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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 printemps주제 없는 글/印 2020. 4. 6. 17:35
프랑스어 수업을 마치고 광화문으로 향하는 버스 안이었다. 오늘만큼 정신이 몽롱했던 적은 없는 것 같다. 오전 내내 머리에 맴도는 단어들도 문장으로 출력이 되지 않아 허탈했다. 한 주 내내 시달린 목디스크 때문인가보다. 기진맥진한 나머지 차창에 머리를 기대고 시선을 떨궜다. 초조하다. 왼편으로 한남대교 아래를 흐르는 한강이 보인다. 이윽고 저 멀리 보광동 언덕 위 새하얀 미나렛이 보인다. 맞아 저거였어, 투신하듯 버스에서 내린다.
하차한 버스 정류장은 벌써 4년도 더 전에 독일문화원을 다닐 때마다 이용한 버스정류장이다. 그 때는 이 때보다 더 이른 계절이었지. 그러니까 겨울이었지. 갑자기 예전의 기억이 되살아나 말끔한 골목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아, 그래 맞아. Ach so, 독일의 정취를 느껴보겠다고 두어 번 들렀던 빵집. 예전에 빵집이 있던 자리에는 다른 가게가 들어섰다. Ach so, 시간이 벌써 그렇게 흘렀나. 한 블록 더 건너 가서 종종 들렀던 또 다른 빵집을 들어간다. 점심요기로 때울 프렛첼로 독일의 정취를 동냥해본다. 아니, 과거의 기억을.
무턱대고 첨탑이 보이는 방면으로, 무턱대고 걸어오른다. 언덕길이다. 그리 익숙한 길은 아니다. 명판에 대사관로라 쓰여진 걸 읽고 나서야 왼편으로 태국대사관이 눈에 들어온다. 그제서야 드문드문 자리 잡은 세련된 가게들이 보인다. 가게 이름들도 이탈리아어에다 프랑스어에 멋을 부렸다. 좀 더 올라가니 내가 이전에 이곳에 와본 적이 있다는 걸 깨닫는다. 지하차도가 나타나는 지점, 전역한 뒤 오랜만에 만난 군대 선임들과 술집을 찾아 헤맸던 길. 밤에 봤던 길이 낮에 오면 이렇게 생겼구나, 하며 생각한다. 심지어 그때는 모두가 다 길을 몰라 헤매고 있을 때였으니까 길에 대한 기억이 흐릿하다. 오로지 분명한 건 지하차도를 양 옆으로 에워싼 아주 가파른 계단. 그 때도 무척 가파라 보였었다.목표물은 가까워질수록 보이지 않는 법. 모스크도 미나렛도 보이지 않는다. 양옆의 다세대 주택들이 사방에서 표적을 가린다. 직감적으로 왼편으로 방향을 틀어 우사단로로 들어선다. 경리단길처럼 분명 군시설이 있던 자리에 붙은 이름일 것이다. 더 가파라질 곳이 없을 것 같은데 길은 점점 더 가파라진다. 미나렛 한 쌍 중 한쪽만이 다시 시야에 나타났다. 사냥. 한번 시험삼아 걸어보는 사람처럼 어기적어기적 마지막 남은 가파른 계단길을 오른다.
순수함. 이슬람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 그리고 근본주의. 순수함을 가장한 악랄함. 내게 먼저 다가오는 것은 순수함이다. 햇살이 따사롭다. 날씨가 개기 위해서는 약간의 바람이 필요한 법. 이번 바람은 훈풍이다. 하지만 비좁은 길목으로 들어서면 병목구간을 통과하는 바람이 아직 한창의 겨울 기운을 머금고 있다. 아침에 보았던 희뿌연 풍경 때문에 괴로웠던 마음이 봄으로 스륵 넘어간다.
정작 사원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다. 코로나로 인한 외부인 출입금지. 안내도라도 읽어보고 싶은데 예배를 마치고 나오는 여성 두 명과 마주쳤다. 히잡을 여미며 나오던 이들이 갑자기 발걸음을 멈춘다. 괜히 외부인이 서성거려서 가던 길을 멈췄나 제 발이 저려서 아쉬운 대로 발걸음을 돌린다. 사원의 신조감도가 입구 오른편에 떡하니 걸려 있던 걸 보면, 기대했던 순수함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풍경이었다.
집요하게 모스크와 미나렛을 두리번거려 보아도, 그보다 더 가까이에 있는 건 할랄 음식점들과 주택가들이다. 주위에 중동사람들이 보여서 잠시 파하르간즈의 정취가 느껴진다. 줄무늬 죄수복 같은 옷에 끝이 뾰족한 고깔 모자를 쓴 중동사람이 막다른 골목에서 쓰레기를 분리하고 있다. 그 막다른 골목이 미나렛이 잘 보이는 길목일까 싶어 성큼 발걸음을 옮긴다. 그 막다른 골목은 정말 막다른 골목이라, 고깔 차림의 남자는 낯선 사람이 갑자기 발을 들일 거라 생각하진 못한 모양이다. 어디 가냐고 내게 묻는 질문이 정말 어디를 찾는지 궁금하다는 그렇다면 도와주고 싶다는 질문은 아니다.
여전히 우사단길 위다. 막다른 골목에서 돌아서자마자 오른편으로 박수무당집이 보인다. 이슬람 사원 옆에 찰싹 등을 대고 있는 샤먼의 집. 나를 예의주시하는 예의 고깔모자. 경사진 길을 피하고 싶어 가능하면 평탄한 길을 골라 움직인다. 길을 한 번 꺾으니 트랜스젠더바가 밀집한 골목에 들어섰다. 아주 좁다란 골목에 4평이나 될까 싶은 바들이 다닥다닥 빈틈없이 붙어 있다. 온통 현란한 색의 합성지로 유리를 덧대어 놓아 내부를 들여다 볼 수조차 없다. 시선을 돌려보지만 사방이 내가 싫어하는 색들로 가득하다. 갑자기 목젖부터 위장으로 메스꺼움이 내려온다. 몸이 사랑을 규정지을 수 없다는 합리적 사고는 신체적 마비 안에 갇혀 버린다.여전히 몽롱한 나는 그런데도 발걸음을 서두르지 않는다. 눈에 익은 이태원의 큰길로 나와서야 좀 전의 길이 으레 알려진 유흥가와는 다른, 사각지대에 놓인 또 다른 공간이라는 걸 깨닫는다. 바로 건너편에 또 다른 간판들이 보였으므로. 다만 그 간판들은 좀 더 크고 도로변에 개방되어 있어 엄폐하는 느낌이 덜할뿐. 평탄한 길을 고른다고 골랐는데도 결국 가파른 내리막길 이후 고작 완만한 오르막길이다. 삶은 영화와 같지 않다. 소설과 같지 않다. 오직 시를 닮았다.
공적마스크를 구하려면 주말에라도 약국에 들러야 한다는 것도 까맣게 잊고, 다시 한 번 언덕을 찾는다. 걷는다. 아플 땐 눕기보다는 걷는다. 실은 이태원 역에서 그대로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가야 하나 잠시 망설였다. 그러나 이번 무대는 촘촘이 뻗은 이태원로다. 다시 대사관로의 분위기, 아니 더욱 말쑥한 풍경이 나타난다. 조지아 대사관, 벨기에 대사관, 여전히 대사관은 많고 뜬금없이 외교관들의 옷맵시를 머릿속으로 그려본다. 개나리, 그 다음에 제라늄, 계속 벚꽃. 외교관들은 어떤 색깔의 복장이 가장 잘 어울릴까? 케냐 대사관부터는 확실히 길이 눈에 익는다. 끝으로 백목련. 하얏트 호텔 앞에서 좀비처럼 걷는 남성이 경리단길로 길을 틀 일은 없다. 나는 소월길로 끌려 들어간다.
Ach so, 독일문화원을 갈 땐 항상 한남대교에서 올라오는 버스 아니면 보광동에서부터 올라오는 버스를 탔었지. 소월로, 참 좋아하는 길. 2호선 같은 길. 햇빛이 어찌나 강렬한지 무대를 비추는 스포트라이트 같다. 스포트라이트 아래에서 벚꽃잎이 넘실댄다. 남산타워를 구심점 삼아, 오른편으로는 벚나무를 두고 오른편으로는 한강을 두고, 마치 줄자로 허리둘레를 재듯, 그렇게 소월로를 걷는다. 유달리 벚나무가 꽃망울을 일찍 터뜨린 것 같고, 다른 활엽수들은 여전히 여린 연록에서 대기중이다. 모처럼 독일문화원의 도서관을 가고 싶다는 생각이 뇌리에 스친다.
Die Zeit. Le temps. 프랑스와 독일은 충돌하는 것도 참 많지. 종종 <Die Zeit> 지를 대출해 보곤 했었는데. 사진집 뺨칠 만큼 사진이 훌륭한 신문. 내 마음에 꼭 들었던 색감과 풍경. 텍스트는 읽지도 않고 이미지만 좇게 만들었던 신문, 독일사람들은 이렇게 좋은 신문도 읽는구나 했던 지면들, 이렇게 좋은 신문도 만들 줄 아는구나 했던 이미지와 텍스트의 절묘한 편집들, 오늘은 모처럼 <Die Zeit>지를 대출할 수 있는지 봐야겠다. 생각을 마칠 새도 없이 불쑥 저멀리 관악산이 시야에 끼어들었다.
관악산은 참 보기드문 능선을 갖고 있다. 이리저리 샐쭉거리는 봉우리들. 먼 풍경은 여전히 겨울 속에 희뿌옇게 가려 있구나. 이슬람 사원 앞에서 보이던 무역센터 일대의 마천루들은 이제 완벽히 가려졌다.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 나온 주민들, 뒤이어 해맑게 웃음을 나누며 바람을 가로지르는 라이딩 군단들. 그리고 마스크. 나의 걸음은 갈수록 느려져서, 나는 그저 가만히 서 있고 이러한 저러한 행인들이 나에게 서서히 다가왔다가 멀어지는 것 같다. 서두를 수 없는 풍경이다.
여전히 남산타워는 하나의 구심점인데, 나는 원심력과 구심력 사이에서 팽팽한 줄다리기를 시도한다. 지도상으로 소월로는 꼭 달맞이꽃의 뭉근한 실루엣을 닮아서, 남산타워로부터 가까워졌다 멀어졌다 통통 튀는 궤도를 반복한다. 독일문화원은 원래 닫는 날이 더 많은 것도 몰랐냐고 반문하듯 굳게 닫혀 있다. 코로나로 인한 임시폐쇄. 약간 바우하우스의 느낌이 나는 건물 너머 4년 전에 으레 바라봤던 한강이 눈에 들어온다. 한강은 사실 겨울에 좀 더 선명하다. 색채가 가득한 봄에는 생명의 약동이 더해져 한강의 유유한 물줄기는 시야의 저 끝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이윽고 올려다본 하늘은 이른 저녁만큼이나 눈이 시리도록 퍼렇다.
기도가 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슬람 사원이 보였을 때 해답을 찾은 것만 같았다. 3년간 대전에서 지낼 때에도 성당을 두어 번 찾은 적이 있다. 그때도 기도를 했다. 내게 종교란 이런 것이다. 기복신앙. 종교는 내게 필수가 아니라 어떤 필요다. 필요가 있을 때만 비로소 찾는다. 때문에 내게 종교는 그리 어렵고 까다로운 게 아니다. 아주 가볍다. 가끔은 보름달을 보면서 마음 속 바람을 띄워보내기도 하니까. 그런데 결과적으로 필요에 의한 기도조차 할 수 없었다. 그제야 길을 잃었다는 걸 깨달은 나는 을지로입구에서 우두커니 멈춰섰다. 광화문은 도착하지 못한 채였다.'주제 없는 글 > 印'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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