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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길티/스릴러/구스타브 몰러/아스게르(야곱 세데르그렌)/88>
<더 길티>라는 제목부터가 시선을 사로잡았던 영화로, 금요일 퇴근길 이 영화를 보았다. (아마도 직위해제된 상태인 듯한) 경찰 한 명(아스게르)이 전화로 신고를 접수하고 수리하는 다소 부산스러운 장면과 함께 영화의 도입부가 시작된다. 영화가 스릴러물이다보니 '신고'라는 소재를 토대로 어떤 이야기가 전개될지 기다리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계속 기다려도 영화의 장소에 변화도 없고 경찰은 계속 신고를 수리하기만 한다. 정확히 어떤 장면을 포착해야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잡을 수 있을까 생각을 하는 순간, 아스게르가 한 여성이 납치되었다는 신고를 접하면서 긴장감이 고조된다. 그렇다. 이 영화는 일체 장소의 이동없이 협소한 사무실을 배경으로 아스게르의 목소리와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긴박한 목소리만을 도구 삼아 이야기를 전개한다.
OST가 잘 만들어서 청각을 자극하는 영화는 보았지만, 전화기를 매개로 제한된 음성으로 이야기의 얼개를 짜나가는 영화는 처음인 것 같다. 북유럽에서는 이렇게 영화를 만드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영화에 반전의 장치를 심어놓았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놀라게 된다. 사실 영화가 끝나기 5분 전까지만 해도 도대체 이 영화의 제목이 왜 <더 길티>이며, 누구의 유죄에 대해서 이야기하겠다는 건지 알기가 어렵다. 다만 자신의 근무시간이 종료되었는데도 집요하게 납치된 여성을 구출하려는 아스게르에게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 짐작을 할 뿐.
영화의 마지막에 고백되는 죄는 다음과 같다. 우선 납치되었다는 정황만으로 피해자라 여겨졌던 음성 속 여성의 죄가 있다. 다음으로는 주인공 아스게르가 왜 법적인 소송에 얽히게 되었는지 본인이 스스로 실토하는 죄가 있다. 전자(前者)의 죄는 정서적 불안정과 과대망상으로 인해 저질러진 죄인 반면, 후자(後者)의 죄는 오만(傲慢)과 비뚤어진 권위의식이 불러온 죄다. 비록 각각의 죄는 서로 다른 원인에서 비롯되었지만, 결과는 똑같다. 무고한 생명을 박탈(剝奪)했다는 사실.
지리한 법적 공방을 통해 정당방위를 사유로 책임을 모면하려 했던 아스게르는 제정신으로 돌아온 전화 속 여성이 자신의 죄를 자각하고 본인의 목숨을 끊으려 했을 때, 얼마나 죄책감을 느꼈을까. 자신은 동료들을 포섭하여 자신에게 유리한 진술을 준비해 왔는데, 동일한 범죄를 저지를 저 여성은 책임을 짊어지려 하고 있으니 말이다. 마침내 그는 이 상황을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애당초 영화의 러닝타임 내내 여성의 사건에 매달려 있었다는 것은 사실은 그가 심한 자책감에 시달리고 있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떠오르는 물음표는 자신의 목숨을 던지려 했던 여성이든 자신의 죄를 자백한 아스게르이든, 자신의 악행(惡行)을 인정하고 참회한다는 사실로 선인(善人)이라 할 수 있을까. 영화의 제목은 <더 길티>이다. 이러나저러나 그들의 죄 자체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범죄(犯罪) 이후 이들이 느끼는 후회감과 괴로움을 보며 연민(憐憫)을 느끼게 되는 것은 왜일까.
<샤잠/액션, 판타지/데이비드 F. 샌드버그/샤잠(제커리 리바이), 시바나 박사(마크 스트롱), 빌리 뱃슨(애셔 앤젤)/132>
DC 영화가 호불호를 많이 탄다고들 하는데 <샤잠> 역시 마블만큼의 인기몰이를 하지는 못하는 모양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런 히어로물을 오랜만에 봐서 그런지 나쁘지 않게 봤다. 사실 이 영화를 본 이유는 단지 포스터에 등장하는 인물이 인도인 혼혈처럼 생기기도 했고 '샤잠'이라는 단어도 어쩐지 인도 느낌이 풍겼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히어로물에 전형적인 조각미남이 아닌 인물이 등장한다는 사실이 재미있었다. (검색을 해보니 재커리 리바이는 실제로는 웨일즈 계통이라 하고, '샤잠'도 앞글자를 따온 단어(Acronym)에 불과하다고 한다;;)
물론 기존에 <블랙펜서>를 통해 흑인이 영웅으로 등장하기는 했지만, 완전히 서구화된 흑인이 소개되었던 반면 이 영화에 등장하는 샤잠은 인간적인 면에서는 <가디언즈 오브 더 갤럭시>의 피터 퀼(크리스 프랫) 같기도 하고 스테레오타입을 벗어난 모습들이 있다. 가령 꼬마 빌리 뱃슨이 입양된 가족이 모두 고아로 형성되어 있다든가, 게다가 그 구성이 대단히 다문화적이라든가 하는 점은 신선하다. 히어로물의 특성상 선악의 대결구도가 명확하고 전개가 어느 정도 예상되는 점은 있지만, 그 점을 감안하더라도 재미있게 본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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