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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석동의 재개발 소식이 들려왔다. 부동산 시장의 여러 지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신기록을 갈아치우고 있고, 그에 발맞춰 정부의 부동산 정책도 숨가쁘게 쏟아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인간에게 정주(定住)의 역사가 시작된지도 수만 수천 년에 이르는데, 정주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당장 잠잘 곳이 없는 게 아닌데도 어딜가나 부동산은 핫이슈다. ‘강남불패’라는 말이 적나라하게 암시하듯 부동산은 승자와 패자가 갈리는 문제다. 이제 ‘집’은 편히 쉴 수 있는 ‘곳’이 아니라, 승부를 가려야 하는 ‘것’이 되었다.
흑석동은 교통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다. 대학 시절 두어 번 흑석동에 사진을 찍기 위해 발걸음을 옮긴 적이 있다. 그러고선 마지막으로 흑석동을 찾았던 게 언제였는지도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무튼 9호선이 막 개통해서 흑석역이 들어설 즈음에 흑석동을 찾았던 것이 거의 마지막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러니 아주 오랜만에 흑석동으로 나서면서 예전에 갔던 길을 잘 찾을 수 있을지 살짝 걱정이 됐다. 올림픽대로 방면에서 흑석동으로 진입하는 초입은 주택가가 많아서 길이 복잡한데, 이번에 재개발 계획이 발표된 바로 그곳이다. 나는 한강쪽에서 흑석동으로 들어오는 대신, 그 반대편, 그러니까 상도터널이 위치한 상도동에서부터 대학을 가로질러 흑석동으로 들어갔다.
대학 캠퍼스를 쭉 가로지른 뒤 길거리로 나왔는데 아니나 다를까 길을 까먹었다. 언덕을 한참 올라야 하고 비스듬히 난 약간 큰 골목을 따라가야 하는데, 그 골목이 보이지 않아서 휴대폰으로 지도를 보면서도 잠시 헤매야 했다. 일단 둔덕을 올라야 한강이 한눈에 바라다보이므로, 기억을 더듬으면서 경사면을 올랐다. 어렴풋이 기억에 남아 있는 듯한 건물들도 보이는데, 뒤이어 알게 되었지만 예전에 골목이 있던 자리에 신식 아파트 단지와 고급 빌라가 들어서 있었다. 그러니 길을 찾지 못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길이 사라졌던 것이다.
그러자 초조해졌던 것이 ‘할머니집’이 사라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원래 한강변에 면한 흑석동은 야트막한 산이 있고 이 일대는 주택이 오밀조밀하게 덮고 있었다. 한강 전망이 가장 잘 보이는 지점에도 역시 가옥들이 빼곡했는데, 그 중 어느 할머니집 앞에 전망대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공용 테라스 같은 것이 있었다. 황갈색 널판으로 된 테라스이고, 테라스는 ‘할머니집’의 마당과 경계조차 불분명했는데, 사진을 담으러 가면 꼭 한 명 정도는 사진을 찍으러 온 사람이 더 있었다. 주민들에게 민폐가 될까봐 주변을 왕래하는 주민들을 신경쓰면서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그 할머니집은 어떻게 됐을까, 사라졌다면 비좁게나마 전망을 볼 수 있던 그 공간도 없어졌을까.
좀전의 신식 아파트와 빌라 단지가 상당히 넓은 토지 위에 들어섰고 외부와 경계를 이루는 테두리에는 아주 정갈하게 펜스를 둘러놓았기 때문에, 같은 공간도 더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펜스 안으로는 번듯한 건물이 있지만, 펜스 바깥에는 곧장 무질서한 가옥들이 얼기설기 제멋대로 띠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 테두리의 한쪽 모퉁이에 이제는 골목이 사라져서 옆쪽 벽면을 그대로 노출한 할머니집이 보였던 것 같은데, 너무나도 달라진 풍경이었으니 그저 반신반의할 뿐이다. 이제서야 새로이 아파트와 빌라가 들어서면서 원래 이곳에 살던 사람들은 어떻게 됐을까, 생각이 들었다. 왠지 허름한 슬레이트 지붕을 이고 살아가던 사람들이 빈틈없이 설계된 아파트나 고급 빌라에 사는 모습이 잘 그려지지 않는다. 그래서 과거의 ‘기억’이 배배 꼬여버린 기분이다.
이 일대에 새로 들어선 것이 하나 더 있는데, 바로 근린공원이다. 이곳도 분명 주택가였던 곳인데 꽤 넓은 대지에 공원을 조성하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조성이 끝난 건지 공사가 중단된 건지 구분이 잘 되지 않았다.) 공원 한가운데에는 꽤 경사진 시멘트 내리막길이 있는데, 이 내리막길은 예전의 그 협소한 전망대에서 사진을 성에 찰 만큼 찍은 다음에 내려오던 길이었다. 그 끝에는 놀이터와 함께 아담한 공원이 있었던 것 같은데, 내리막길이 시작되는 지점에 있던 주택들이며 아담한 공원이며 보이지 않았다. 마지막 방문을 기억하지 못할 만큼 오랜만에 왔으면서, ‘기억’을 운운하는 것도 이상하지만 이쯤되면 내 ‘기억’에 잘못이 생긴 게 아닌가 싶었다.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공원에서 아쉬우나마 이리저리 사진을 찍어보고, 조성중인 공원을 가로질러 한강으로 곧장 내려왔다. 의외로 오래지 않아 한강대교가 나타났고 노들섬까지 걸어가는 것도 금방이었다. (한강대교까지 내려와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다만 한낮치고는 겨울바람이 차서 점점 사진 찍는 것에도 싫증이 났다. 한강대교는 반포 방면으로는 풍경이 밋밋하고, 대신 여의도 방면을 바라보면 한강철교와 함께 시원한 실루엣이 나타난다. 날씨는 맑지 않지만 그렇다고 흐리다 할 수 있는 날씨도 아니다. 얼마전까지 얼어붙었던 한강은 이제 완전히 녹아서 바다만큼 짙은 군청빛을 띠며 잔물결을 일으켰다. 동에서 서로 흐르고 있다는 건 알지만, 멀리서 보면 물의 흐름이 느려서 반대로 흐르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노들섬에는 운동을 하러 나온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반시계 방향으로 노들섬을 둘러보았는데, 노들섬의 서쪽 방면에 들어서면서부터는 먼저 용산의 풍경이 보이고 이윽고 여의도의 풍경이 시야에 들어온다. 노들섬에서는 여의도의 동쪽을 정면에 두고 바라보게 되는데, 여의도에 이미 63빌딩보다 높은 빌딩이 여럿 들어섰음에도 불구하고 63빌딩의 윤곽이 가장 시선을 사로잡는다. 단지 63빌딩의 상징적 의미 때문인지, 63빌딩을 뒤덮은 황금빛 외장재 때문인지, 하단에서 상단으로 올라갈 수록 날렵해지는 곡선 때문인지, 다른 빌딩들보다도 63빌딩이 확연히 눈에 띈다. 충돌하는 사실들과 조화로운 풍경. 노들섬을 반시계 방향으로 다 돈 뒤, 다시 한강대교로 올라와 여의도 방면으로 사진을 몇 장 더 남겼다.
이후 한강대교를 따라 아예 용산으로 올라가서 이날의 일정을 마무리했는데, ‘상전벽해(桑田碧海)’의 정의가 무엇인지 여실히 보여주는 오늘의 용산에 대해서도 묘사하자면 이야기할 것들이 많지만, 용산에 대한 묘사는 덧붙이고 싶지 않다. 흑석동에서 보았던 발전상과 크게 다르지도 않고, 오히려 더 극적인 변화가 일어난 곳이라는 것 정도가 요약이라면 간략한 요약이다. 기억은 과거의 것이기에 기억일 수 있지만, 때로 오늘에 와서 과거의 기억을 마주해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흑석동에서 노들섬에 이르는 짧은 방문은 어쩐지 기억의 상실을 확인하는 황량한 여정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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