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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 볼 일 없는 사진들이지만 따로 시간을 내어 사진을 담았다보니 어쨌든 포스팅으로 묶어본다. 하루에 다 찍은 사진은 아니고 이틀에 걸쳐 쏘다니며 찍은 사진들이다. 그중 하루는 ‘제비다방’에 갔다. 아마 이 카페를 눈여겨 봐둔지는 몇 년이 된 것 같다. 밤이 되면 라이브 공연이 이루어지는 카페인데, 그런 카페의 특성상 낮에는 사람이 많지 않고 오는 사람들도 대체로 테이크아웃을 하는 단골인 것 같다. 카페 안의 스케줄을 보면 대체로 밴드 음악인데 꽤 스케줄이 가득하다. 내가 간 시간은 낮 시간대. 손님은 나말곤 아무도 없었다.
따듯한 카페라떼를 주문한 뒤 들고 온 책 『창백한 불꽃』을 읽었다. 뭐 이런 책이 다 있나 생각하다가 점점 재미있게 읽었다. 본문에다 각주까지 페이지를 뒤적이면서 봐야 하는데, 조금이라도 놓친 내용이 있으면 미주까지 번갈아 봐야 하기 때문에 좀 정신이 없기는 하다. 지하에 공연할 수 있는 아주 작은 무대가 있고, 지상층을 통해 지하공간을 내려다 볼 수 있는 독특한 구조다. 늦은 밤 어울릴 만한 사람이랑 와도 좋을 것 같은데, 요즘 같은 때는 그런 붐비는 곳에 발걸음을 안 하게 된다.
# 정말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올해 코로나로 중국의 제조공장들이 문을 닫은 덕분인지 미세먼지 때문에 고역을 치를 일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올해는 유달리 여름하늘이 아름다웠기 때문에 하늘을 담아보고 싶었다. 피로 흠뻑 젖은 것처럼 붉은 달이 지평선 위에 떠 있거나, 머나먼 남국에 와 있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오로라빛 석양. 지겨운 콘크리트 건물들 사이로 그런 빛깔들을 보고 있다보면 꼭 사진에 담아야겠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는다. 그저 망막에 새기고 싶을 뿐.
가을에 접어들면서 하늘이 더욱 청명해졌는데, 사실 너무 맑은 날씨에는 빛이 잘 산란되지 않아서 석양이 그만큼 아름답지 않다. 적당히 뭉게구름이 올라오던 한낮 카메라를 들고 나왔는데, 웬걸 일을 보고 해질녁이 되어 가니 구름 한 점 없이 하늘이 깨끗했다. 어쩐지 좋은 사진을 담기는 어렵겠다 하는 생각을 하면서 양화대교로 향했다. 김포 방면으로 몇 방 찍고, 여의도 방면으로 몇 방 찍고. 당산철교를 가로지르는 2호선 열차의 금속성 표면에 저녁놀이 날카롭게 반사된다. 당산철교에 의해 중절모의 절반이 가려진 국회의사당의 연청색 반구(半球)가 청아하다. 그 아래에서는 눈에 보이기도 하고 보이지 않기도 하는 난투가 벌어질 테고.
다리 위에서 오랜 시간을 머무르지는 않았다. 운이 좋은 날 한 번 더 하늘을 담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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