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book
-
특성없는 남자 II일상/book 2020. 1. 2. 00:15
요새는 책을 읽다 말고 곧잘 꾸벅꾸벅 졸곤 한다. 카페에 앉아 책을 읽다가도 눈꺼풀이 스르르 내려온다. 타고나기를 체력이 좋은 편에 속하지 않는 나는 동생 말마따나 실속도 없어서 크고 작은 계획을 세워놓고선 독서에만 골몰하지만 이마저도 알차지 못한데,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전편에 비해 두 번째 읽는 「특성없는 남자」는 도통 눈에 들어오지가 않았다. 아마 직전에 「정치적 감정」의 논리적인 텍스트를 꾸욱꾸욱 읽다가 소설로 넘어오니 문체가 달라져서 좀 더 뻑뻑하게 읽혔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갈피해둔 곳들을 짚으며 갈무리를 하다보니 소설의 숨은 뜻들을 곱씹어볼 수 있어 다행이다. 역사인식(歷史認識). 인간 이성에 대한 확신을 갖고 새 역사를 열어보이려는 장력(Tension)과 이성에 대한 과신을 꺼림칙하게 여..
-
정치적 감정일상/book 2019. 12. 31. 19:43
'감정'이라는 명사를 '정치적'이라는 형용사가 꾸미고 있는 책의 제목만으로 꼭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정치와 감정은 언뜻 보기에 어울려선 안 될, 오히려 분리시켜 봐야할 개념들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으레 제목만으로 단숨에 시선을 잡아끄는 책들이, 읽는 과정에서는 상당한 시간과 인내를 요한다는 걸 경험적으로 알고 있지만 일단은 책을 집어들었다. 요즘처럼 혐오(嫌惡)와 배제(排除)가 팽배한 우리 사회에서 저자 마사 누스바움은 어떤 정치적 인간을 논할까 하는 궁금증과 함께. 이 책은 계량화된 사회과학적 논의가 쏟아지는 오늘날 독특하게도 귀납적 추리를 통해 서사(敍事)를 이끌어간다. 수치화되지 않은 것들을 불신하는 오늘날의 독자들을 감안한 듯, 저자의 글에는 풍부한 예술작품(시와 오페라, 희극과 비극, 건축물까..
-
햄릿일상/book 2019. 12. 14. 00:22
요새 너무 다기망양(多岐亡羊)하게 독서를 한다고 느껴 찾은 책이다. 만성적인 야근에 시달리면서도—요새는 일상패턴이 정돈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차마 이 얇은 책 한 권은 손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절반 가량은 희극이 가지는 의미를 되새기지도 않고 기계적으로 활자를 '본' 것 같은 느낌마저 들지만 말이다. 몇 주만에 칼퇴를 기대했던 이번 금요일도 여지 없이 계획에 없던 업무들이 쏟아졌고, 업무를 서둘러 마무리한다고 했는데도 지하철역에서 내리니 이미 10시가 되어 있었다. 건조하다 못해 감쪽같이 증발해버릴 것 같은 일상에 어떻게 해서든 숨통을 틔어야 할 것 같았다. 추적추적 비가 오는 날씨에 카페에 들어갔지만 이미 카페인은 충분한 상태였기에 와인을 한잔 주문했다. 은 이미 일전에 읽었던 책이다. 사느냐 죽느냐..
-
뷰티풀 퀘스천일상/book 2019. 12. 11. 01:18
사놓은지가 좀 된 책이다. 가끔은 인문학만 들여다보는 것 같아 과학서적 코너를 서성인다. 과학에도 여러 주제가 있지만, 요 근래에는 뇌인지학이나 우주와 관련된 서적이 많이 깔려 있는 듯하다. 이라는 꽤 거창한 이름을 달고 있는 이 책은, 처음에는 생물학과 화학, 물리학을 총망라하는 다양한 질문이 다뤄질 것으로 예상했으나, 의외로 단출한 질문 하나를 출발점으로 삼는다. 이 세계는 아름다운가? 세상의 아름다움을 규명(糾明)하기 위한 노력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꾸준히 이루어져 왔고, 오늘날에는 뉴턴이 초석을 닦아 놓은 고전물리학 위에 아인슈타인 이래로 발달한 양자역학이 꼭 들어맞게끔 포개어졌다. 책을 읽으면서 기시감이 들었던 것은 아마도 주제나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카를로 로벨리의와 매우 흡사하기 때문이다..
-
인도양에서 본 세계사일상/book 2019. 11. 29. 00:44
처음 서점에서 이 책을 발견했을 때는 출판사 에서 나온 신간인 줄 알았다. 표지에 실린 삽화나 겉면의 재질이 꼭 책 같은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다. 시선을 잡아끈 또 하나의 요인은 '인도양'이라는 키워드인데, 해양의 역사를 다루는 책은 더러 있지만 태평양, 대서양도 아닌 인도양을 다루는 책은 정말 찾아보기 힘들다. 게다가 저자 산지브 산얄은 역사도 아닌 경제학을 공부한 사람이고, 옥스퍼드에서 수학(修學)한 사람이기는 하지만 현재 인도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인도양이라는 글로벌한 지역을 묶어내기에는 다소 편협한 시각을 갖고 있을 수 있겠다는 우려도 있었다. 어쨌든 이 진분홍 색깔의 책을 집어들고 구매를 결정하는 데 몇 초도 걸리지 않았다. 다소 예상했던 대로 인도에 대해 자부심 섞인 저자의 관점..
-
여자의 일생(Une vie)일상/book 2019. 11. 25. 22:14
연남동에는 번화가로부터 아주 살짝 빗겨난 골목에 이라는 카페가 있다. 하루는 일이 끝나고 머리도 식힐겸 홍대 일대를 정처없이 걸어다니며 군상(群像)을 바라보다—나의 주특기다=_=—바로 이 카페에 들어갔다. 커피 메뉴보다도 밀크티가 간판인 집이어서 유리용기에 담긴 밀크티 한 잔을 먹었었는데, 정작 이 카페에서 읽었던 책이 카프카의 단편집이었다. 이 카페는 어쩌다 모파상을 모티브로 이름을 짓게 되었을까 떠올려보다가 내가 모파상이라는 작가의 이름을 들어보기만 했지 작품을 읽어본 적은 없다는 생각에 미쳤다. ...그리고 그날 집으로 돌아가자마자 곧장 인터넷으로 이 책을 주문했다!! 막상 이 책을 집어들기까지는 또 시간이 걸렸지만, 막상 손에 쥐어지고 나니 소설답게 술술 읽힌다. 원제 《Une vie》. 삶 또는..
-
바다의 늑대 : 바이킹의 역사일상/book 2019. 11. 19. 22:53
역사책이라고 하면 개인적으로 대학교 교양수업에서 쓸 법한 교과서적인 책을 찾아 읽어보는 편이라, 내 방 구석에서 이 책을 발견했을 때 내가 이런 책도 샀었나? 하고 의문을 가졌던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여하간 북유럽 역사와 관련해서는 딱 읽어보고 싶다는 책이 없었다가 (북유럽 신화에 관한 책이나 북유럽식 행복추구에 대한 책은 많다) 가볍게 읽을 겸 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기대 이상으로 재미 있게 읽었다. 유럽의 중세에는 무슨 종족이 그리도 많이 등장하는지 모르겠는데 (제대로 된 국가도 형성하지 못한 고트족, 반달족, 켈트족 등등등) 지도도 얼마나 복잡한지 모른다. 정략적인 혼인도 굉장히 많기 때문에 유럽국가에 사는 청소년들은 자국의 역사를 배울 때 어떤 생각이 들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바이킹족도 ..
-
특성 없는 남자 I일상/book 2019. 11. 18. 23:08
공교롭게도 같은 이름을 지닌 로베르토 볼라뇨(Roberto Bolaño)의 작품에서 발견한 이름, 로베르토 무질(Robert Musil). 언뜻 라는 책 제목만 봐서는 로맨스 소설 같기도 하다. 그래서 회사에서 마련한 어느 강좌에서 강사가 책 읽는 나를 발견하고 어떤 책인지 호기심을 보였을 때 그리 민망했었나보다. 이라는 독일어 제목으로는 꽤 철학적으로도 들리는데 말이다. 국내에서는 독일문학에 비해 (정작 독일어를 공유하는) 오스트리아 문학에 대해 매우 빈약하게 알려진 것이 사실이고—헨릭 시엔키에비츠나 밀란 쿤데라 같은 여타 동유럽 국가들의 문학과 비교해도 현저히 소개가 적다—로베르트 무질이라는 그리 낯익은 작가가 아니다. 사실 나 역시 로베르토 볼라뇨가 자신의 소설 속에서 넌지시 소개하고 넘겼던 이 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