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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일기—성수동 야경주제 없는 글/印 2021. 1. 5. 00:05
어릴 적 그림일기를 쓰던 생각을 떠올리면서 “사진 일기”라는 포맷을 떠올랐다. 사진은 벌써 햇수로는 작년이 되어버린 며칠 전에 찍은 것이다. 원래는 일몰 전에 미리 가 있다가 사진을 찍으려고 생각을 했는데, 낮에 이런저런 행정처리가 생각보다 너무 길어지는 바람에 해가 진 뒤에야 사진 찍으려고 마음먹은 장소에 도착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석양이 남아 있는 틈을 타서 조금 급한 마음으로 사진을 찍었는데, 나중에 집에 와서 사진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니 잠실 방면으로 찍었던 사진의 노이즈가 너무 심했다. 셔터스피드라도 좀 더 열어놔여 했던 건데... 잠실 방면으로 보이는 한강과 마천루 조합도 볼 만했는데 아쉽지만 건질 수 있는 사진이 단 하나도 없다...=_=
# 질투(enviada)
“<더욱 큰 문제는 이 독이 종종 우리와 가장 가깝고 따라서 우리가 신뢰하는 친구들의 가슴 속에서 생긴다는 것이다. 그것은 공표된 우리의 적들보다 더욱 위험하다.>”(「사랑에 빠지기」(하비에르 마리아스) 中)
“시기심은 질투심과 유사하다. 둘 다 가치 있는 어떤 것의 소유나 향유와 관련해 경쟁자에 대한 적대감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질투심은 자신에게 위협이 된다고 보이는 경쟁자에게 초점을 맞춘다. ......시기심은 좋은 것의 부재에 초점을 맞추며, 좋은 것을 소유나 사람들에 대한 적대감은 간접적이다.”(「정치적 감정」(마사 누스바움) 中)
기형도 시인은 <질투는 나의 힘>이라는 시를 썼는데, 시를 읽어보면 알지만 글쓴이는 질투 때문에 깨나 힘겨웠던 것 같다. 적당한 질투는 삶에 활력이 되지만 지나친 질투는 관계를 망친다. 최근 읽었던 「사랑에 빠지기」라는 책에서는 ‘질투’라는 인간적인 감정이 하나의 큰 축을 이룬다. 소설에서 미망인이 된 ‘루이사’라는 인물이 한 스페인어 사전을 펼쳐보이면서 ‘질투’의 정의를 읊는데, 이런 사전이 있나 싶을 정도로 문학적이다. (+한국어도 이런 사전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그래서 불현듯 이전에 마사 누스바움이 깔끔하게 분류했던 동정심과 시기심, 질투심의 사회학적 정의가 떠올라서 덩달아 그녀의 책을 다시 펼쳐들 수밖에 없었다.
‘질투’의 가장 어려운 점은 때때로 누가 내게 질투심을 품고 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내 질투심 역시 깨닫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또한, 다른 많은 감정들과 달리 시간이 흐르면 사그라들기보다 점점 더 몸집을 불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피곤한 감정이지만 멈추지도 못한다. 게다가 질투심은 몇몇 사건에서 촉발되기보다 오래된 관계에서 눈치채지 못할 만큼 서서히 자리를 잡는다. 이 때문에 질투의 시그널이 종종 수면 위로 올라오더라도 애써 외면하다가, 질투의 실체를 확실히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늦어버린 경우가 많다. 그리고 끝까지 청산되지 않는 관계로 남는다. 슬픔이나 기쁨과 달리 질투라는 것은 좀처럼 인정하기 쉽지 않은 감정이기 때문이다. 특히 질투심을 품는 대상이나 상대방이 밀접하고 관계를 쌓은 지 오래될 수록 질투를 드러내기가 어렵다. 그래서 뒤늦게 질투심을 인정하거나 발견하게 되면, 사실 질투심 그 자체에 대해서는 놀라울 게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관계를 되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당혹스러워하게 되는 것이다.
# 아비투스(Habitus)
“처음에는 내가 습관을 만들지만, 나중에는 습관이 나를 만든다.”(6호선 기관사 아저씨 안내방송 中)
6호선은 내가 단연 가장 많이 이용하는 노선인데, 요새 저녁 시간이 되면 어떤 기관사 아저씨가 잠언 같은 것들을 읊어주신다. 오늘은 그런 안내방송을 두 번째로 들은 날이다. 보통 출퇴근 시간에 이런 방송을 해주시는 모양이다. 분명 이전 안내가 더 좋았었는데 내용이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다. 어쨌든 새해 다짐을 꾸준히 지키라고 흔한 잔소리를 듣는 기분이 순간적으로 조금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맨날 반복적인 기계음만 나오는 지하철에서, 갑자기 라디오 방송 같은 육성 섞인 멘트가 나오면 어쩐지 주의가 산만해진다는 것만으로도 갑자기 흥미가 쏠리는 것 역시 사실이다. 요즘 일상이 건조하다 못해 버짐이 필 것 같았는데, 이런 의미심장한 커뮤니케이션에 공들인 기관사의 마음을 생각하며 약간 마음이 흐뭇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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