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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에민쥔, 한 시대를 웃다! 展주제 있는 글/Arte。 2021. 1. 15. 00:36
동양의 수묵화나 일본의 우키요에(浮世絵)에 해박하지도 않은 내가 아시아의 현대미술을 처음 알게 되었던 게 2011년 여름 즈음의 일이다. 거의 졸업을 앞두었을 때 예술경영 수업에서 우연한 기회에 중국미술시장을 발표 주제로 잡았고, 차이나 아방가르드라는 존재를 알게 되었다. 유에민쥔—또는 웨민쥔이라고도 하는데 3음절의 중국어 ‘岳敏君; yue minjun’에서 왔다—은 이때 처음 접한 작가다.
20세기 후반부터 현대미술에서 주목받은 예술적 흐름으로 네 곳 정도가 꼽히는데, 이들이 바로 영국의 yBa(이에 관해서는 '피터 도이그' 포스팅에서 잠시 언급한 바 있다)와 독일의 라히프치히 스쿨(이에 관해서는 영화 <작가미상> 포스팅에서 게르하르트 리히터를 통해 잠시 언급한 바 있다), 인도의 현대미술, 그리고 차이나 아방가르드. 여기에 또 뒤따르는 수식어가 있는데, 바로 중국 현대미술의 사대천왕으로 유에민쥔(岳敏君), 왕광이(王廣義), 장샤오강(張曉剛), 팡리쥔(方力鈞)이 그들이다. (2011년에 조사할 때는 왕광이 대신 대만 작가 쩡판즈가 포함되곤 했었는데, 사대천왕이라는 게 어디까지나 편의상의 표현인 것 같다.)
한가람미술관에서 진행된 <유에민쥔, 한 시대를 웃다!> 전시는 3층에서 진행되었다. 2개의 전시실에 꾸려진 이번 전시는 이전에 보았던 여느 전시에 비해서는 규모가 작은 편이다. 하지만 전시를 보러가는 게 생각보다 쉽지는 않았으니, 코로나 유행이 다시 시작되면서 지난 연말 한동안 미술관이 임시 휴관에 들어간 것이다. 근래에 통제가 조금 풀리면서 다시 예약을 받기 시작했고—전시는 1시간 단위 예약으로 한정된 인원만 들인다—문이 열려 있을 때 서둘러 전시회에 다녀왔다;; 이날은 아침부터 희뿌연 구름이 하늘을 통째로 뒤덮고 있었는데, 전시장을 나설 때에는 이윽고 함박눈이 쏟아지고 있었다.
차이나 아방가르드의 커다란 특징은 체제 비판적 성격을 갖고 있다는 점인데, 이번 전시회에서는 유에민쥔의 예술세계를 ‘냉소적 사실주의(cynical realism)’이라 설명하고 있다. (이는 또한 중국의 큐레이터 리시엔팅(栗憲庭)이 명명한 용어이기도 하다.) 특히 세계사적 분기점이었던 1989년도의 두 사건은 차이나 아방가르드에게 깊은 영향을 준 듯하다. 같은 해에 서방에서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고 몇 년뒤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되었는데, 지구 반대편 동양에서는 천안문 사태라는 전대미문의 정치적 탄압 행위가 벌어졌다. 탈냉전과 더불어서 유에민쥔은 자본과 물질문명이 인간성을 집어삼킨 시대를 풍자하기 위해 껄껄 웃는 얼굴을 캔버스에 그리기 시작한다.
전시회를 보다보면 작가 자신의 얼굴과 화폭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얼굴이 굉장히(!;!;!) 닮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실제로 그림 속 얼굴은 작가의 얼굴을 옮긴 것이다. 그의 작업방식을 보면, 기괴하고 부자연스러운 인물의 동작을 묘사하기 위하여 희한한 포즈를 잡은 뒤 스스로 사진을 찍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여하간 그림 안에는 오로지 한 모양새의 얼굴—박장대소를 하고 있는 건지 근육에 마비가 온 건지 알 수 없는 핑크빛 감도는 낯짝—만이 등장한다.
이처럼 패턴처럼 기계적으로 그려진 웃는 얼굴은 자아에 다가가지도 못하고 타자에게 가까워지지도 못하는, 즉 나르시시즘의 경계에 꼼짝없이 갇혀버린 인간을 나타낸다. 얼굴은 비록 그 누구보다 입이 찢어지도록 웃고 있지만, 사실 무엇 때문에 웃는지 알 수가 없다. 때로 웃을 때가 아닌 상황—물에 빠졌거나 처형을 당하는 장면—에서도 끝모를 웃음을 짓고 있는데, 이는 사실 우리 현대인의 모습이기도 하다. 우리는 왜 웃는지 모르면서 웃어야 할 때가 있고, 웃을 기분이 아닌데도 웃어야 할 때가 있다. 모르는 것도 아는 척 해야 하고, 아는 것도 모르는 척 해야 하는 시대. 사실 이런 식의 ‘깡그리’ 비어버린 감정표현은 오로지 현대인들에게만 나타나는 것이다. 왠지 모르겠지만 행복감을 드러내야만 하고, 불만족을 감추고 주어진 상황을 최대한 합리화한다. 이러한 사고작용의 틈새마다 억지스러운 대화가 끼어들고 외면하고 싶은 장면들이 섞이면서 본말이 전도되기 시작한다.
사실 예술경영 수업을 통해 차이나 아방가르드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는, 중국 미술시장의 규모나 경매에서 이목을 끌었던 몇몇 작품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유에민쥔 작가 개인과 철학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을 둘 수 없었다. 하지만 이번 전시에서 그의 작품들을 집중적으로 접하다보니 그림 속 얼굴들이 단지 바보 같다고 보이지만은 않는다. 두 번째 전시실에 접어들면서부터는 죽음의 이미지를 결부시킨 작품들이 주르륵 나열되어 있는데, 죽음을 있는 그대로 직시해야 한다는 유에민쥔의 생각은 중국의 노장 철학으로부터 감화받았다고 한다.
중국은 지금도 사상과 언론을 엄격하게 검열하고 있고, 홍콩 민주화 운동에서도 볼 수 있듯이 시민의 자유를 통제하는 것 역시 망설이지 않는다. 오히려 노골적일 정도다. 위구르 수용소 문제는 중국에서 인권이 어떻게 다뤄지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라 하겠다. 요지는 유에민쥔이 보기에 오늘날의 중국 사회는 너무나 많은 결함과 패러독스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마오쩌둥은 공산주의와 문화혁명라는 기치 아래 중국사회의 토대를 이루던 다양한 문화 일반을 획일화 했다. 덩샤오핑의 시장 개방 정책은 신자유주의적 사회주의라는 결코 양립할 수 없는 키메라 같은 사회체제를 낳았다.
그래서 아직도 눈에 선한 것은 전시실 한켠에 틀어놓은 영상에서 천안문 사태 당시 시민들을 무감각하게 진압하던 탱크와 군인들의 삼엄한 모습이다. '89년 천안문 사태를 계기로 많은 예술가들이 베이징 근교의 원명원으로 그들의 아지트를 옮겼다고 하는데, 이마저도 정부에 해산 명령에 의해 유에민쥔은 송좡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작품 활동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영상 속 송좡의 풍경을 보면 우리나라의 산간 벽지보다도 허름한 공간이다. 그렇게 모든 아이디어와 정념을 박탈 당한 그에게 유일하게 남아 있던 소재가 자신의 ‘얼굴’이었다고 한다. 이런 배경에서 탄생한 차이나 아방가르드의 작품들을 필두로 중국 미술시장이 전세계 미술시장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도 다시 한 번 확인되듯, 결국 점점 더 맹위를 떨치는 중국정부의 체제 과시 속에서 체제의 취약성을 조롱하고 고발하는 마지막 증인은 이들 차이나 아방가르드가 아닌가 싶다. 그런 점에서 예술은 단지 캔버스 위에 존재할 뿐 아니라, 캔버스 바깥에서 어쩌면 더욱 커다란 의미로 존재하는지 모른다. [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