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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독(冒瀆)일상/book 2023. 10. 23. 09:02
예전에 간쑤성 일대를 여행하면서 눈에 담았던 풍경을 떠올리면서 읽기에 좋은 책이었다. 박완서의 글은 언제 읽어도 좋고, 아낌없이 담긴 티베트의 풍경사진은 활자를 읽는 것만큼이나 공들여 한 페이지를 묵시하게 만든다. 이 책은 원래부터 읽어두려고 일찍이 온라인 장바구니에 담아두었던 책인데, 최근 S 누나의 추천을 받아 마침내 결제를 했다. S 누나가 읽고 싶으면 빌려줄 테니 언제든 말하라고 했지만, 늘 그렇듯 내 책 한 권을 소장하는 게 더 좋다. 노령으로 티베트에 여행을 가 고산증세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상태로 여행기를 남긴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 느껴지는데, 그 글이 따뜻하고 다감해서 한 번 더 놀라게 된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모독(冒瀆)'은 그 사전적 의미가 '말이나 행동으로 더럽혀 욕되게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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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내가 나를.. (As if, I have missed myself)주제 있는 글/Théâtre。 2023. 10. 22. 22:31
10월 중순 가을밤의 혜화동은 퍽 추워서 겨울의 문턱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마로니에 공원 옆 빨간 벽돌로 된 아르코 극장은 언제 봐도 고즈넉한 느낌이 있다. 해질녁 플라타너스 가로수들은 이제 유백색 가로등 불빛을 받아 생기 없는 암록색을 띠고 있었다. 거리 곳곳에 설치된 간이 가판대 앞에 앉아 연극 티켓을 파는 사람이 부루퉁한 얼굴로 관객의 발걸음을 기다리고 있다. 낙산으로 접어드는 어두운 골목길에서 혜화동(惠化洞)이라는 한자가 검은색 양각으로 새겨진 한 가게에서 간단히 저녁을 해결했다. 은 '나'라는 존재 안에서 쉼없이 충돌하는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는 연극이다. 소설도 그렇고 영화와 그림작품도 그렇지만 가끔은 클래식한 걸 즐기다가도 아예 아방가르드한 것에 관심이 간다. 흔히들 고전적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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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전선(戰線)주제 있는 글/<Portada> 2023. 10. 20. 13:29
Guerre Israël-Hamas : la bataille diplomatique entre les Etats-Unis et les pays arabes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미국과 아랍국가간의 외교 전쟁 L’engagement pro-israélien à sens unique des Etats-Unis suscite l’incompréhension dans les capitales arabes. 이스라엘에 대한 미국의 일방적 지지가 아랍 주요국들의 몰이해를 부추기고 있다. unique (qui est un seul, n'est pas accompagné par d'autres du même genre.) Par Hélène Sallon(Beyrouth, correspondante), Piotr 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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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慶州), 흐린주제 없는 글/印 2023. 10. 14. 08:08
최근 K의 추천으로 라는 드라마를 봤다. 드라마를 잘 보지 않는 편인데, 는 에피소드당 러닝타임이 20분 남짓이어서 심심풀이로 하나씩 보기에 나쁘지 않았다. 이 드라마는 내가 요새 주말에 짧은 일정으로 국내 이곳저곳을 여행하고 있다고 말하자, K가 비슷한 내용을 그린 드라마가 있으니 한번 보라고 권해준 것이었다. 의 소재는 '딱 하루만 여행 다녀오기'인데, 국내를 가더라도 가급적 1박을 하는 내 여행보다도 더 짧은 일정이다. 경주로 출발하던 날도 그랬는데, 하루종일 아무것도 하기 싫던 날 (그렇다고 집에 콕 박혀 있기도 싫던 날) 이르지도 않은 오전 시간에 간단히 짐꾸러미를 챙기면서 아직까지 경주에서 1박을 할지 말지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전에 본 가 떠오르면서, 당일치기로 여행을 다녀온다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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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상블(Ensemble)일상/music 2023. 10. 10. 00:08
Qu’est-ce que ça veut dire d’être ensemble Si on n’est pas ensemble? Est-ce que ça suffit de rassembler nos souvenirs ? Qu’est-ce que ça veut dire d’être ensemble Si on n’est pas ensemble? Est-ce que ça suffit de s’attendre? Je voudrais partir maintenant Te retrouver Tu me manques tellement Aliocha Schnei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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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친코 II일상/book 2023. 10. 9. 11:51
는 작가의 인터뷰를 담은 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책이다. 는 다큐멘터리를 접하기 전부터 서점 매대에서 눈에 띄는 자리에 진열된 책이었지만, 제목이 지닌 부정적인 어감 때문에 읽기가 꺼려졌다. 내가 아는 그 파칭코라면 과연 그걸 소재로 어떻게 장편 소설을 풀어나가겠느냐는 의구심도 없지 않았다. 재일 한국인에 대한 인식이 너무 피상적인 나머지, 소설의 전개를 그려볼 상상력이 빈곤했음은 두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다큐멘터리 속 카리스마 넘치는 작가의 모습을 보며, 어쩐지 저런 작가의 글이라면 한번 읽어봐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에 등장하는 것만 다섯 세대가 등장하기 때문에 조각 같은 에피소드가 방대한 것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이 책은 제목이 암시하듯이 파친코나 재일 교포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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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처럼주제 없는 글/Miscellaneous 2023. 10. 3. 12:03
개천절까지 이어진 긴 추석 연휴다. 연휴 직전까지 뜨거웠던 낮의 햇살도 10월에 접어들면서부터는 청량한 가을 공기로 차갑게 식었다. 긴 연휴 동안 나는 본가에 머물며, 어릴 때부터 줄곧 살아온 동네를 떠나지 않는 일상을 보냈다. 집을 찾아온 동생 부부와 포켓볼을 치고, 점심을 먹으러 양평에 다녀온 것을 빼곤, 오전에는 카페에서 글을 읽고 오후에는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하는 날들을 보냈다. 그것도 아니면 티비로 아시안 게임을 보는 식이었다. 그것만 해도 하루가 끝날 때쯤이면 꽤나 피곤한 상태가 되었다. 예전 같았으면 이런 연휴를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어떻게든 여행을 다녀왔을 것이다. 하지만 뒤늦게 여행 계획을 세우기에는 금전적으로나 시간적으로 빠듯하기도 했거니와, 그냥 가만히 그리고 조용히 시간을 보내고 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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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친코 I일상/book 2023. 9. 13. 08:27
"어딜 가든 사람들은 썩었어. 형편없는 사람들이지. 아주 나쁜 사람들을 보고 싶어? 평범한 사람을 상상 이상으로 성공시켜놓으면 돼. 뭐든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을 때 그 사람의 본모습이 드러나는 법이거든." -p.74 조선인들이 스스로를 구할 수 있을까? 결코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각자 살 방도를 궁리해야 한다는 것이 조선인들이 마음속에 품은 생각이었다. 가족을 지켜라, 자기 배를 채워라, 정신 바짝 차리고, 지도자들을 믿지 마라. 조선의 민족주의자들이 나라를 되찾지 못한다면, 아이들에게 일본어를 가르쳐 출세하게 해라. 적응해라. 지극히 간단하지 않은가? 조선 독립을 위해 싸우는 애국자들이나 일본 편에 선 재수 없는 조선 놈들이 있는가 하면, 이곳에서나 또 다른 곳에서 그저 먹고살려고 발버둥 치고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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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날주제 없는 글/Miscellaneous 2023. 9. 11. 19:57
지오디 콘서트에 다녀왔다. 콘서트 전날까지도 누구랑 갈지를 정하지 못한 상태였다가, 동생과 엄마를 모시고 콘서트장에 합류했다. 오전에 수업이 있었던 나는 피곤한 상태였지만, 아마 장거리 운전을 해야했던 동생이 더 피곤했을 것이다. 그래도 가족을 대동하고 가길 잘 했다 싶었던 것이, 나나 동생이야 지오디 세대라고는 하지만 지오디를 잘 알 리 없는 엄마도 엄청 좋아하셨다는 점이다. 엄마를 안 모시고 왔으면 어쩔 뻔했나 싶을 정도였다. 푸드트럭에서 곱창과 생맥주를 사들고 잔디밭에 돗자리를 폈다. 입장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늘색으로 된 셔츠나, 바지, 바람막이 등을 하나씩 걸치고 있었다. 공연시각이 되고 거대한 LED 판이 좌우로 갈라지면서 무대가 등장했다. 이번 콘서트는 'ㅇㅁㄷ지오디'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