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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아둔 말, 삼킨 말, 그리고 간직한 말일상/film 2019. 3. 11. 00:03
<나는 다른 언어로 꿈을 꾼다/드라마/에르네스토 콘트레라스/
마르틴(페르난도 알바레스 레베일), 이사우로(호세 마누엘 폰셀리스), 에바리스토(엘리지오 메렌테스)/101>
프랑스어 시험은 매해 서초역 인근 중학교에서 이루어지는데, 2일째의 말하기 시험에 10시 20분까지 소집시간이 적혀 있었다. 그런데 시험을 보고 시험장을 나왔을 때 11시가 채 안 돼 있었다. 나 같은 직장인으로서는 토요일과 일요일은 상징적이고도 황금같은 시간인데, 이틀을 오롯이 시험에 할애하고 나니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인근 영화관에서 본 영화가 이 영화다.
멕시코 영화라는 건 알았고, 보고 싶었던 영화이기도 했는데 시험을 본 직후라서 그런지 스페인어가 계속 나오니까 피로한 느낌마저 들었다'~';; 보면서 프랑스어보다는 스페인어를 계속 공부하면 어땠을까 생각도 해보고.. 음.. '말(言)'이라는 것. 사실은 인간의 성대가 떨리면서 나오는 여러 종류의 소리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다만 그것을 프랑스에서는 그들 나름대로 소리를 내고, 우리나라에서는 우리들 나름대로 소리를 내는 것일 뿐.
극중의 마르틴이라는 청년 언어학자처럼 사라져가는 소리들을 발굴하고 보존하는 일은 대단히 중요한 것 같다. 오래전 제주도에 갔을 때 국도의 버스정류소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불쑥 할머니가 길을 물어오신 적이 있다. 그런데 그 말을 하나도 알아듣지 못해서 벙쪘던 기억이 있다. 사실 모두 다 똑같은 언어를 쓴다면 편하지 않은까. 과격하게 말하자면 모든 나라가 영어를 쓴다면 정말 편할까 하는 질문을 던져본다.
오늘날 SNS 등 각종 매체를 통해 의견을 교류할 수 있는 공간이 넓어졌다고 하지만, 사람들의 생각까지 폭넓어졌는지 모르겠다. 오히려 온라인을 가득 메우는 혐오발언들을 보면 소통의 장은 넓어졌지만 인간의 생각은 오히려 편협해진 것이 아닌가 싶다. 영어라는 똑같은 플랫폼에 들어서면 정말 인간은 자유롭게 소통하고 평등하게 발언권을 가질까? 우리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가는 소수언어들을 목격하며 씁쓸함과 아쉬움 섞인 감정을 느끼는 것은, '동질성'의 반대지점에서 '다양성'이 우리 삶에 가져다주는 풍요로움을 이미 경험해 왔기 때문이 아닐까.
<퍼미션/로맨스, 코미디/브라이언 크라노/애나(레베카 홀), 윌(댄 스티븐스)/98>
화두를 던진 것까지는 좋았는데, 뭔가 어수선하게 이야기를 늘어놓다가 정돈이 잘 안 된 느낌. 이야기를 토막내서 하나씩 뜯어보면 공감할 만한 내용이 아주 없었던 건 아닌데 전반적으로 충분히 설명되지 않고 붕 떠버린 느낌이다. 예전에 어느 다큐멘터리에서 본 것 같은데, 우리나라 사람이 외국의 어느 부부를 인터뷰하는 내용이 있었다. 부부는 폴리가미(다부다처) 형태로 결혼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현상황이 상당히 만족스럽다고 말했고, 대답을 들은 우리나라 사람은 질투를 견딜 수 있겠냐며 좀체 표정을 관리하지 못하던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사랑하는 방식과 별개로 결혼을 유지하는 방식은 보다 현실적인 부분과 결부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기본적으로 결혼이라는 것은 사회적 합의에 기반하고 있고, 좀 더 좁은 의미로는 법률의 토대 위에 성립한다. 그럼에도 결혼의 형태는 명료하게 정리하기 어려운 주제인 듯하다. 작년까지 동성혼을 허용하는 국가가 늘어났는가 하면, 프랑스처럼 Pacs라는 제도를 통해 간소화된 결혼형태를 도입한 국가도 있고, 또한 나라별로 사실혼에 대한 법적인 보장 수준도 다 다르다.
이 영화에 대해 아쉬움을 느꼈던 것은 아마도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거나 또는 사각지대에 놓인 결혼형태에 대해 시사점을 던져주는 것보다, 단지 어느 커플의 일탈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엉뚱한 설정 자체는 색달라서 좋았지만, 그러한 '일탈'이라는 소재에 대해서조차도 충분히 소화해내지 못한 듯한 인상을 준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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