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편의 북유럽 영화일상/film 2020. 4. 17. 21:49
"What if you go there and discover there is no God?"
북유럽 영화로 묶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지만, 설국을 배경으로 한다는 점에서 북유럽 영화로 묶어보았다. 실제로 중부 유럽이라는 것 자체가 지리적으로 경계가 모호하기도 하고 말이다. 폴란드 영화감독 파벨 파블리코프스키의 작품은 <콜드 워>로 처음 접했는데, 흑백으로 촬영된 점과 가로:세로=1.2:1 비율로 된 화면을 쓴다는 것이 서로 공통적이다. 뿐만 아니라 소재도 비슷하고 '선율'이 가득한 화면도 닮았다. <콜드 워>가 냉전 속에서 세파에 휩쓸려 난파당하는 한 연인의 사랑을 다룬다면, <이다>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부모님의 족적을 따라가는 한 수녀의 이야기를 다룬다.
<콜드 워>에서는 두 연인의 사랑을 통해 유럽대륙에 거칠게 드리워진 육중한 철의 장막을 그려낸다면, <이다>는 조금 더 2차 세계대전 직후 상황과 맞물려 있다. 특히 여기에 폴란드라는 무대가 덧붙여지면서 독특한 색채가 가미된다. 프로이센 영토 안에 혐오시설을 두려 하지 않은 나치 독일은 그 주변부, 특히 폴란드에 유대인 수용소를 세우고 홀로코스트를 수행한다. 당시 독일 지역도 다를 건 없었지만, 식민지배하의 폴란드는 유대인을 밀고하고 처형까지 집행하는 주무대였다. 주인공 안나는 유대인이라는 까닭으로 이 세상에서 삶의 의미마저 부정당했던 부모님의 흔적을 따라 나선다.
영화의 시작과 끝에 등장하는 목조(木造) 그리스도상은 그런 의미에서 무용하다. 인간의 야만성과 광기 아래 무용하다. 갑옷처럼 수녀복을 입은 안나는 전쟁 뒤 일상세계로 되돌아오는 듯 하지만, 결국은 다시 수녀원으로 되돌아간다. 애초에 수녀원은 부모님을 대신해 그녀의 친척인 완다에게 되돌려보내려 하지만, 일이 그리 순탄하게 진행되지 않는다. 안나에게 유대인의 피가 섞여 있다는 정보는 어디까지는 완다의 추측일 뿐이다. 순전히 안나의 부모가 유대인이었다는 완다의 말만이 안나가 유대인의 피가 섞였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만큼 누가 유대인이냐를 따지는 문제는 가장 쓸모없고 소모적인 논쟁이다. 하지만 인간은 이토록 모호한 개념에 프레임을 씌우고 가끔씩 성대하게 마녀사냥을 즐기는 존재인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 영화였다.
이전에 영화관에 상영할 때부터 줄곧 보고 싶었던 영화다. 아무래도 자주 볼 수 없는 북유럽 영화라서 그랬던 것 같은데, 뱀파이어 영화인 줄은 몰랐다. 더불어 소년 소녀의 순수한 우정을 그리는 영화인데, 이 모든 내용은 북유럽의 음울한 배경 속에서 차분하게 그려진다.
사실 이 영화는 <렛 미 인>이라는 영화제목을 염두에 두면서, 영화의 스토리와는 어떻게 맥락이 닿아 있는 것일까 생각을 하며 보았다. 영화에는 상대를 받아들일 수 있는 한도, 경계선에 대한 언급이 자주 등장한다. 역설적인 건 엘리(Eli)는 뱀파이어이기 때문에 주위 사람들에게 위험한 존재라는 것이다. 그녀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주위에 쉽게 어울릴 수도 받아들여질 수도 없다. 그녀 자신도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가하고 있다는 걸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옆집에 사는 오스카(Oskar)라는 소년만이 진정 어린 마음으로 그녀에게 다가갈 뿐이다.
렛 미 인(원제: Let the right one in). 나를 타인에게 투사시키는 것, 관계하는 것, 호감을 사는 것. 뱀파이어 소녀 엘리는 애당초 자신의 그러한 감정을 허락하지도 않고, 타인에게 그러한 기대를 바라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엘리가 오스카로부터 거부 당했을 때, 그녀의 몸 전체가 점점 붉은 피로 물들어 가는 장면이다. 그녀가 지금까지 실컷 들이마셨던 피를 온몸으로 토하는 듯한 장면이다. 누군가에게 받아들여져 본 경험이 없는 엘리에게는 타인으로부터 거부를 당하는 경험 자체도 상당히 괴롭다. 그만큼 타인에게 받아들여진다는 일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을 수 있다. 아이들의 순수한 시선을 거쳐, 그리고 북유럽이라고 하는 투명한 바탕 위에, 이러한 감정의 선율을 여과 없이 그려낸 영화였다.
“Real love is to offer your life at the feet of another.”
“Keep your relationships brief.
Don’t let them in.
Once they’re inside they have more potential to hurt you.
Comfort yourself.
You can live with the anguish as long as it only involves yourself.
As long as there is no hope.”
'일상 > film' 카테고리의 다른 글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 (0) 2020.04.27 두 편의 요르고스 란티모스 (0) 2020.04.26 두 편의 게리 올드만 (0) 2020.04.11 두 편의 프랑수아 오종 (0) 2020.04.02 아메리칸 뷰티 또는 사이코 (0) 2020.0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