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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노 피셔 展주제 있는 글/Arte。 2022. 7. 30. 16:40
사진전을 보기 위해 아주 오래간만에 성곡 미술관을 찾았다. 사진전을 보는 것도 2년만의 일이다. 모처럼 찾은 경희궁 뒷길 역시 시간의 흐름을 비껴가지 못하고 제법 크고 작은 공사들이 진행되는 모양이었다. 미술관을 찾은 이날은 그야말로 장마 끝 찜통 더위의 시작을 알리는 날이었다.
이 전시회는 TV의 문화 코너를 보고 알게 되었다. SNS를 하지 않는 나는 TV에서 접하는 자잘한 소식들을 눈여겨 봐두곤 한다. 이 사진전이 좀 더 눈길을 끌었던 건 '동베를린' 출신의 작가라는 점 때문이었다. 파리에서 한국으로의 귀국을 앞두고 있었을 때, 가장 가보고 싶었던 도시가 베를린이었다. 결국 이런저런 사정으로 가보지는 못했지만 독일의 '베를린'은 늘 내게 어떤 종류의 감상을 불어넣는다. 깊은 역사적 상흔이 남아 있으면서도 반 세기만에 재생에 성공한 도시, 파리나 런던만큼 화려하지는 않지만 정치적 상징성이 짙은 도시 따위의.
제1관에서 가장 먼저 반기는 작품들은 50~60년대 전쟁 직후 동독과 서독의 풍경들이다. 이념을 달리 하는 두 세계가 대비되는 면이 있기는 하지만, 사진 속 인물들은 동(東)이든 서(西)든 간에 대부분 멀끔한 모습을 하고 있다. 탄흔으로 가득찬 석조 건물, 한 면이 무너져내린 콘크리트 건물, 사회주의 국가 특유의 획일적인 건물들 사이에서도 독일인 특유의 흐트러지지 않은 모습이 선명하게 보이는 것 같다. 물론 어떤 이는 감회에 젖은 표정을 짓기도 하고, 어떤 이는 공포에 질린 얼굴을 하고 있다. 또 라인강의 기적을 걷던 60~70년대 서베를린에서는 화려한 상점가를 메운 인파 속에 비굴한 표정을 짓는 부랑자의 얼굴도 끼어 있다.
아르노 피셔는 사진을 찍으면서 생기는 실수를 그대로 남기는 방식을 선호했다고 한다. 때로 피사체가 흔들리거나 구도가 묘하게 부정확한 것들도 있지만, 덕분에 셔터가 닫히는 순간이 날 것 그대로 잘 담겨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한 독일 소년이 아이들 틈바구니에서 카메라 렌즈를 올려다보는 장면에서, 아이들의 얼굴은 만국공통으로 어딘가 닮은 점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진무구하면서도 생동하는 얼굴. 그러한 얼굴은 전후의 황폐함 속에서도 결코 얼룩지지 않는다.
흑백사진이라는 점도 좋았다. 브란덴부르크 개선문을 비롯해 독일의 건물들이 흑백사진과 잘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고, 당시 사람들의 표정도 좀 더 운치 있어 보인다.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있다는 점도 좋았다. 지금으로부터 60~70년 된 사진들을 보면서 시간이 많이 흐른 건가 조금 헷갈리기도 했다. 지금의 사회상과 달라진 건 분명한데, 별반 다르지 않은 것들도 분명 보인다. 사람의 표정, 사람과 사람의 시선, 희로애락 같은 것들이. 때로는 시간이라는 것 자체가 처음부터 멈춰 있던 것 같기도 하다. [Das En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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