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디 워홀이 팝아트의 아이콘이듯, 장 미쉘 바스키아는 예술계에서 천재의 아이콘인 듯하다. 적어도 내 머릿속에서는 그렇다. 아무래도 장 미쉘 바스키아의 작품을 잘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요절한 비운의 천재’라는 수식어를 여기저기서 접했기 때문인 듯하다. 특히나 개념미술의 경우 작품을 차근차근 접해보지 않은 이상, 그 작가의 예술 세계를 ‘안다’고 하기가 쉽지 않다. 근래에 유에민쥔의 전시가 참 좋았어서 또 다른 전시가 있나 찾아보았더니 장 미쉘 바스키아의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한 번 가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부지불식간이었고, 어떤 날짜를 골라 가느냐의 문제만이 남았다. 나름 사람이 적을 법한 날을 골라서 갔는데도 불구하고, 각 전시실에 2~3명이 고작이었던 유에민쥔 전에 비하면 성황리에 열리고 있었다. 장 미쉘 바스키아 전은 지금은 종료일이 더 연장된 것으로 안다.
색깔을 독창적으로 쓰는 화가라고 하면 샤갈을 먼저 떠올리게 되는데, 장 미쉘 바스키아의 그림에서도 그런 느낌을 받았다. 음악으로 치면 레게 느낌이 나는 색채를 과감하게 쓰는 한편, 잿빛이나 인디고 등의 다소 무겁거나 무채색에 가까운 색깔도 적당하게 두른다. 여기에 ‘강한 자아’를 뜻하는 왕관(crown)과 해부학 도감을 보는 듯한 육체—어릴 적 교통사고 경험에서 모티브가 출발한다고 한다—, 또 횡설수설하는 알파벳에 이르기까지 여러 심벌들이 뒤범벅되어 있다. 덧붙여 콜라주, 제록스 기법을 적극 수용하여 작품에 입체감을 부여한다.
그의 작품들을 보다 보면 실로 주체할 수 없었던 그의 열정과 광기, 성공욕이 작품을 뚫고 나오는 것 같다. 그런 그의 삶이 아주 짧게 빛나고 (나와 비슷한 나이에) 끝났기 때문에, 그가 활활 연소(燃燒)할 수 있게 도왔던 주변 인물들에게 오히려 더 관심이 가게 된다. 대안학교와도 같았던 시티 애즈 스쿨(City-As-School)에서 만난 알 디아스, 그는 바스키아와 함께 로워 맨해튼에서 스프레이 페인팅을 시작한다. 바스키아는 ‘SAMO(Same Old Shit)’라는 가상의 아이덴티티와 함께 기성 예술에 대항하고 흑인으로서의 자의식에 눈뜬다. 그러나 예술 시장으로 들어가는 갈림길에서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싶어했던 바스키아와 달리 알 디아스는 ‘익명’으로서의 스트리트 아트에 잔류하기로 결정함으로써 바스키아와 결별한다. (명성과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예술 세계로 나아간 알 디아스에게 오히려 존경심 같은 것을 느꼈다.)
전위 예술의 장(場)이 되었던 더 타임스퀘어 쇼는 바스키아가 일약 스타가 되기에 안성맞춤이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를 모마(MoMA) 전시회에 세워준 디에고 코르테즈나 그에게 흔쾌히 작업공간을 제공한 아트딜러 아니나 노세이 같은 사람이 없었다면, 바스키아는 말 그대로 예술계를 잠시 스쳐지나간 ‘혜성’에 지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일찌감치 바스키아의 열정과 그의 작품이 지닌 가치를 꿰뚫어 본 이들의 혜안이야말로 바스키아를 혜성이 아닌 초신성(supernova)으로 만드는 데 기여한 것이 아닐까 싶다.
스트릿 아트를 통해 기성예술에 저항하고 흑인 세계의 존재감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는 점에서, 마치 그의 작품이 지하에서 기적적으로 불쑥 올라온 것처럼 묘사되는 것은 그의 예술에 대한 곡해의 여지가 있다고 본다. 비록 기존 교육시스템에 순응하지 못한 탓에 집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대안학교와 같은 교육기관에 진학했지만, 그는 아이티 출신의 아버지로부터는 프랑스어의 문화를, 푸에르토리코 출신의 어머니로부터는 스페인어의 문화를 두루 배울 수 있었다. 또한 유색인종이었음에도 아버지는 회계사로서 지역에서 입지를 다진 인물이었고, 어머니는 어린 시절부터 그를 뉴욕의 여러 미술관에 데리고 다녔다. 유년기 바스키아는 교통사고에서 회복하는 동안 어머니가 선물한 <그레이 아나토미>를 열독했고, 그의 작품에 해부학적 모티브가 수시로 차용되는 것이 이때의 기억에서 출발한다는 점은 전시에서 수시로 언급되는 대목이다.
그의 작품은 참 재미있다. 관람객은 차라리 낙서에 가깝다고 느낄 수 있는 작품이지만, 꼼꼼히 뜯어보면 이야기가 있고 그 위에 색깔과 형체가 덧씌워져 있다. 재즈의 거장 찰리 파커, 복싱 영웅 무하마드 알리, 1936년에 열린 베를린 올림픽 앞에서 나치의 게르만 우월주의를 납작하게 만들었던 제시 오언스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품 안에는 흑인의 업적을 기리는 오마주들이 수시로 나타난다. 재미있는 점은 바스키아 자신 또한 강한 나르시시즘과 성공욕의 소유자였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오마주의 반열 안에 은근히 자신을 포함시키려는 시도들이 엿보인다는 것이다. 앞서 이미 왕관에 대한 부분을 언급했지만, 뽀빠이, 배트맨, 신성함을 나타내는 후광(silo)처럼 무적영웅을 연상시키는 심벌들을 과하다 싶을 만큼 빌려오는데, 이는 결국 강렬한 자의식의 발로(發露)라고밖에 볼 수 없을 것 같다. 그의 작품에 아이 랩(eye rap)—눈으로 즐기는 저항적인 시각예술—이라는 별칭을 붙었을 만큼, 그의 작품을 들여다 볼 때에는 자신의 스웨그에 심취하여 제각기 리듬과 가사를 풀어내는 랩 배틀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