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올더스 헉슬리(Aldous Leonard Huxley)>
"우린 변화를 원하지 않아요. 모든 변화는 안정에 위협이 되니까요. 우리들이 새로운 발명들을 실생활에 적용하기를 그토록 삼가는 또 다른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순수 과학의 모든 발견은 잠재적인 파괴성을 지니기 때문에 때로는 과학까지도 적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간주해야 됩니다. 그래요, 과학까지도요."
" 사람들은 마치 진리와 아름다움이 지상(至上)의 선이기라도 한 것처럼 여전히 떠들어댔어. 9년 전쟁이 터지기 직전까지 그랬지. 전쟁은 정말로 그들의 인식을 바꿔놓았어. 사방에서 탄저열 폭탄이 터지는 마당에 진리나 아름다움이나 지식이 무슨 소용이 있겠나? 9년 전쟁 이후에, 그때부터 과학이 처음으로 통제를 받기 시작했지. 그때는 사람들이 식욕까지도 통제를 받을 각오가 되어 있었으니까. 조용한 삶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좋다는 식이었어. 우리들은 그 후부터 통제를 계속해왔어. 물론 그것은 진실을 위해서는 별로 좋은 일이 아니었지. 하지만 행복을 위해서는 아주 좋은 일이었어. 인간은 무엇인가를 얻으려면 필연적으로 대가를 치러야 해. 행복은 대가를 치러야만 성취할 수 있다고."
고전(古典)은 읽어도 읽어도 그 끝이 없었으니...이번에는 사회 교과서에서 말로만 들어오던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다. 원래 독서를 많이 하는 편은 아닌데, 요새 좀 몰아서 읽고 있다=__=아무래도 머릿속이 복잡하니 무의식중에 활자로 머릿속을 채우고 있는지도...
<멋진 신세계>는 오래 전부터 꼭 읽고 싶었던 책 중에 하나였다. 굉장히 딱딱한 책일 줄 알았는데, 그리 두꺼운 책도 아니었고 읽기 어렵지도 않았다. 17장에서 작가가 말하고 싶은 주제가 본격적으로 다뤄지는데, 기존관념을 뒤엎는 신선한 논리 전개를 읽어내려가며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요컨대, 과학기술의 발전은 우리의 바람대로 유토피아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디스토피아를 펼쳐 보인다는 것이다. 불필요한 '유레카'는 필요없다. 과학적 발견은 오히려 통제되고 제한될 필요가 있다. 인간이 수 천년간 쌓아올린 문명에 파국을 가져올 뿐이기 때문이다. 과연 유토피아는 무엇이며, 유토피아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최선(最善)인가?
이 소설이 처음 출간된 시기가 1932년이고,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것이 1945년의 일이다. 작가의 예리한 통찰력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인간의 지적 호기심은 문명의 발전을 가져오기도 하지만, 눈부신 문명 발전의 이면에는 늘 어두운 그림자가 도사리게 마련이다. 어떤 면에서 문명은 폭력적이다. 문명이 그 내재된 폭력성으로 자멸하지 않기 위해서는, 일정 시점부터는 과학기술이 통제되고 인간의 지적 호기심은 제거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사회 구성원은 현상(現狀)에 만족하고 안주해야만 한다.
미래에 인간에게 유일하게 무제한적으로 허용되는 것이 말초적 쾌락인 것은 바로 그 까닭에서다. 멋진 신세계에서 시민들은 자신들의 말초적 쾌락을 충족시키는 데 일말의 주저함도 도덕적 고민도 없다. 삶과 죽음에 대한 고민, 인간 존재에 대한 고민은 아예 논의되지 않는다. 세뇌된 인간에게 그러한 논의는 삶을 충만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혼란을 가중시킬 뿐이다. 그리고 보다 완벽한 통제를 위하여, 멋진 신세계의 통제관은 마침내 진시황을 자처하기에 이른다. 분서갱유를 저지르는 것이다. 멋진 신세계에서 인간의 지적 상상력을 자극할 만한 문헌이나 과거의 유산을 유통하는 것은 철저하게 금지된다.
종교 역시 마찬가지로 통제 대상이다. '신'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이 낳은 것은 끊임없는 분쟁과 갈등이다. 미래 세계에서 '신'은 '소마'라는 알약—먹고 나면 일정시간 쾌락을 느끼게 된다—으로 대체된다. 미래세계에 감탄사는 'Oh My God!'에서 'Oh My Ford!'—본격적으로 자동차산업을 개척한 그 포드를 말한다. 소설에서는 첨단 과학기술을 대표하는 신적 존재로 표현된다—로 대체된다. 사람은 더 이상 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아니, 여전히 '신'이 있기는 하다. 다만 그 신은 이제부터 '소마'가 되었을 뿐이다.
멋진 신세계를 지탱하는 데 필수적인 또 다른 수단은 '영웅의 부재'이다. 알파, 베타, 감마, 델타로 엄격히 구분된 계급사회에서 사람들은 계급의 높고 낮음에 따른 위화감을 전혀 느낄 수 없도록 주입교육을 받는다. 각 계급 내에서 충성, 복종, 희생, 헌신 따위의 우열관계는 성립하지 않는다. '신'이라는 절대적 존재가 거부당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대중의 추앙을 받는 일인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한 존재는 체제의 현상유지에 해로울 뿐이다. 각 계급의 구성원은 애당초 복제된 대로, 그리고 주입받은 대로, 묵묵히 자신의 계급에 걸맞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존재의 의미를 갖는다.
그 와중에 '이른바 문명'의 테두리 바깥에서 문명의 혜택에 빗겨나 있던 야만인 존은 우연한 기회에 멋진 신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야만인의 관점에서 멋진 신세계는 그야말로 요지경이다. 그러나 멋진 신세계를 설계한 통제관 무스타파 몬드와의 대화에서 드러나듯, 존은 끝까지 구세계 인간 문명에 대한 신뢰에 신에 대한 무한한 믿음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는 멋진 신세계 안에서 말초적 쾌락에 젖어 자기 존재를 망각하는 대신, 구세계(舊世界)를 희구하며 도시로부터 격리된 외딴 등대로 떠난다. 그리고 금욕적이고 자학적인 생활을 한다. 그러나 과연 존의 끝은 어떠하였는가. 그는 그의 바람대로 문명과 신을 발견하였던가? 정말 끝까지 고민하게 만드는 소설이었다.
올더스 헉슬리 본인이 영문학을 전공한 이유도 있겠지만, 소설 속에 셰익스피어의 작품—햄릿, 오셀로, 리어왕, 맥베스 등등—에서 인용한 문구가 참 많이 등장한다. 멋진 신세계를 서술하는 데 구세계의 문학을 빌려온 것이다. 물론 존이 맞이한 결말은 우리가 추구하는 세상이 유토피아냐 디스토피아냐의 문제에 대해 열린 해석을 가능케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소설 속에서 꾸준히 셰익스피어의 대사를 집어넣은 것은 멋진 신세계에 대한 작가의 조소와 도발이 아니었을까.
'일상 > book'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빌러비드(Beloved) (0) 2016.09.27 아랍—오스만 제국에서 아랍 혁명까지 (0) 2016.09.20 신경의학에 관한 두 권의 책 (2) 2016.09.10 파리대왕 (0) 2016.09.09 깊은 강 (0) 2016.0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