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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차릴 정도로 감정에 호소하는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이 영화는 그런 면이 없지 않지만 관람한 뒤 왓챠에 고민없이 5점짜리 영화로 저장해 두었다. <낙엽귀근(落葉歸根)>. 떨어진 잎은 뿌리로 되돌아간다, 죽어서 태어난 곳으로 되돌아간다는 뜻이다. 주인공은 함께 일하던 동료가 죽자, 그를 가족에게 바래다 주기 위해 충칭으로 향한다. 충칭으로 향하는 긴 여로에서 온갖 희로애락을 겪으면서도 주인공(자오번산)은 천진한 웃음을 잃지 않는다. 그런 그에게서 삶을 긍정하는 모습을 읽어낼 수도 있는 반면, 보다 무미건조하게 말하자면 중국 농민공들의 고된 현실을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중국 농민공들의 고달픈 삶과 애환은 뒤이어 보는 지아장커의 <스틸 라이프>에도 잘 담겨 있다.
영화에 자세히 언급되지는 않지만 주인공과 그의 동료는 농촌에서 도시로 이주해 온 하급노동자다. 중국에서는 하나의 중국을 이루기 위해 아직까지도 여러 통제와 검열이 이루어지는 만큼, 출생한지역을 기준으로 도시지역과 농촌지역을 구분하는 명목상의 호구(戶口)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인구이동을 통제하자는 것이 제도의 목적인데, 원래는 개혁개방으로 지역간 경제수준의 격차가 커지면서 과도한 도시화 현상을 막기 위한 취지에서 시행되었다. 문제는 도시와 농촌간의 임금격차가 갈수록 심화되면서 농촌을 떠나 도시로 유입되는, 그러니까 신분상으로는 농민이지만 실질적으로 도시노동자인 농민공이 증가되었다는 것이다. 2020년 현재 기준으로 중국에서 농민공의 인구만 2억 5천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이들 농민공은 도시의 높은 급여를 기대하고 도시로 모여들지만, 호구상의 제한 때문에 양질의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다. 높은 임금과 사회보장제도를 제공하는 일자리는 결국 도시 호구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만 허용될 수 있도록 자격에 제한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도시로 흘러든 농민들은 일반 도시노동자들보다 낮은 임금을 받으면서 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인다. 실제로 영화에는 동료가 업무재해를 인정받아 회사로부터 위자료를 받은 것에 안도하는 장면에서 한 차례 이들의 열악한 처지를 확인할 수 있고, 다음으로 농민공이 타지에서 사망할 경우 해당지역에서 유해를 처리해야 한다는 법률을 공안(公安)이 읊는 대목에서는 지금의 호구제도 안에서 완전히 회색지대에 갇혀버린 농민공들의 지위까지 확인할 수 있다.
중국이 개혁개방 정책을 펼치면서 짧은 시간에 눈부신 성장을 거둔 것은 사실이지만, 성장속도가 둔화되고 있는 현시점에서 경제발전을 위해 감내해 왔던 사회문제들이 집약적으로 드러나는 것도 사실이다. 1980년도에 도입했던 한자녀 정책을 2015년에 폐기했을 만큼 인구구성도 고도성장기 때와는 많이 바뀌었다. 이러한 추세에 발맞춰 엄격한 호구 제도를 부분적으로 완화한다고는 하지만, 중국사회의 급변 그리고 이를 따라가지 못한 제도들은 중국인들의 생활 속에 여러 방식으로 기형적인 양태를 심어 놓은 것 같다.
실제로 베이징을 여행할 당시, 베이징 호구를 가진 신랑감을 두고 흥정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진기한 풍경이었다. 또 영화에서는 자신의 피를 팔아 돈을 버는 모습도 나와 조금 충격을 주었다. 수입을 목적으로 헌혈에 참가했던 사람들은 공안의 체포로 재활시설에 한꺼번에 수용되는데, 주인공은 이 시설에서 한 여인과 사랑에 빠진다. 그녀는 자신의 피를 팔아서까지 아들을 도시의 좋은 대학에 진학시켰지만, 고학력의 세계에 들어선 아들은 점점 더 사회적 지위가 낮은 그녀를 멀리한다. 그런 주인공과 이 여인은 서로의 고달픔을 어루만져줄 사람이 필요했고 의지하기 시작한다.
온갖 고초를 겪으며 죽은 동료를 들처엎고 먼 길을 나섰던 주인공이 영화에서 딱 한 번 삶을 부정하는 장면이 있다.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던 그는 ‘더 살아봐야 좋을 것도 없지 않겠나'하는 자조적인 말을 하는데 안타까운 기분이 들었다. 영화 속 중국과 한국사회는 배경은 다르지만, 승자와 패자가 부조리하게 나뉘고 이를 받아들여야 하는 인물과 이를 더욱 공고히 하는 시간과 공간에 감정이 이입되었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아직도 정부 주도의 선전(宣傳)이 작동하는 중국에서, 중국사회의 불편한 진실을 그리고 있는 <낙엽귀근>과 같은 작품이 나왔다는 것이 좀 의외였는데, <스틸 라이프>에는 중국사회의 부조리가 좀 더 신랄하게 담겨 있다. 장양의 <낙엽귀근>이 2007년작, 지아장커의 <스틸 라이프>가 2006년작인데, 2008년이 베이징올림픽이 개최되었던 해이니까 중국정부가 자신들의 성과에 대한 홍보에 열을 한창 올리던 시점에 사회비판적인 영화들이 제작되었다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또 <낙엽귀근>이 충칭으로 향하는 길을 담고 있고 <스틸 라이프>는 싼샤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둘 모두 중국의 내륙지역인 후베이성(湖北省) 일대를 배경으로 한다는 점이 눈에 들어왔다. 충칭은 중국에서 손꼽히는 대도시로 후베이성에 인접해 있고, 싼샤는 후베이성에 자리잡은 도시로 얼마 전까지 붕괴설이 제기되기도 했던 세계 최대규모의 댐 중 한 곳인 싼샤댐이 위치한 곳이다.
사실 <낙엽귀근>에서도 주인공이 어렵사리 도착한 동료의 고향이 수몰되어, 동료의 가족들이 이사한 곳까지 다시 6시간 거리를 더 가야 하는 장면이 나온다. 마찬가지로 <스틸 라이프>에서도 싼샤댐은 등장인물들의 삶에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치는 소재로 소개된다. 주인공인 ‘산밍’은 원래 살던 곳에서 3000위안을주고 신부를 구한다. 하지만 신부는 고향인 싼샤로 도망치고, 그런 뒤 십수년이 지나 산밍은 딸의 모습을 보고 싶어 싼샤까지 먼 길을 나선다. 하지만 싼샤댐을 짓기 위해 차례차례 수몰작업이 진행되다보니 몇년 사이로 지형지물이 바뀌어서 목적지까지 가는 것부터가 만만치 않다.
국가의 위상을 드높일 거대하고 화려한 토목공사의 이면에서 펼쳐지는 삶의 모습들은 대단히 삭막하다. 수몰에 대비하기 위한 소개(疏開)의 일환으로, 또는도시화의 일환으로 싼샤의 도처에서는 철거작업이 이뤄진다. 산밍은 아내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얻기 전까지 싼샤의 철거인부로 생활비를 충당한다. 철거현장에서 산밍이 사귄 친구들은 앞면에 마오쩌둥의 초상화가 인쇄된 붉은 색 지폐를 꺼내보인 뒤, 화폐 뒤에 찍힌 싼샤 협곡의 아름다운 풍경을 가리키며 외지인인 산밍에게 허풍을 떤다. 하지만 싼샤의 수려한 풍경과 정부의 야심찬 프로젝트라는 베일 뒤에 그려지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가치가 추락한 사람들의 파리한 몰골뿐이다. 인간의 존엄성은 돈이 가진 힘보다도 아주 미약하게 그려진다.
영화에는 산밍뿐만 아니라 ‘셴홍‘이라는 또 다른 여인의 이야기가 좀 더 작은 비중으로 삽입되어 있다. 돈을 벌어보겠다고 싼샤로 흘러든 뒤 연락이 두절된 남편을 찾아 싼샤까지 먼 길을 왔다는 점에서 그녀 또한 산밍과 똑같다. 그런데 사실 <스틸 라이프>에서는 중심을 차지하는 산밍이나 셴홍이라는 인물보다도 주변적인 인물들을 더 눈여겨 봐야 한다. 물이 불어난 양쯔강을 건너기 직전의 셴홍에게 시녀로 삼아 달라고 하는 비루한 차림의 어린 여자, 산밍의 친구가 되지만 공사장에서 허망하게 죽음을 맞이한 젊은 청년. 이름조차도 제대로 언급되지 않아 무심코 넘기기 쉬운 인물들이 영화에서 중요한 것들을 암시한다. 이러한 인물들은 영화에서 수시로 전면에 나타났다 사라진다.
영화의 구성이 한 가지 독특하다고 느꼈던 것이, 독특한 양식으로 영화에 각각의 장(章)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보통은 하나의 장이 열리기 전에 장의 이름을 달아 놓게 마련인데, 영화는 하나의 호흡이 일단락되는 지점에서 술(酒), 차(茶), 사탕(糖)과 같은 소재로 장의 끝에 제목을 달아 놓고 있다.
또 영화의 제목 <스틸 라이프>는 중의적으로 해석해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먼저 ‘정적인 삶'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등장인물들의 처지는 당장에 개선될 여지가 보이지 않고, 무엇보다도 그들 자신이 현실에 체념한 상태라는 점에서 대단히 정적이다. 다른 한 편으로는 ‘여전히 살아간다’라는 의미로 끼워맞춰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산밍은 동료들과 함께 싼샤를 떠나는 마지막 장면—이 마지막 장면도 살풍경한 공사장의 잿빛 풍경이다—에서 반쯤 무너진 두 개의 건물 사이로 허공에서 줄을 타는 누군가의 실루엣을 바라본다. 살얼음 위를 걷듯 한 걸음 한 걸음 아슬아슬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줄 위의 실루엣은 마치 산밍과 셴홍 그리고 우리의 인생을 말하는 것 같다. 한 발이라도 잘못 디뎠다가는 아찔한 나락으로 떨어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줄 위에 서 있을 수밖에 없는 누군가의 인생. [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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