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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일상/film 2020. 4. 27. 23:37
Toutes portes ouvertes 모든 문은 열린 채
En plein courant d'air 가득 흐르는 바람 사이로
Je suis une maison vide 나는 빈 집에 홀로 있네
Sans toi, sans toi 그대 없이, 그대 없이
Comme une île déserte 마치 황량한 섬처럼
Que recouvre la mer 어찌 바다는 뒤덮는가
Mes plages se devident 나의 해안은 휘감긴다
Sans toi, sans toi 그대 없이, 그대 없이
Belle, en pure perte 상실 안에서 아름다운
Nue au coeur de l'hiver 한겨울의 구름
Je suis un corps avide 나는 텅빈 몸통이네
Sans toi, sans toi 그대 없이, 그대 없이
Rongée par le cafard 울적함에 잠식되어
Morte, au cercueil de verre 초록색 관(棺) 안의 죽음
Je me couvre de rides 나는 장막을 치네
Sans toi, sans toi 그대 없이, 그대 없이
Et si tu viens trop tard 그대 뒤늦게 내게 온다면
On m' aura mise en terre 사람들은 나를 땅에 묻으리
Seule, laide et livide 홀로, 보잘 것 없이, 창백하게
Sans toi, sans toi 그대 없이, 그대 없이
Sans toi 그대 없이
아주 오랜만에 영화관을 찾았다. 마지막으로 영화관을 갔던 게 <1917> 때였으니까 그리 오래 전 일도 아닌데, 엄청 오랜만에 영화관에 온 느낌이다. 집에 아담한 스크린까지 마련해 놓았으니 집에서 볼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영화관에서 볼 때의 또 다른 느낌이 있다. 혼자 힘으로는 알기 어려운 영화의 목록을 훑은 뒤 알맞은 시간대의 영화를 고른다. 표를 끊은 뒤 쿠션이 있는 의자에 몸을 파묻고 어둠 한가운데 둥둥 떠 있는 영상을 응시하는 묘미.
아녜스 바르다의 작품 몇 편이 재개봉되었다. 근래에 아녜스 바르다의 개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가 있었는데, 아녜스 바르다라는 인물을 잘 모르던 나는 당시에 굳이 영화를 볼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다 모처럼 영화관의 상영시간표를 들여다보다가 아주 생소한 제목을 발견했다.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 1962년 영화다. 음, 그럼 얼마전에 읽은 <사물들>의 작가 조르주 페렉이 20대를 보냈던 시절이겠네!!, 하는 생각이 스쳐 곧바로 예매를 했다. 도착한 영화관에서는 아무래도 시기가 시기인지라 상영관의 좌석을 체스판처럼 상하좌우로 간격을 두고 있었다.
타로점을 치는 도입부의 천연색 화면을 제외하면, 영화 전체가 흑백으로 제작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에 담긴 파리의 풍경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몽마르트 언덕이나 에펠 탑처럼 파리의 명소가 나오는 것도 아닌데, 60년대 파리의 활기가 풍성하게 담겨 있다. 때로는 우아하게, 때로는 꾸밈없이, 때로는 촌스럽게. 화면의 전면에 등장하는 것은 아리따운 여배우 클레오. 그녀는 어떠한 ‘의미들’로 인해 괴로워한다. 그것은 바로 ‘죽음’에 대한 이미지들이다.
불길한 미래를 예언하는 타로점, 여름에 걸맞지 않은 검정 털모자, 화요일에는 새로 산 옷을 입어선 안 된다는 오래된 미신, 번호판의 숫자가 근사한 시트로엥 택시, 거리의 쇼윈도에 진열된 도깨비탈들. 그녀는 이런 이미지들과 사건들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거나 또는 예민한 감각을 발휘해 가며 자신의 불운을 비관한다. 어쩌다 찾아올 뿐인 남자친구는 늘 일에 빠져 살고, 모처럼 찾아온 작곡가, 작사가 친구들은 ‘절망’을 주제로 한 곡을 선보인다. 주위 사람들은 그녀가 변덕스럽다(caprice)고 말한다. 하지만 그녀는 실로 어떤 고뇌에 사로잡혀 있는 듯하다.
여배우로서의 굴레를 상징하는 가발을 벗어던진 클레오는 6시 즈음에 접어들면서 무턱대로 시내의 거리로 향한다. 거리의 곡예사는 연달아 개구리를 집어삼키는가 하면, 또 다른 차력사는 쇠꼬챙이로 팔근육을 뚫어 보인다. 아름다움(美)의 소멸이 곧 죽음이라 여기는 클레오로서는 이처럼 추(醜)하고 흉한 광경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것이다. 늘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비단결의 침대와 백색의 침실을 떠나 거리의 카페를 전전하던 그녀는, 누드화 모델로 일하는 옛 친구의 아뜰리에로 찾아간다. 때로는 천하게 여겨지기도 하지만 육체의 아름다움을 묘사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이 직업에 종사하는 친구에게서 클레오는 소박한 행복의 실마리를 발견한다.
아직도 그녀는 변덕(caprice)의 언저리에 있는 듯하다. 그러나 앙투안이라는 한 복귀군인과 조우하면서 이야기는 다른 국면을 맞이한다. 사랑스러운 개구쟁이처럼 천진난만한 표정을 한 그는 그녀에게 쉼 없이 말을 건네기도 하고, 자신의 잡다한 상식을 뽐내기도 한다. 둘은 약속을 한다, 그는 그녀가 병원까지 가는 길을 바래다 주고, 그녀는 그가 병영으로 복귀하는 길에 역까지 바래다 줄 것. 그리하여 고색창연한 병원 앞에 이르렀지만, 그녀는 끝내 의사로부터 그녀의 질병에 대한 구체적인 답변을 얻지 못한다. 자동차를 타고 병원을 떠나며 무심하게 완쾌될 거라 말하는 의사의 무책임하기까지 한 모습은 그녀를 다시금 혼란에 빠뜨린다.
어느 순간 클레오와 앙투완은 그들의 약속을 망각한다. 약속한 오후 7시에 이르렀지만, 그들의 정신(l’esprit)는 완전히 딴 데 가 있다. 그들은 7시 병원 도착이든 8시 역 도착이든 개의치 않기로 한다. 그리고 또 다른 미래를 떠올린다. 클레오는 과도하게 추함과 죽음의 이미지에 얽매여 있었다. 하지만 그녀 자신을 비출 수 있는 또 다른 이미지는 여전히 많이 남아 있다. 그녀는 아직 아름답고 젊고, 파리의 시내는 활기가 넘친다. 그리고 그녀의 옆에는 그녀만을 바라보는 앙투완이라는 유쾌한 청년이 있다. 삶은 곧 새로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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