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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버트 왓슨 展주제 있는 글/Arte。 2022. 12. 22. 11:01
지난 주부터 눈이 오락가락하면서 홀가분히 여행을 떠나기도 어려운 요즘, 2주 남짓 온전히 내게 주어진 자유 시간을 어떻게 써야 좋을지 고민스럽던 차에 우연히 TV의 문화코너에서 알버트 왓슨 전이 소개되고 있는 걸 보았다. 원래 알던 작가는 아니었지만 그가 촬영한 몇몇 사진을 보니 미디어에서 자주 접했던 사진이 많아 전시회를 둘러볼 만하겠다고 생각했다.
전시회에 소개된 그의 작품은 다양했다. 패션잡지 보그의 사진작가로 명성을 쌓은 만큼 일단 프라다, 아르마니, 리바이스 등 유명브랜드를 연출한 사진이 많이 전시되어 있다. 다음으로 유명인사의 사진을 빼놓을 수 없다. 알프레드 히치콕, 스티브 잡스, 잭 니콜슨, 앤디 워홀, 나오미 캠벨 등의 사진이 있는데, 이들 사진들은 작가가 누군지는 몰랐어도 많은 사람들이 얼마든지 알 법한 그의 가장 아이코닉한 사진들이다. 누드 또는 정물, 동물(침팬지 캐시)을 모티브로 한 사진들도 있다. 의외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풍경 사진이었다. 스코틀랜드 출신인 작가는 영국 북부의 척박하고 날카로운 자연 풍경을 담기도 했지만 시로코가 불어오는 모로코의 구릿빛 풍경을 담기도 했다. 그 중에서도 개인적으로는 광활한 황야와 네온 빛깔의 자본주의적 풍경이 대비된 라스베거스 사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오랜만에 한가람 미술관을 찾았는데, 전시의 구성은 좋았지만 전시 규모에 비해 2만 원이라는 입장료는 어쩐지 비싸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시에서 좋았던 점을 또 꼽자면, 알버트 왓슨이 어떤 식으로 사진 작업을 하는지에 대해 텍스트, 미디어 등의 방식으로 다양하게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스티브 잡스에게 할애되었던 한 시간이라는 한정된 시간 안에서 작가가 스티브 잡스에게 어떤 주문을 했는지, 알프레드 히치콕의 요리 인터뷰를 위해 어떤 연출방식을 제안했는지, 또 어떤 방식으로 <골든 보이> 속 꼬마에게 금색 스프레이를 뿌리게 되었는지 뒷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사진에 대한 그의 집념과 기발한 감각을 발견하게 된다. 포토샵을 이용해 참신한 이미지 연출이 가능해지기 시작한 90년대 이전부터 활동한 그였기에, 아날로그 기법으로 다양한 실험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기대를 넘어서는 사진이 나온 것 같기도 하다. 다른 한편으로는 30대를 넘어가는 길목에 활동무대를 미국으로 옮겨 사진작가로서의 입지를 다져간 그의 개인사도 흥미롭다.
올해는 두 편의 사진전을 봤는데 사진은 그림보다는 감상의 부담이 적은 느낌이 있다. 많은 경우 사진의 뛰어난 사실성 때문인 것 같다. 사실 이중노출 기법을 활용한 알버트 왓슨의 몇몇 작품 같은 경우 사진에 회화적 성격이 전혀 없다고 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사진이라는 것 역시 얼마든 연출이 가능하다. 화각과 조도, 대비, 초점 같은 것들은 어디까지나 작가가 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적 효과는 주술처럼 강력해서 보는 사람은 마치 그 순간을 투명하게 바라보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되고, 수전 손택은 그러한 사진의 속성으로 말미암아 미디어로 유통되는 사진들이 잘못된 프레이밍에 쓰일 수 있음을 지적했다. 사진은 시간을 얼마나 명료하고 정직하게 담아낼 수 있는 걸까? 알버트 왓슨이 찍은 인물사진들 속 유명인사들, 그리고 그들의 사소한 눈빛과 입꼬리, 손끝에서 형언할 수 없는 아우라들을 발견한다. 카리스마, 대담함, 발랄함, 우아함 따위의.. 그리고 사진이 단순히 빛만 포착하는 것이 아니라 물질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인간의 내면까지 투영하는 것 같다고 느끼며, 사진이라는 작가의 눈을 통해 내가 피사체라는 존재에 얼마나 가까워질 수 있을지 물음표를 띄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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