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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무대(無無壹)에서 북안산과 청와대를 바라보며 남산을 오른편에 두고 왼편으로는 경복궁과 동대문 일대, 잠실까지도 보인다 지난 번 종묘 출사에 이어 이번에는 인왕산 출사다. 출사라는 말을 붙이기도 좀 그런 게, 꼭 장비를 여러 가지 갖추지 않더라도 적어도 부지런은 떨었어야 했는데 오후 느즈막이 되어서야 인왕산 자락길에 올랐다. 지난 여름 카메라를 사두고 무료수리 보증기간이 끝나기 전에 카메라에 이상은 없는지 한 번 확인해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중고로 카메라를 구입했던 가게에 잠시 들르는 겸사 가볍게 출사에 나선 것도 있고..
올해 가을에 꼭 단풍을 보겠다고 지역별 명산의 단풍 예보도 샅샅이 살폈었는데, 결국 개인적인 사유로 인해 단풍이 무르익은 시기에 구경을 나설 수가 없었다. (+코로나로 인해 야외활동에 신경이 쓰이는 것은 두 말할 것도 없다) 여하간 그러디보니 짬을 내어 지난번 종묘에 갔을 때에는 아무래도 단풍이 덜 든 느낌이 있었다. 또 지금은 이미 11월 중순으로 넘어가고 있기 때문에 서울에서 단풍을 보기에는 때늦은 감이 있지만, 영 아쉬운 마음이 들어 인왕산 자락길에 가보기로 했다. 인왕산 자락길을 마지막으로 간 것도 3년이 훨씬 더 된 것 같다.
인왕산 자락길을 오르다 웬 상호명이 없는 시설 발견 서점 겸 카페 책도 제법 많이 구비되어 있다 오픈 기념으로 시루떡을 함께 주셨다 시작은 사직단(社稷壇). 마지막으로 인왕산 자락길을 왔을 때에는 청운동에서 사직동 방면으로 내려왔었는데 이번에는 반대로 거슬러 올라가 보기로 했다. 인왕산 정상이 아니라 인왕산 자락길이기 때문에 완만한 길이기는 하지만, 경사를 따라 오르는 코스이기 때문에 약간의 체력손실이 있다. 누하동으로 접어드니 지난번 왔을 때 바깥에서 한참 지켜봤던 도예 공방이 아직도 그대로 있다. 그런가 하면 당시에 들렀던 근처 카페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다시 카페가 들어서기는 했는데 이전의 같은 카페가 아니다. 통인시장이 나타나자 고민 없이 왼편으로 틀어 옥인시범아파트가 나올 때까지 쭉 걸었다. 이후 수성동 계곡을 가로지르면 인왕산 자락길에 들어선다.
끝물인 듯한 단풍 빛깔 인도가 꼭 산행로 같다 많이 달라졌다고 느낀 것이 인왕산 자락길을 따라 전망대나 편의시설이 조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가장 마지막으로 왔던 3~4년 전까지만 해도 초소들이 버젓이 있던 곳들이다. 인왕산 자락길은 서울 도심을 내려다보기에 참 좋은데, 좋은 전망이 내려다 보이는 곳마다 초소가 있어서 경치를 구경하는 것도 어쩐지 눈치가 보였었다. 아직까지는 경비가 삼엄할 수밖에 없는 지역이었다. 그러던 게 이번에 와보니 무무대(無無壹)라는 아주 괜찮은 전망대가 생겼는데, 이름도 참 특이하다. 처음에는 글자를 잘못 본 줄 알았고, 그 다음에는 ‘무(武)’라는 글씨가 하나쯤 들어가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없을 무’만 두 개다. 이곳에서는 남산이 정면으로 보이고, 바라다 보이는 남산을 기준으로 왼편으로는 동대문과 혜화동 일대, 오른편으로는 관악산까지도 눈에 들어온다. 또 자세히 보면 전면의 어두운 공백처럼 보이는 공간에 경복궁이 자리하고 있고, 왼쪽 멀리로는 한강 너머의 잠실 일대까지도 눈에 들어온다. 오른편으로는 여의도가 보여야 할 자리에 인왕산 자락이 시야를 막고 있는데, 63빌딩의 정수리만이 간신히 능선 너머로 고개를 내밀고 있다.
청운 공원 도착! 시인의 언덕을 지키는 소나무 오랜만에 보는 산수유 열매다 좀더 오르다보니 자락길 한가운데 생뚱맞게도 전혀 못 보던 건물이 있었다. 밖에서 봤을 때 공공쉼터가 참 쾌적하다고 생각하면서 구경을 목적으로 들어갔는데 카페 겸 책방이다. 원래 초소가 있던 자리를 지금의 카페 공간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마침 가방도 무겁게 느껴지던 차여서 카페에서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공교롭게도 오픈 첫날이라서 시루떡을 같이 내어주셨다. 산중턱에 있어서인지 가격이 꽤 있어서 먹을 것은 주문을 안 했는데, 다행히도 요기가 됐다. 그런데 가게에 관해서 직원과 이야기하다보니, 내가 종종 찾는 서점에서 최근 컨셉을 조금 바꿔서 이곳에 입점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뜻밖의 반가움과 함께 같은 기업체에서 운영된다는 것을 알고 직원의 안내에 따라 뜬금없이(?) 좀전의 음료에 대한 마일리지를 적립했다. 이런 우연의 일치가 있을 수가 하면서, 일몰시각을 놓치지 않기 위해 카페를 늦지 않게 나섰다.
언덕을 내려와서 부암동 방면으로 걷다가 잠시 청운 공원에서 서성이며.. 청운공원까지 가는 길은 그리 멀지 않았다. 오늘 미세먼지가 없고 쾌청한 날씨일 거라는 예보 그대로, 하늘도 참 맑았다. 역설적이게도 뭔가 뿌옇거나 이글이글 타오를 듯한 노을은 기대하기 어렵겠다 싶은 하늘이다. 앞에 언급했던 것처럼 서쪽으로는 인왕산이 병풍처럼 에워싸고 있기 때문에 사실 일몰이 보이지는 않는 위치이기는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운공원에서 북한산 방면을 바라보게 되면 북쪽을 향하게 되는데, 서쪽의 석양을 받아 뉘엿뉘엿 힘을 잃어가는 북쪽 하늘을 바라보는 정취가 있다. 시간이 늦으면 하늘의 가장 높은 곳에서부터 별들이 하나둘 내려앉기 시작한다.
좀 더 땅거미가 내릴 때까지 북한산을 정면에 두고 성벽에 기대어 있으면 또 다른 경치가 튀어나왔겠지만, 오늘 구경은 이쯤에서 마무리하기로 했다. 다시 시내로 나오기 위해서는 경복궁역까지 버스로 이동했고, 지하철 승강장에서는 계절을 알 수 없는 사람들의 무표정이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하지만 좀전까지만 해도 오랜만에 찾았던 자하문 일대는 예전 기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고, 가을빛을 보고 싶다는 작은 바람은 이쯤이면 성취된 것이 아닌가 싶다. [終]
다시 한번 북한산 자락을 사진에 담으며 이날의 출사 마무리!! '주제 없는 글 > 印'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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