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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오스만 제국에서 아랍 혁명까지일상/book 2016. 9. 20. 00:00
<아랍—오스만 제국에서 아랍 혁명까지/유진 로건>
개인적스로 스페인 미술을 좋아한다. 피카소, 달리, 호안 미로, 벨라스케스, 고야까지...예술의 도시라면 파리와 뉴욕일지 몰라도, 작가 개인의 재능을 놓고 볼 때는 스페인 작가들의 개성이 돋보인다고 생각한다. 졸업 후 처음으로 유럽 여행을 갈 때, 유럽 일주 대신 이베리아 반도 일주를 택한 것도 스페인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아랍에 관한 서적을 읽고 나서 뜬금없이 스페인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스페인 여행이 아랍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 계기를 제공해주었기 때문이다.
3주 동안 순례자의 길이 위치한 북부지방을 제외하고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쭉 돌아다닌 결과, 베스트 오브 베스트는 바르셀로나였지만, 그에 못지 않게 아름다웠던 곳이 안달루시아(스페인 남부) 지방이었다. 알함브라 궁전의 모자이크와 메스키타의 오래된 아치는, 중세에 수백 년 동안 이베리아 반도를 다스렸던 그라나다 왕국의 찬란한 유산이었고, 유럽의 흔적이라고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건축물들이었다. 라틴적 배경에 '아랍'이라는 이질적 요소가 침투하면서 이베리아 반도는 격렬한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기도 했지만, 그에 대한 반대급부랄까.. 대신 예술적인 다채로움을 얻었다. 스페인이 지니는 문화적 저력과 매력은 아마도 이러한 문화적 다양성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추측하는 동안, 아랍세계에 대한 막연한 관심이 싹텄던 것 같다.
오늘날의 중동이 전세계의 화약고라는 사실은 굳이 상기시키지 않아도, 너무나 당연시되는 사실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보도되는 중동지역의 테러와 그에 따른 인명피해 소식은 마치 숫자세기 놀음을 하는 것처럼 느껴질 만큼, 인간의 악행에 무뎌지게 만들었다. 일찍이 문명이 태동하고, 인류 역사에 눈에 띄는 족적을 남긴 중동 일대가 지금은 왜 이렇게 경악을 금치 못할 공포의 소굴로 전락하고 만 것일까? 몇 백 년이 흘러 세계사가 새로 쓰인다면, 인류사의 가장 큰 오점으로 기록될지도 모르는 오늘날을 살아가는 중동 사람들은 자신들의 비참한 삶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앞으로 어떤 비전을 갖고 있을까?
......아랍의 근현대사를 읽는 게 흥미로운 이유는, 당시의 복잡한 유럽정치를 동시에 들여다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식민지, 때로는 위임통치의 형태로 자신들의 입맛에 따라 중동국가들의 대리인을 자처하고, 종파간 분열을 이용했던 유럽 각국(특히 영국과 프랑스)의 교묘한 책략들을 들여다보면, 그들이 추진했던 제국주의의 부끄러운 민낯을 발견할 수 있다. 유럽에서 발전한 계몽주의와 입헌주의라는 아름다운 제도와 사상들은, 중동의 후끈하고 건조한 모래바람을 견디지 못한 것일까, 자꾸만 자꾸만 어긋나다 못해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기만 했다.
또 한 가지, 이들의 근현대사가 우리의 근현대사와 닮아 있다는 것이다. 외세를 이용해서 독립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는 순진한 생각에 희망을 건 엘리트들과, 그렇다고 독립을 위한 자구책을 마련하기에는 여실히 부족했던 군사적 역량과 기술 수준까지...국제무대는 힘의 논리에 지배되는 공간이다. 힘이 센 나라에게 자선을 구하는 것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위기에 봉착한 중동에서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민족주의가 뿌리내리면서 민중을 기반으로 독립운동이 촉발됐다. 그러나 냉전이라는 또 다른 국면 속에서, 대내적으로 범아랍 민족주의를 실현하는 방식에 대해 이견을 좁히지 못했고, 위기가 봉합되기는커녕 오늘날 분열과 갈등의 씨앗이 되고 만다. 특히 중동의 한복판에 이스라엘이라는 유대국가가 건국되는 과정을 읽어내려 가다보면, 인간의 잔인함에 착잡한 기분마저 들었다.
아랍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워낙 강하다보니, 중동에서 벌어지는 사건사고에 대한 뉴스는 많이 접해도, 정확히 문제의 근원이 무엇인지 아랍 세계 전반에 대해 알아보려는 시도는 많지 않은 것 같다. 문제의 출발점을 추적해봐야겠다는 판단이 들기 이전에, 당장 저들이 벌이고 있는 끔찍한 일들에 대한 혐오감정에 압도당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아랍 세계에 대한 그릇된 스테레오타입이 생기고 몰이해가 심해지고 있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그 중에 하나가 용어에 대한 부분으로, 우리는 흔히 '아랍'과 '중동', '이슬람'을 혼용하는데, 엄연히 구분되는 개념들이다.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중동(지리적 개념)
: 유럽의 관점에서 '근동(近東)'이라고도 불리는 이 지역은 오늘날 이라크와 시리아 등이 위치한 비옥한 초승달 지대와 아라비아 반도, 터키, 더 넓게는 이란을 포함한다.
아랍(민족적 개념)
: 아랍인으로서 아랍어를 쓰는 지역들을 의미한다. 터키는 투르크인이 터키어를 쓰는 나라이고, 이란은 페르시아인이 페르시아어를 쓰는 나라이기 때문에 아랍권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그 밖에 IS 소탕 작전에서 큰 활약을 보였던 쿠르드족도 아랍인으로 분류되지 않으며, 자신들만의 독립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슬람(종교적 개념)
: 이슬람 지역을 세계지도에 색칠한다면 위의 두 개념에 비해 가장 큰 영역을 그릴 수 있을 것이다. 중동지역과 북아프리카는 물론이고, 아시아의 방글라데시와 인도네시아가 대표적으로 이슬람권에 포함된다. 그밖에 보코하람으로 악명을 떨쳤던 나이지리아를 비롯한 사하라 이남의 일부 아프리카 국가와 중앙아시아에서도 이슬람이 종교로써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정리하고 나니 이미 많이 알려진 사실을 굳이 다시 한 번 옮긴 건 아닌지 모르겠다. 여튼 이 책을 읽기 이전에 아랍과 관련된 두 책을 읽은 적이 있었는데, 이 책은 제목이 <아랍>인 만큼 정말 제목에 충실하게도 쿨하게 이란(페르시아권역)에 대한 부분은 현대사를 제외하면 사실상 다루지 않고 있다;; 느낀 점을 개략적으로 적어서 이 정도지만, 책을 읽다보면 정말 머릿속이 뒤죽박죽될 만큼 근대 아랍 세계에서 전개된 수많은 사건이 담겨 있고, 무엇보다 이름이 참 기억하기 어려웠다...우리나라 근현대사 교과서를 봐도 몇 달 사이로 다른 사건이 발생하는데, 아랍세계에 있는 모든 국가의 사건을 다 다루다 보니 이야기 전개가 더욱 복잡하게 얽히고 얽혀 있다. 그래도 이야기 형식으로 주욱 풀어놓고, 영국의 중동정책/프랑스의 중동정책 등 깔끔하게 분류를 해놓아서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었다.
<미국사> 이후로 참 오랜만에 읽는 역사서였다. 만약 아랍, 중동, 이슬람에 대한 개론서를 읽고 싶다면 다음 책들을 추천한다. (소개하는 책들이 내가 읽은 책의 거의 전부다;;)
버나드 루이스의 <이슬람 1400년>은 이슬람교 아래 꽃피운 미술, 음악, 문학, 건축, 과학 전반에 대해 소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스페인, 이란, 오스만제국, 인도 등 이슬람의 본거지로부터 좀 떨어진 지역에서는 이슬람이라는 종교가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해 소개한다. 한편 데이비드 프롬킨의 <현대 중동의 탄생>은 외교사에 초점을 맞추어 서술된 책으로, 중동외교에서 주역을 맡았던 영국과 프랑스 관료 개인의 관점에서 근대 중동에서 전개된 복잡한 정치적 역학관계에 대해 설명해준다. 여기에는 냉전시기 중동에 영향력을 행사한 소련의 중동개입에 대한 부분까지도 자세히 다뤄지고 있다.
두 책 모두 참 내용도 알차고 친절한데, 다만 두께와 무게는 결코 친절하지 않다ㅠ 가방에서 이 책만 빼도 홀가분함..;; 그러고 보니 세 권 중 두 권은 <까치>에서 나온 책이다. 여튼 한번쯤 도전해기를 바라며.....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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