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
사무엘상・하일상/book 2021. 12. 16. 12:17
사무엘상・하 편에는 항상 비유로만 듣던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 등장한다. 성경 특성상 묘사는 많지 않고 서사가 빨리 전개되는 편인데,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뜨리는 장면은 정말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다. (뭔가 대단히 극적이고 처절한 전투가 벌어질 것으로 생각했다.) '다윗과 골리앗'이라는 표현이 매우 흔히 쓰이는 것에 비해, 이 에피소드가 아주 짤막하다는 것에 조금 놀라움을 느끼면서도, 이래서 원전을 자꾸 찾아봐야 하겠구나 하는 생각도 동시에 든다. (정확히 말하면 도 원전은 아니다.) 단순히 다른 사람이 말해서 부분적으로 알게 되는 것과 긴 맥락 안에서 내가 직접 내용을 이해하는 것은 아무래도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다윗이 다윗성에서 머무르며 오랜 세월 예루살렘을 다스렸다는 대목을 읽으면서, 예루살렘..
-
이별 없는 세대일상/book 2021. 12. 15. 13:25
제목을 봤을 때는 현대적인 느낌이 들어서 2021년에 쓰인 소설일 것 같은데, 실제로는 전후 독일에서 쓰인 소설이다. 볼프강 보르헤르트라는 작가도 전혀 몰랐던 작가였는데, 제목(Generation ohne Abschied)이 주는 독특한 인상 때문에 일단은 한 번 읽어보기로 했다. 그리고 아주 마음에 드는 글이었다. 26세라는 짧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한 문장 한 문장마다 삶에 대한 깊은 관조가 묻어난다. 단연 보르헤르트의 글에서 중심을 이루는 것으로는 전쟁에 관한 것들이 많이 보인다. 그 자신이 2차 세계대전에 징집되었었고, 자해로 인해 감옥에 수감되기까지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21년도의 내가 그의 글에 깊이 공감할 수 있는 것은, 전쟁이라는 비극적인 상황 때문은 아니..
-
인생사용법(La vie mode d'emploi)일상/book 2021. 12. 13. 02:26
세 번째 조르주 페렉의 소설이다. 『사물들』, 『어느 미술애호가의 방』, 이어서 『인생사용법』. 배송된 책을 받아보고 나서야 이 책이 꽤나 두껍다는 것을 알았다. 앞의 두 책은 단편소설이었기 때문에 『인생사용법』도 그 정도 길이겠거니 하고 생각했었다. 책이 생각보다 커서 주문서를 다시 확인해보니 두께만큼 가격이 제법 나간다. 여러 책들을 함께 주문하다보니 가격이며 규격정보를 제대로 체크하지 않았던 것이다. 어쨌든 읽고 싶었던 책이었기 때문에 이런 문제들은 부차적이기는 해도, 이 두께에 내용이 매우 난해하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책의 말미에 작품 해설에서 언급되기는 하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에피소드는 매우 지엽적인 사물들이나 미시적인 대상들에 천착하고 있다. 가령 매 에피소드의 서두마다 빠지..
-
깊은 밤을 날아서일상/music 2021. 12. 12. 01:06
Would you know my name? If I saw you in heaven Would it be the same? If I saw you in heaven I must be strong And carry on 'Cause I know I don't belong Here in heaven Would you hold my hand? If I saw you in heaven Would you help me stand? If I saw you in heaven I'll find my way Through night and day 'Cause I know I just can't stay Here in heaven Time can bring you down Time can bend your knees Ti..
-
불(炎)과 술(酒)일상/film 2021. 12. 4. 21:08
은 21년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이다. 작년에는 코로나로 인해 칸 영화제가 개최되지 않았고, 재작년 봉준호 감독의 이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게 마지막이다보니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을 법도 하다. 이번 쥘리아 뒤쿠르노의 황금종려상 수상이 또 하나 의미 있는 점은 여성 감독으로서는 28년만에 이루어진 수상이라는 점이다. 의 이번 수상이 이례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점이 없지 않지만(사실 이변이라는 말은 생각보다 흔하다), 꼭 이번 수상이 아니더라도 뒤쿠르노의 첫 장편 작품을 이전에 봤던지라 감독의 독창성을 그다지 의심하지는 않았다. 이 뒤쿠르노의 두 번째 장편영화로, 그녀의 첫 장편 작품은 '16년도 발표된 다. 때문에 갓 두 번째 작품을 만들어낸 쥘리아 뒤쿠르노가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것은 ..
-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일상/book 2021. 11. 29. 10:52
오늘 새벽 운동을 하다가 오늘이 11월 29일인 것을 알고 화들짝 놀랐다. 사람들이 인삿말로 다음달에 보자고 하는데 잠깐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했다. (왜 벌써 다음달이지?!!) 시간은 너무 빠르게 흐르고 바쁜 건 바쁜 거지만 11월이 다 지나가기 전에 북리뷰를 하나 더 남기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소설은 모처럼(?)만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다. 현대 일본문학이 밍밍하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허무주의가 싫다 싫다 하면서도 무라카미의 글을 참 많이 읽었던 것 같다. 이참에 궁금해져서 리스트업을 해보자면, 작품이 발표된 순서대로 『코끼리의 소멸 단편집』, 『노르웨이의 숲』, 『어둠의 저편』, 『1Q84』,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기사단장 죽이기』, 그리고 이번 ..
-
두 편의 틸다 스윈튼일상/film 2021. 11. 27. 21:40
너무 출연진이 화려해서 절로 시선이 갔던 영화다. 한번 볼만하겠다 생각은 했지만, 막상 영화에서 시선을 잡아 끈 건 화면을 가득 채운 아기자기한 미장센들이었는데 영화를 다 본 뒤에야 이 영화의 감독이 의 웨스 앤더슨이라는 것을 알았다. (영화 선택에 정말 대중이 없다=_=) 또 가장 먼저 관심을 끌었던 건 영화에 등장하는 가상 도시 이름이다. 엉뉘 쉬르 블라제(Ennui-sur-blasé). 둔중함(blasé) 위에 지루함(l'ennui)이라니 어떤 이야기가 전개될지 더 궁금해진다. 영화는 마지막 간행물에 실릴 네 개의 기사와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다. 그 중 첫 번째인 세즈락(오웬 윌슨)의 자전거 도시 탐방기를 보면, 엉뉘 쉬르 블라제라는 공간이 세기말적으로 묘사되기 때문에 이 가상의 도시라는 곳이 아마..
-
이미지의 삶과 죽음일상/book 2021. 11. 20. 11:52
이번 달 들어서 읽은 두 번째 책이다. 번역도 잘된 책인데 처음 4분의 1정도를 읽고 그만 내려놓을까도 생각했다. 철학적으로 사유하는 글에 프랑스사람들은 비유나 메타포를 많이 집어넣어서 현기증(?)을 느끼며 정신을 바짝 차리고 읽어야 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니케아 공의회를 통해 서구 가톨릭이 동쪽의 비잔티움 문화권보다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수용하게 된 이야기까지는 이해하기가 그리 어렵지는 않다. 사실 이미지를 바라보는 시선을 기준으로 문화권을 나눌 생각을 못해봤기 때문에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이기도 했다. 비잔티움 세계 너머 유럽 기준으로 더 동쪽으로 가면, 그러니까 이슬람 문명에서는 마호메트에 대한 소묘나 조각이 엄격히 금지된다.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그래서 회화보다는 캘리그라피나 모자이크가 발달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