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엔나 1900 展주제 있는 글/Arte。 2025. 1. 28. 10:53
live the world 예전에 「세기말 빈」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뭉뚱그려 동유럽 정도로 인식되는 오스트리아라는 나라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거의 전무했던 나에게, 이 책은 이들이 프랑스나 독일, 영국과 비견될 만한 걸출한 철학자와 과학자, 예술가를 배출한 나라라는 인식을 처음으로 심어주었다. 주위에 동유럽 여행간 이야기만 들었지 동유럽을 여행가본 일이 없는 나는, 처음 이 전시회 광고를 발견했을 때 막연한 궁금증이 일기도 했고, 당시에 책에서나 접했던 오스카 코코슈카의 작품을 직접 보고 싶었다.
막상 전시실에 도착하자 예약제로 운영되었음에도 사람이 많아 관람하기에 쾌적한 환경은 아니었기에 처음부터 작품 하나하나를 들여다보기보다는 눈대중으로 작품을 쭉 봤다가 눈에 띄었던 작품들을 다시 한번 천천히 보는 방식으로 전시를 관람했다. 생각하고 왔던 오스카 코코슈카의 작품은 그리 많지 않아 아쉬웠지만, 그래도 마음에 드는 작품이 있었다면 리하르트 게르스틀의 인물화와 에곤 쉴레의 풍경화들이었다.
당초 에곤 쉴레의 인물화는 워낙 알려져 있기 때문에, 작품을 마주했을 때 마침내 실물을 영접했다는 느낌이 가장 크게 들었다. 한편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리하르트 게르스틀의 인물화는 인상주의의 영향을 받은 분리파 화가의 작품이라고는 해도 붓의 흔적이 거침이 없으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예민해 보여서 시선을 잡아끌었다. 에곤 쉴레의 풍경화 역시 새로운 발견이었다. 그 중에서도 나는 <겨울나무>라는 작품을 가장 오랜 시간을 들여 관람했다.
에곤 쉴레의 그림에 드러나는 선(線)은, 자칫 추상화나 초현실주의 작품 속에서처럼 무의미한 선처럼 전락할 듯하다가, 그 첨단에서 살아돌아온 듯한 느낌이 있다. 그 예리한 선은 거친 텍스트마다 고통과 쓸쓸함을 그리고 있고, 사람들이 에곤 쉴레를 좋아하는 데에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본다면 우리는 에곤 쉴레의 작품 속에서 발견하는 공통의 감각이 있다는 것이다.
연초부터 문화생활을 윤택하게 하고 있는 올해. 벌써 구정이 가까워져 오는 걸 보면 시간은 참 빠르다.'주제 있는 글 > Arte。' 카테고리의 다른 글
라울 뒤피(Raoul Dufy) 展 (0) 2023.06.20 알버트 왓슨 展 (2) 2022.12.22 아르노 피셔 展 (0) 2022.07.30 장 미쉘 바스키아© (0) 2021.02.05 유에민쥔, 한 시대를 웃다! 展 (0) 2021.0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