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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편의 리처드 링클레이터일상/film 2020. 10. 16. 01:50
It’s for survival. You need to be prepared for novel experiences because often they signal danger. If you live in a jungle full of fragrant flowers, you have to stop being so overwhelmed by the lovely smell because otherwise you couldn’t smell a predator. That’s why your brain is considered a discounting mechanism. It’s literally a matter of survival.
Something unexpected has just come up. Just thinking about it has got my heart racing.
매주까지는 아니더라도 국내에 상영을 앞둔 영화들의 정보를 찾아보곤 한다. <어디갔어 버나뎃>. 제목만 봐서는 그다지 흥미를 끌지 않았었는데, 이 영화의 감독이 리처드 링클레이터라는 것을 알고 곧장 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비포 선라이즈-선셋-미드나잇> 시리즈와 <에브리바디 원츠 썸>을 본 뒤로 그의 작품에는 자동적으로 눈길이 간다.
영화는 2014년 흥행했던 소설 원작을 바탕으로 하는데, 이야기속 주인공인 버나뎃 폭스(케이트 블란쳇)는 대단히 편집증적인 인물이다. 20여 년전 소위 ‘잘 나가는‘ 건축가였던 버나뎃은 활동의 주무대였던 LA를 떠나 시애틀의 옛 요양시설을 집으로 개조해 자신만의 세계를 지어 올리고 살아간다. 그녀에게 남편과 딸이 있기는 하지만, 그녀는 새로 정착한 시애틀에 마음을 붙이지도 못하고 모든 사람들과의 교류를 꺼린다. 그녀에게 열광하는 건축학도에게 반사회적인 반응—영화의 표현에 따르면 ‘menace to society’—을 여과없이 보이기도 한다. 요즘 뉴스에도 종종 언급되는 시사용어대로 ‘히키코모리’인 셈이다. 성공의 정점에 있을 때 겪었던 한 사건—반경 20마일 이내의 자재만 사용한다는 모티브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던 그녀의 건축물 '20마일 하우스'가 그녀에게 비뚤어진 마음을 품고 있던 이웃의 모략으로 인해 완공됨과 동시에 허물어진 것이 20년 전의 일이다—은 트라우마가 되어 그녀의 마음을 통째로 집어삼킨 듯하다.
버나뎃의 음울한 시선과는 별개로, 개인적으로 시애틀 여행을 다녀왔던 기억이 되살아나서 영화 속 장면장면들이 반갑게 느껴졌다. 렘 쿨하스가 지은 시애틀의 공공도서관, 엑스포를 위해 지어진 스페이스 니들과 그 안에서 바라보는 시원한 전망, 치훌리의 나선형 유리공예까지..! 또 여러 글로벌 기업—아마존, 스타벅스, 보잉, 마이크로소프트—의 본산지 시애틀답게 마이크로소프트의 현대적인 사무실 풍경도 영화에 등장하기 때문에 감상하는 동안 작은 재미가 된다. (여담으로 시애틀의 아마존 본사는 유리로 된 반구(半球) 모양의 식물원을 두고 있는데 시애틀이라는 도시 자체가 여러 가지 신선한 시도가 차분하게 이뤄지는 도시라는 인상을 받는다) 좌우간에 LA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버나뎃 폭스의 눈에 비치는 시애틀의 우중충한 빛깔은 회색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영화의 주무대가 시애틀이기는 하지만 나중에 남극(그렇다, 북극의 반대 남극이다;;)으로 무대를 옮겨가는데, 이러한 장소 설정만 봐서는 언뜻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라는 작품이 떠오른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에서는 따뜻한 색감의 샌프란시스코의 풍경과 거친 빙하로 뒤덮인 아이슬란드의 풍경이 왔다 갔다 하기 때문이다. 물론 월터는 평범하지만 버나뎃은 괴짜라는 점에서 캐릭터상에 큰 차이가 있기는 하다. 또한 히스테릭한 주인공의 면모를 차치한다면 가족애를 발견해 나가는 큰 틀의 스토리를 보았을 때 이 작품은 여느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작품들과 공통분모를 공유한다.
영화의 도입부에 비(버나뎃의 딸)의 내래이션과 함께 ‘디스카운팅 매커니즘(discounting mechanism)'이라는 심리학 용어가 나온다. 누구든지간에 아무리 좋은 일이 일어나도 그러한 것에 대한 감사한 마음은 그리 오래가지 않고 점점 강도가 떨어진다(discount)는 것이다. 이는 인간의 간사함 때문이 아니라 인간이 그저 생존본능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좀전의 행운에 안도하고 있으면 다가오는 새로운 위험을 놓칠 수 있고, 이는 생존 측면에서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는 엄마 버나뎃이 이 매커니즘에 빠진 나머지 삶의 동력을 잃은 채 자신만의 세계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첫 화면에서 물음표를 떠올리는 것이다.
남극에 다다른 버나뎃은 20년간 애써 외면하고 망각해왔던 자신의 꿈을 소생시키는 데 성공한다. 물론 그녀가 그 오랜 세월 동안 은둔생활을 자처해 왔던 것은, 디스카운팅 매커니즘에서 탈출하지 못한 그녀 자신의 개인적인 나약함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엘진(그녀의 남편)이 나중에 깨닫게 되듯, 한 사람의 고통과 불행은 주위의 일관된 무관심에서 시작될 때가 있다. '무관심‘은 흔히 생각하듯 ‘상대방에게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는 방임적인 접근과 사고방식’을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무관심은 그와 반대로 상대방에게 파괴적인 힘을 지닐 때가 있다.
사실 이러한 문제의 모든 원인은 기본적으로 인간이 사적인 존재인 동시에 사회적인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때문에 ‘디스카운팅 매커니즘’은 버나뎃의 문제상황을 그녀 개인에게서 찾을 때는 매끄럽게 설명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환경과 조직을 포함한 종합적인 설명까지 나아가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영화를 보면 버나뎃은 트라우마를 끌어안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삶에 무엇이 돌부리처럼 걸려 있는지도 모르는 채 그녀를 포함한 모두에게 방치되어 왔던 것 같다. 결국 인간은 홀로 사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영화는 가족애를 찾아나가는 여정을 통해 증명해 보인다.
I mean I've spent the first half of my life acquiring all this crap and now I'm gonna spend the second half of my life getting rid of all this stuff.
You know how everyone's always saying seize the moment? I don't know, I'm kind of thinking it's the other way around, you know, like the moment seizes us.
Seriously. I read this thing other day about how, like, when you hear that ding on your inbox you get a, like a dopamine rush in your brain. It’s like we’re being chemically rewarded for allowing ourselves to be brainwashed. How evil is that? We’re fucked.
That’s the thing though, I’m not doing it for attention. I just want to try and not live my life through a screen. I want, like, some kind of actual interaction. A real person, not just the profile they put up.
Yeah, okay, I know you’re joking, but, I mean, it’s kinda true you have been, you know, checking your phone this whole time, and so what are you really doing? You don’t care what your friends are up to on Saturday afternoon but you’re also obviously not fully experiencing my profound bitching so… it’s like everyone’s just stuck in, like, an in-between state. Not really experiencing anything.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내친 김에 <보이후드>도 연달아 감상했다. 이 영화의 경우 어느 사이트를 가나 평이 굉장히 좋기도 하고 그래서인지 잊을 만하면 크고 작은 상영관에서 다시 스크린에 걸기도 하는데, 러닝타임이 어벤저스 급인 데다 매번 시간도 맞지 않아서, “보고 싶은 영화“ 리스트의 상단에 있었는데도 선뜻 보지는 못했었다. 그러다 스트리밍이기는 하지만 이 참에 영화를 보았는데, 영어를 좀 더 잘했다면 작은 맥락도 놓치지 않고 봤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무료 체험 서비스로 봤기 때문에 그런 대로 만족한다.
리처드 링클레이터 작품의 단골 배우인 에단 호크가 나온다. 영화의 스토리나 익숙하지 않은 배우들의 표정까지 모두 좋다. (특히 리처드 링클레이터 본인의 딸이기도 한 로렐라이 링클레이터의 심드렁한 표정을 읽는 재미가 있었다) 유년기(boyhood)라는 ‘말 그대로’ 꼬마에서 대학 신입생이 되는 주인공 메이슨과 사만다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데, 컴퓨터기술을 이용했을 것 같지는 않고 정말 이만큼의 시간차를 두고 촬영한 건지 궁금해서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촬영기간만 장장 12년이 걸렸다고 한다. 촬영기간이 긴 건 둘째로 하더라도,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그 사이에 현장의 촬영환경도 어느 정도 바뀌었을 거고, 관객들의 취향도 달라졌을 텐데 이런 것들을 어떻게 다 감수하고 이렇게 완성도 높은 작품을 만들었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영화가 2014년작이기 때문에 12년을 거슬러 올라가면 대략적으로 2002년 즈음을 시간적 배경의 출발점으로 삼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인지 나도 공감할 만한 소재들이 자주 등장하는데, 특히 배경음악이 그렇다. 영화의 포문을 여는 콜드플레이의 ‘Yellow’에서부터, 밴드 ‘Foster the people’의 ‘Helena Beat’, Soulja Boy의 랩 ‘Crank that’까지, 한때 나의 종잡을 수 없는 음악 취향에 장단을 맞춰줬던 곡들이 쉴새없이 흘러나온다. 특히 에단 호크가 등장하는 장면마다 멋진 가사와 함께 귀에 감기는 멜로디가 나오는데, <보이후드>는 2000년대 초반의 느낌을 한껏 살리는 적절한 선곡(選曲)이 꼭 아니더라도 영화 전반에서 음악에 많이 공을 들였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 가운데에서도 에단 호크가 시골의 부모님댁에 가서 아내와 함께 기타를 치며 부르는 곡 ‘Ryan’s Song’은 음악 자체도 좋지만 가사도 서정적인 멋이 있어서 기억에 많이 남는다.
I wanna be really rich
but not care about money
to always tell the truth
but still be really funny
I want for you to know me completely
but still remain mysterious
consider everything deeply
but still remain fearless이제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작품 가운데에서는 2004년작인 <스쿨 오브 락>을 마저 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각설하고 그의 작품에는 ‘삶은 이런 것이다‘라는 단정적인 어조를 대신해 ‘삶은 이렇게 흘러가기도 하더라’는 다소 관조적인 (꼼꼼히 계산은 되었겠지만서도 자연스런) 화법이 담겨 있어서 매력적이라 생각한다. 영화속 등장인물들은 각자 결함도 있고 다른 누군가는 불행과 상처라 여길 만한 것들을 거쳐 나가며 저마다의 제자리를 찾아나간다.
때때로 어떤 예술작품들은 인과(因果)의 가장 앞과 가장 끝만을 잘라서 보여주는 방식으로 극적인 서사를 전개하는데 이는 진부하고 식상하다. 살면서 끈덕지게 궁금증이 따라붙는 질문들은 결국 인과의 중간지점에 놓인 무수히 많은 시행착오들을 어떻게 견디며 극복해야 하는지에 관한 것들이었다. 그런 중간지점에 놓인 문제들은 조금은 어수선하기도 하고 정의내리기가 까다로울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노정(路程)이야 말로 인생의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법이다.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작품 <보이후드>는 삶의 시작과 마지막이 아닌 삶의 한가운데를 마치 바닷가 모래 위에 동글동글한 조약돌을 늘어놓듯 따듯하고 부드러운 시선으로 그려낸다. [終]'일상 > film'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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