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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젊음의 가벼움일상/film 2020. 9. 6. 20:56
다분히 논란의 소지가 있는 영화다. 머리를 식힐 겸 종종 프랑수아 오종의 영화를 찾아서 본다. (+프랑스어도 공부할 겸) 프랑수아 오종의 영화는 <두 개의 사랑>으로 처음 접했는데, 이 영화에는 마찬가지로 <두 개의 사랑>에서 처음 얼굴을 익혔던 마린 백트라는 여배우가 등장한다. (여담이지만 ‘마린 백트’는 예전에 좋아했던 향수의 이름이기도 하다) 여하간 끝으로 iDMB에 매겨진 평점을 참고하고서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프랑수아 오종 특유의 관능미와 은근한 긴장감이 각각의 장면에 잘 스며들어 있다.
이자벨이라는 17세 소녀(마린 백트)는 우연한 기회에 인터넷을 통해 낯선 남자들과 만남을 만들어 나간다. 이 가상세계에서 이자벨은 레아라는 이름으로 활동한다. 그리고 위험한 관계 안에서 화대(花代)를 치르는 이나 이를 받는 이나 윤리의식은 일찍이 흐릿해져 있다. 자신의 젊음을 무기로 아슬아슬한 관계에 발을 들인 이자벨(또는 레아)을 움직이는 것은 치기 어린 호기심일까, 아니면 가까스로 탈선을 피한 광기 어린 폭주인 것일까.
윤리적으로 논란이 있는 소재인데다, 그러한 소재를 미화(美化)한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쉬운 내용이다. 그럼에도 이 관능미 넘치는 실루엣들과 얼굴을 따라가다 보면 이 이야기의 다음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게 된다. 이자벨은 자신이 모은 돈을 복지시설에 환원하자는 부모의 설득을 뿌리치고, 오직 자신의 상담치료비로 활용하겠다고 단호히 말한다. 사실 이자벨이 위험한 거래에 가담한 것이 단지 돈 때문이었다면, 어렵지 않게 손에 넣은 돈을 어떤 식으로든 과시(奢侈)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자벨은 멈추지 않는 열락 안에서 벌어들인 돈을 사용하는 것에는 전혀 의미를 부여하는 것 같지 않다. 꼬깃꼬깃한 지폐들은 젊음의 대가가 아니라 단지 젊음의 증거일 뿐이다.
조르주의 죽음과 더불어 그녀의 도 넘은 일탈은 일단 제동이 걸린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조르주의 미망인을 만나는 지점에서, 다시 한 번 젊음에 대한 인간적인 애착이 두드러진다. 이 불편한 해후에서 그려지는 것은 젊고 예쁜(jeune et jolie) 여자를 향한 나이든 여성의 원망 가득한 힐책이 아니다. 그 장면을 채우는 것은 젊은 시절을 그리워하는 백발의 우아한 여인이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는 무엇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지 조금 혼란스럽다. 이 뒤틀린 거래의 당사자들이 어떤 심리를 갖고 상황에 접근하는가 하는 것? 젊음이 어느 정도의 무게를 갖고 있느냐 하는 것? 젊음과 아름다움 이후에 남는 건 어쩐지 쏜살처럼 지나가는 시간에 대한 그리움이러는 것?
프랑스 영화를 보고 나서 뭔가 비슷한 느낌의 영화를 한 편 더 보려고 자비에 돌란의 <마티아스와 막심>을 봤다. 아직 상영중인 영화로 아는데 영화관에서 본 건 아니고, MUBI라는 플랫폼을 통해서 봤는데 첫 일주일은 무료로 체험을 해볼 수 있어서 무료로 영화를 봤다. 이 플랫폼의 좋은 점은, 자비에 돌란이 MUBI라는 플랫폼을 통해 처음으로 영화를 렌트했었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영화 끝에 MUBI를 위한 짤막한 독점 인터뷰 영상을 달아 놨다. (구글링해도 텍스트로도 인터뷰가 검색이 되기는 한다.) 한 가지 좀 문제였던 것은, 내가 생각한 프랑스어로 된 영화가 아니었다는 점. 자비에 돌란의 작품이 대체로 프랑스어로 만들어지는데, 배경이 캐나다라서 그런지 말투에 영어도 많이 섞이고 <영 앤 뷰티풀>과는 딴판이었다.
개인적으로 자비에 돌란의 작품 가운데 가장 감명 깊게 봤던 것은 <마미>라는 작품이다. 사실 이 작품을 통해서 자비에 돌란을 처음 알았는데, 다정다감한 색감도 좋고 꾸미지 않은 듯한 스토리 전개가 자비에 돌란의 매력이다. 그 이후에 여러 작품은 본 것은 아니지만, <마미>와 같은 이야기를 기대하고 본 <단지 세상의 끝>에서는 감독이 뭘 말하겠다는 건지 난해하고 어려웠다. 그리고 <마티아스와 막심>도 어쩐지 중반부는 지루하게 느껴졌다. 좀전의 인터뷰를 보면 그가 평소 존경하는 감독은 폴 토마스 앤더슨(Paul Thomas Anderson)이라고 소개한다. 그리고 그를 존경하는 까닭이, 이런 식으로도 스토리텔링을 할 수 있다는 걸 깨닫게 해준 감독이기 때문이라고 언급한다.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니 본 작품이 하나도 없는데(;;) 가장 근래의 작품으로는 <팬텀 스레드>가 있다. 자비에 돌란이 스토리텔링 기법의 어떤 면에 감명 받았다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요지는 자비에 돌란도 그간의 작품 활동을 통해 남다른 스토리텔링을 시도해보고 싶었던 것 같다.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작품도 더 찾아보아야 할 것 같다.) 그리고 평범한 사람들의 이런 일상이 있다는 것을 얘기하고 싶다는 말도 덧붙인다.
이 영화에서 자비에 돌란은 본인이 막심 역으로 직접 출연한다. 영화에서 막심은 수줍음을 많이 타고 마음 여린 주인공 청년으로 등장하는데, 자존감이 넘치고 사회적 지위가 높은 캐릭터인 마티아스 역에는 자신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감독 자신의 의견이 반영되었다고. 어쨌든 영화에서는 아주 어릴 적부터 서로 모근 것을 공유하며 지내온 동네 친구들이 늘 함께 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비록 마티아스와 막심이 우정과 사랑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기는 하지만, 왁자지껄한 여섯 친구들의 이야기를 보며 문득 <에브리바디 원츠 썸!!>이라는 오래된 영화가 떠올랐다. 또한 오랜 우정을 지켜봐 온 사람들까지 같이 합류하여,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영화이기도 했다. 요즈음 예전만큼 영화를 찾아보지는 않지만, 당분간 집에 머무르면서 볼 만한 영화들을 더 찾아봐야 할 것 같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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