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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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은 사랑을 싣고일상/film 2020. 12. 5. 01:39
11월에 영화 한 편을 못 봤다. 날씨가 쌀쌀해지니 , , 같은 잔잔해 보이는 프랑스 영화들을 봐야지 생각만 하다가, 스크린에서 영화가 내릴 때까지 차일피일한 사이 한 달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하루는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시험을 보고 누워서 뻗어 있는데 문득 영화가 보고 싶었다. 그래서 저녁도 아니고 점심도 아닌 식사를 한 뒤 본 것이 . 제목이 참 마음에 들었다. 영화는 조지아를 배경으로 하는데, 영화 제목에서 말하는 ‘춤’은 바로 조지아의 전통무용이다. 조지아라는 나라도 익숙하지가 않은데 조지아의 전통무용은 더욱 익숙할 리가 없지만, 매우 절도 있고 군사적인 안무는 대번에 보는 이를 사로잡는다. 이 전통무용은 한 치의 타협도 없이 엄격하게 명맥을 이어나가야 하는 것이고, 때문에 이 ‘전통’ 춤은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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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쪼가리 자작일상/book 2020. 11. 29. 00:51
짧고 읽기 어렵지 않고 동화 같은 책이다. 직전에 읽었던 이탈로 칼비노의 처럼 소설의 관찰자 시점으로 꼬마가 등장한다. 소설은 변증법적인 구조를 취하고 있는데, 선과 악 각각은 홀로는 완전한 의미를 갖지 못하고 함께 있을 때라야 의미가 온전하다는 것이다. 여기서는 악한 메다르도 자작[子爵]과 선한 메다르도 자작을 대조적으로 보여주고 있지만, 꼭 선악이 아니더라도 이렇게 한 쌍을 이루는 모든 개념—음양, 좌우, 피아—에 의 세계관을 적용할 수 있을 것 같다. 많은 도그마(Dogma)는 어떠한 차이나 반론도 허용하지 않는데, 이탈로 칼비노는 이러한 교조주의적 태도가 우리의 삶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따라서 선과 악 둘 모두를 긍정하는 팔메다, 세바스티아나 유모가 이탈로 칼비노가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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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사상과 아랍 문명일상/book 2020. 11. 28. 13:02
영미권 문화는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나도 모르게 접하는 경우가 많아서 혼자서 시간을 보낼 때는 다른 문화권에 관한 글들을 읽는 것을 좋아한다. 보통 대륙유럽—그 가운데에서도 프랑스와 독일—의 문화에 관심이 많고, 접하기 쉽지는 않지만 중동 문화에도 관심이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인도를 여행했던 것도 조금이라도 덜 알려진 이들 지역들을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중동국가들은 전쟁과 치안, 이란의 경우 국제적인 제재 조치로 인해 여행에 여러 제약이 따른다) 중동과 이슬람, 아랍 각각의 개념에 대해 한 번 소개한 적은 있지만(유진 로건의 ) 어쨌든 쉽게 혼용되어 쓰이기 쉬운 이 지리적 공간, 종교 공동체, 문화권에 각별히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또 하나 더 있다. ‘-포비아(-phobia)’. 다른 말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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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집으로 가는 오솔길일상/book 2020. 11. 25. 17:57
해마다 전집을 하나 독파하고 원서로 된 책도 한 권쯤은 읽었는데, 원서는 한 권 읽었지만(무라타 사야카의 ), 12월을 앞둔 아직까지 전집은 한 권도 집어들지를 못했다. 이탈로 칼비노의 전집은 사실 초여름쯤 구입했으니 사놓은지는 오래되었는데, 다른 책들에 손이 먼저 가다보니 책장 한켠에서 가지런히 새 책의 깔끔한 모습만 뽐내고 있었다. 여담으로 전집의 모든 책 표지들이 매우 다채롭다. 사실 이 전집을 구입할 때 이탈로 칼비노라는 작가의 작품을 한 번도 접해본 적이 없었고, 막연하게 평소 좋아하던 작가 로베르토 볼라뇨와 같은 작품세계를 접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충동적인 구매를 했었다. 근래에 사놓고 읽지 않은 책을 하나둘 읽기 시작하면서 마침내 이탈로 칼비노의 전집에 손이 갔다. 동화 같은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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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이기는 독서일상/book 2020. 11. 22. 23:39
내가 호주 사람의 글을 읽은 적이 있었던가 싶다. 클라이브 제임스는 거의 평생 동안 영국에서 살기는 했지만, 고향인 호주에 대해 깊은 애착을 갖고 있고 근래에 들어 조금씩 명성을 넓혀 나가고 있는 호주 작가들을 이 글을 통해 소개하기도 한다. 불치병을 선고받고 죽음을 예감하면서 작가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그렇다고 하기에는 유머러스하고 관조적인 글들이 많아서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스를 수 없는 시간 안에서 탐독하고 의미를 곱씹고, 더 나아가 읽는 이가 어렵지 않고 유쾌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글을 쓰는 일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을 것 같다. 아쉬운 부분(?)이라면 그가 언급한 책들 가운데 올리비아 매닝의 소설에 호기심이 많이 갔는데, 아직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소개된 책은 없다는 점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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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한 편, 역사 한 편일상/book 2020. 11. 20. 23:29
장 폴 사르트르는 철학가이기도 하지만 여러 문학작품을 남기기도 했는데, 그의 실존주의 철학을 접하기에 앞서 어떤 책을 읽으면 좋을지 망설여졌다. 사실 사르트르의 작품 가운데 대표작이 뭔지도 잘 몰랐고, 어떤 책부터 시작해야 그의 세계관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상태였다. 막연히 그의 작품을 읽어봐야지 하고 생각하던 중, 라는 다소 자극적인 제목의 소설이 눈에 들어왔다. 로캉탱이라는 한 남성이 관찰하는 일상을 그린 이 글은 흔히 말하는 의식의 흐름에 따라 주인공의 이야기를 전달한다. 달리 말하면 주인공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종잡을 수 없고,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단어들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막연하기도 하다. 바닷가에서 집어올린 조약돌 하나가 주인공 자신에게 구토감을 일으킨다는 소설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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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왕국 프로이센일상/book 2020. 11. 19. 19:12
이 책을 다 읽기는 읽을 수 있으려나 싶었는데, 꾸준히 읽다보니 어떻게 다 읽기는 읽었다. 책에 대한 감상은 와 함께 이후에 하는 걸로..!!:D ......한 저명한 역사가는 나치즘은 우연한 사건이 아니라 “[프로이센] 만성 질환의 급성 증상이다”고 주장했다. 오스트리아 사람인 히틀러가 사고방식상으로는 “선택된 프로이센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런 견해를 뒷받침하듯 독일 역사는 근대에 들어와 비교적 자유롭고 안정적인 정치 풍토의 ‘정상적’인 (즉 영국이나 미국이나 서유럽 같은) 노선으로 나아가는 데 실패했다. 전통적인 엘리트 계층과 정치 세력이 프랑스나 영국, 네덜란드에서는 ‘부르주아 혁명’으로 무너진 데 비해 독일에서는 이런 혁명이 전혀 성공을 거두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대신 독일은 ‘특수노선’(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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