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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에 영화 한 편을 못 봤다. 날씨가 쌀쌀해지니 <프록시마 프로젝트>, <남과 여: 여전히 찬란한>, <글로리아를 위하여> 같은 잔잔해 보이는 프랑스 영화들을 봐야지 생각만 하다가, 스크린에서 영화가 내릴 때까지 차일피일한 사이 한 달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하루는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시험을 보고 누워서 뻗어 있는데 문득 영화가 보고 싶었다. 그래서 저녁도 아니고 점심도 아닌 식사를 한 뒤 본 것이 <그리고 우린 춤을 추었다>. 제목이 참 마음에 들었다.
영화는 조지아를 배경으로 하는데, 영화 제목에서 말하는 ‘춤’은 바로 조지아의 전통무용이다. 조지아라는 나라도 익숙하지가 않은데 조지아의 전통무용은 더욱 익숙할 리가 없지만, 매우 절도 있고 군사적인 안무는 대번에 보는 이를 사로잡는다. 이 전통무용은 한 치의 타협도 없이 엄격하게 명맥을 이어나가야 하는 것이고, 때문에 이 ‘전통’ 춤은 영화 안에서 ‘현대’적인 흐름들과 껄끄러운 마찰이 생기는 지점이 된다. 또 영화 안에는 이웃국가인 아르메니아가 부정적으로 묘사되곤 하는데, 아르메니아는 기독교 국가인 반면 조지아는 그리스 정교회 국가로 서로 종교가 다르기 때문에, 이웃국가를 격하시키는 방식으로 조지아의 정체성을 공고히 하려는 모습도 엿보인다. 그리고 이런 크고 작은 조각들은 조지아 사회를 흔들림 없이 지탱해주는 통일되고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를 묘사한다. 단, 위화감을 불러일으키는 한 인물은 이 조각의 대열에 낄 수 없었으니..
영화의 주인공 메라비는 이 고요한 물결에 조용히 파문을 일으킨다. 국립 무용단에서 무용수로서 꿈을 키워가는 그는 어느 날 무용단에 합류한 이라클리라는 청년에게 마음이 이끌리기 시작한다. 이단아적인 기질을 가진 이라클리는 늘 자신에 가득 차 있고 유쾌하게 웃는데, 메라비는 그런 그에게 호감을 갖게 된다. 하지만 메라비에게 되돌아오는 것은 따가운 시선과 야유였고, 조지아 사회는 아직 다양성을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 영화석에 여실히 나타난다. 마지막 오디션에서 메라비의 무용이 전통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다고 비난하며 자리를 박차는 감독관의 모습이나, 메라비의 형이 메라비를 끌어안고 흐느끼며 반드시 조지아를 떠나라고 이야기하는 대목에서, 그리고 이라클리가 가부장제 안으로 무기력하게 흡수되어 가는 장면들을 통해 감독이 영화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결국 마지막 오디션까지 메라비를 놓아주지 않았던 접질린 발목은 사회가 개인에게 가하는 차별이 남기는 상처를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최근에 본 두 편의 영화는 공교롭게도 딱 떨어지는 공통된 테마가 있는데 바로 ‘춤’과 ‘성소수자’라는 테마이다. 사실 요즘은 마음까지도 건조해지는 계절이라 가족 간의 관계를 그린 영화나 로맨스 코미디를 꼭 보고 싶었는데, <걸>은 <그리고 우린 춤을 추었다>보다 좀 더 가족 관계가 충분히 다뤄지는 게 좋았다. <그리고 우린 춤을 추었다>의 경우 조지아라는 아주 이국적인 생활상을 접하는 재미가 있었지만, 어쩐지 이야기가 조금 개연성도 부족하고 밀도 있게 전개되는 느낌 또한 부족했다. 반면 <걸>은 벨기에식 프랑스어와 네덜란드어가 뒤섞여 나와서 다양한 생활상을 들여다보는 재미도 있는 동시에 ‘관계’에 초점을 맞춘 것도 눈에 띈다.
<그리고 우린 춤을 추었다>의 경우 동성간의 사랑에 대해 그린다면, <걸>은 트랜스젠더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것도 성전환을 앞둔 15살 소년의 이야기인데, 이 트랜스걸 ‘라라’ 에게 우호적인 의료진과 가족들의 성원을 보고 있자면, 메라비와는 처해진 상황이 사뭇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감독 루카스 돈트가 벨기에에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발레리나를 지망하는 트랜스걸을 영화화했다고 하는데, 배우 빅토르 폴스터의 연기가 매우 훌륭하고 코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어느 가족>이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던 2018년도 칸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기도 했다. (영화 자체는 황금카메라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환경이 호의적이라고 해서 모든 것이 순탄한 것은 아니다. 또래와 우정을 쌓는 것, 새로운 감정을 발견해 나가는 것, 이 모든 것이 라라에게는 극한의 과업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눈여겨 본 것은 가족의 구성이다. <그리고 우린 춤을 추었다>에서는 보수적인 사회적 분위기와 맞물려 대체로 온전한 형태의 대가족들이 등장하는 반면, <걸>에 나오는 가족에는 구성원들이 하나씩 빠져 있다. 라라의 가족도 편부모 가정이고, 이웃집 소년의 가족도 어쩐지 완전한 모양으로 나오지 않는다. 애당초 이런 부분에 대한 설명이나 암시를 생략하기 때문에, 다양한 형태의 가족 구성에 대해 벨기에나 네덜란드가 상대적으로 열린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일까 추론만 할 뿐이다. 점점 획일적인 제도 안에 사회 구성원을 묶기 어려울 만큼 앞으로도 '다양성'은 우리 사회에 큰 화두가 될 것 같다.
남성적인 느낌의 ‘조지아 전통무용’과 우아한 동작의 ‘발레’, ‘같은 성을 좋아하는 사람’과 ‘다른 성이 되고자 하는 사람’까지. 닮은 듯하지만 ‘다양성’이라는 주제 안에서도 다른 결을 그리는 두 영화였다. 그리고 뜻밖에도 떠오르는 건 남성성과 여성성이 재해석되어야 한다고 하는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이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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