ···세상이라는 구조물은 고통스럽고 불충분하다. 그것은 변경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정말로, 나는 평생 읽기만 하는 것이 내게는 차라리 적합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p.19~20
<신은 불공평을 원하셨지, 불의를 원하지는 않았다>
―p.41
우리 문명은 생명의 고갈로 고통받고 있다고 그는 말한다. 루이 14세가 살았던 세기는 삶에 대한 욕망이 컸고, 공인된 문화가 육체적 쾌락을 거부에 역점을 두었으며, 사교 생활은 불완전한 즐거움밖에 줄 수 없었기 때문에, 진정하고 유일한 환희는 신에 대한 믿음 속에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이런 말이 오늘날에는 더 이상 먹혀들지 않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말하는 생명의 고갈의 표본이 바로 나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성욕도 없고, 야망도 없고, 별다른 기분 전환거리도 없는 상태. 나는 그에게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른다. 내 생각에는 사람들이 대체로 다 그렇지 않나 싶다. 나는 나 자신이 가장 정상적이고 평범한 소시민이 아닐까 생각한다. ···몇 마디 덧붙이자면, 나는 오늘날의 모든 사람들이 인생의 어느 한때 자신이 낙오자 내지는 패배자라는 느낌을 갖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고 본다.
―p.43~44
이따금 나는 결핍된 삶 속에 영원히 자리 잡게 될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것은 다시 말해서 비교적 통증이 없는 권태가 나에게 일상적인 삶을 계속 살게 할 것이라는 느낌이다. 그러나 그것은 또 다른 착각이다. 지속되는 권태는 견디기 힘든 상황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조만간 확실한 통증이라는 고통스러운 깨달음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내게 현재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 바로 그것이다.
―p.68
나는 다음과 같이 대답할 것이다. 청년기는 인생의 중요한 시기일 뿐 아니라, 인생의 의미에 대해서 충분히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시기라고. 충동의 힘은 열세 살 가량부터 시작되어서 그 후로는 조금씩 조금씩 감소하거나, 행동 모델 안에서 용해되어 버린다. 그리하여 그 힘은 굳어 버린 힘에 불과하게 되는 것이다. 최초의 폭발의 강렬함 때문에, 그 갈등의 해결은 여러 해 동안이나 불확실한 것으로 남는다. 이것이 바로 전기 역학에서 임시 체제라고 부르는 현상이다. 그러나 진동은 점차 약해지다가 나중에는 멜랑콜리하고 부드러운 긴 파동으로 사라져 버린다. 이 순간 이후부터 시작되는 모든 것인 이미 잘 알려진 대로이다. 그리고 인생은 다만 죽음을 위한 준비에 불과하다. 좀 더 거칠게 그리고 좀 덜 정확하게, 말하자면 인간이란 점점 쇠약해지는 청춘인 것이다.
―p.129
자유주의 경제는 투쟁 영역의 확장이다.
―p.140
<Tat twam asi(네가 그이니라)>
―p.180
「어떤 이들은 너무 일찍 스스로 살아갈 수 없다는 공포를 경험한다. 사실 그들은 자신의 삶을 정면으로 적나라하게 아무런 배경 없이 통째로 바라보는 것을 참지 못한다. 그들의 존재는 자연의 법칙에 예외라는 것을 나는 인정한다. 왜냐하면 이런 본질적인 부적응적 단절 상태는 유전적 적응 능력과는 별도의 문제일 뿐 아니라, 그것이 전제로 하는 과도한 명석성, 즉 평범한 존재의 지각 공식을 분명히 넘어선 명석성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이따금 이런 참을 수 없는 단절이 접근 불가능한 절대성을 향한 빛나고 긴장되고 영원한 갈망으로 승화되기 위해서는, 그들만큼 순수하고 투명한 다른 존재를 그들 앞에 데려다 놓는 것으로 충분하다. 한 개의 거울이 매일매일 똑같은 절망적인 모습만 비춘다면, 평행으로 놓인 두 개의 거울은 밀도 높고 순수한 그물망 같은 상을 만들어 낸다. 그것은 사람의 시선을 세상의 모든 고통 너머에 있는 무한궤도, 그 우주 공간의 순수성 속으로 끌고 간다.」
―p.209~210
「우리는 누구나 늙어서 죽습니다. 개개인에게 늙는다는 것과 죽는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참을 수 없는 일일 것입니다. 우리 문명사회에서, 절대적이고 극단적인 이 생각은 점점 발전해서 우리 의식의 영역을 점차 채워 가고 있으며 다른 어떤 것도 살아남을 여지를 남겨 주지 않습니다. 그런 식으로 해서, 차츰 세상의 경계선이 분명해집니다. 욕망 그 자체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고통, 질투, 공포만 남아 있습니다. ···현대인들의 정신 상태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그것은 아마도 <고통>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p.212
<저물녘 맹수들의 싸움>
「그는 사람들을 깨우쳐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을 눈멀게 하여 마음대로 좌지우지하기 위해 자기의 지식을 써먹죠. 그는 진실을 은폐하고 사람들의 눈에 가루를 뿌리고, 모든 이를 감언이설로 속이기 위해 자신의 지성을 이용해요. 이기주의와 비겁함을 퍼뜨리죠. 남에 대한 무관심과 대상에 대한 병적인 집착의 씨앗을 사람들 마음에 뿌리고요. 그렇지만 그는 잘생겼고 매혹적이라고요. 왜냐하면 그는 겉치레의 왕자니까요. 그의 목적은 사람들을 고독 속에 빠뜨리는 것이죠. 사람들이 고독하면 할수록 그들 안에 침투하기 쉽고, 맘대로 다루거나 속이거나 타락시키기가 쉬워지니까요」
―p.36~37
「충동적으로 상승하려 하지 마십시오. 돈과 성공을 좇는 일은 신경을 소모시키는 작업이라서 사고가 날 수 있어요. 올라갈 때는 오래 걸리지만, 도로 내려가는 거야 금방이죠.」
―p.49
그는 불안이 손목에 찬 팔찌 겸용 시계만큼이나 자기에게 이미 익숙해져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만 그는 언제나 자기 자신에게, 또 남들 앞에서, 지극히 정서가 안정되고 삶의 기쁨이 넘치는 사람인 양 연기를 해왔던 것이다. 마치 행복한 흉내를 내면 행복해질 수 있다는 듯이 말이다. 그리고 자기의 두려움을 부정하면 할수록 두려움은 그의 내부에서 깊숙이 똬리를 틀었다. 일에 취해 지옥행 열차처럼 정신없이 살아가는 동안, 그는 불안을 이 달리기 경주에다 흩뿌려 버리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그러는 사이에 불안은 흉물스러운 두더지처럼 그의 내장 속에 구덩이를 파고 또 파들어 가면서 참을성 있게 때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p.50~51
「당신 지능은 이익을 계산하는 데만 쓰이고, 말을 했다 하면 그건 혜택을 얻어 내거나 자신의 비겁함을 정당화시키기 위해서지. 자기보다 약한 자는 모두 짓밟고, 자기보다 힘센 자 앞에선 납작 엎드리고, 자기와 비슷한 부류를 바보로 만드는 데 능숙하다 해서 자기가 아주 똑똑한 줄 알고, 나쁜 짓을 할 수 있는 힘이 있으니까 자기가 자유롭다고 생각하지. 보잘 것 없는 자들의 정신적 비참함을 이용해서 놀랍게 이익을 취할 줄 아니까 자신이 우월하다고 생각하지. 당신의 구린내 나는 심리학 덕분에 당신의 그들의 사리 분별을 흐려놓지······. 해봐요. 어디 해보라고요, 불쌍한 양들의 등에서 털을 계속 뜯어내 보라고요. 하지만 그들이 항상 당신보다 한 수 위인 무언가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해요. 당신이 절대 그들에게서 뺏을 수 없고, 당신이 절대 알 수도 없는 것, 가장 달콤하고 가장 섬세하고 가장 세련된 기쁨, 그건 바로 양심에 거리낌이 없다는 거예요. 잘 자요.」
―p.108~109
이제 강은 약품을 만드는 공장의 폐수가 쏟아지는 하수구가 되었다. 그가 인디언 놀이를 하며 놀단 풀밭에는 주유소가 들어섰다. 농장은 교통사고로 장애인이 된 사람들의 재활원이 되었다. 지저귀는 꾀꼬리 소리 대신 이제는 자동차 소리만 들려왔다. 해가 지는 곳은 이제 누런 황금빛 보리밭 뒤편이 아니라 고속도로 뒤쪽이다. 그 무엇의 이름으로 사람들은 그의 어린 시절을 파괴해 버렸는가? 그 무엇의 이름으로 그는 살아왔던가? 잔고가 두둑한 은행 계좌와 새 차와 사 모은 넥타이를 지니고, 그 무엇의 이름으로 그는 죽을 것인가? 무엇의 이름으로······?
―p.147
「당신보다 더 큰 것에 당신을 바치고, 당신 자신의 끝까지 가보시오. 당신의 틀에서 벗어나 그냥 아래로 떨어져 보시오. 안에서 비추는 빛을 향하여 심연의 밑바닥까지 잠겨 보시오. 하느님은 우리 이에 계신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 저 깊은 곳에 계십니다. 당신은 낮은 곳까지 내려가 보았고, 하느님을 손으로 만져 볼 뻔했으면서도, 벌써 하느님께 등을 돌리고 있소! 절망과 근심의 어두컴컴한 골짜기에서 당신은 당신의 영혼과 당신의 내밀한 진실, 그리고 구멍 속 깊은 곳에 도사린 작은 생쥐처럼 당신 안에 움츠리고 있는 순수한 본성을 느꼈던 거요. 그런데 벌써 지옥 같은 잔꾀를 다시 부리려 하다니······. 저항하시오, 형제여, 저항하시오! 사탄과 그의 갖은 허식에서 멀이지시오! 허위가 제공하는 쾌락, 그 쾌락은 쾌락이 아니오. 위선이 부여하는 영광, 그 영광은 영광이 아니오. 평화롭지 않은 것이 주는 평화, 그 평화는 평화가 아니오. 거짓된 이 세상에서 죽으시오. 당신 자신에게서 죽으시오. 그러면 당신은 환한 빛 속에서 다시 태어나게 되리다······!」
―p.163~164
「자칼은 사냥꾼 소리가 들리면, 사람들이 저를 찾고 있다고 생각하는 법이지.」
―p.1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