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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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토일상/book 2020. 10. 31. 18:58
그 무엇이 나에게 일어났다. 더 이상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것은 늘 있는 어떤 확신이라든지 자명한 일처럼 일어난 것이 아니라, 마치 병에 걸리듯이 닥쳐왔다. 그것은 조금씩 음흉하게 자리를 잡아버렸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나 자신이 좀 괴이하고 어색하다는 느낌을 가졌다. 그뿐이다. 한번 자리를 잡더니 그것은 꼼짝도 하지 않고 잠자코 있었다. 그래서 내가 아무렇지도 않고 헛놀란 것이라고 자신을 타이를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그것이 또 꽃잎을 열었다.—p. 15 무릇 물체들, 그것들이 사람을 ‘만져‘서는 안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살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것을 사용하고, 그것을 정리하고, 그 틈에서 살고 있다. 그것들은 유용하다뿐 그 이상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데 그것들은 나를 만지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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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편의 중국영화일상/film 2020. 10. 26. 00:53
알아차릴 정도로 감정에 호소하는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이 영화는 그런 면이 없지 않지만 관람한 뒤 왓챠에 고민없이 5점짜리 영화로 저장해 두었다. . 떨어진 잎은 뿌리로 되돌아간다, 죽어서 태어난 곳으로 되돌아간다는 뜻이다. 주인공은 함께 일하던 동료가 죽자, 그를 가족에게 바래다 주기 위해 충칭으로 향한다. 충칭으로 향하는 긴 여로에서 온갖 희로애락을 겪으면서도 주인공(자오번산)은 천진한 웃음을 잃지 않는다. 그런 그에게서 삶을 긍정하는 모습을 읽어낼 수도 있는 반면, 보다 무미건조하게 말하자면 중국 농민공들의 고된 현실을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중국 농민공들의 고달픈 삶과 애환은 뒤이어 보는 지아장커의 에도 잘 담겨 있다. 영화에 자세히 언급되지는 않지만 주인공과 그의 동료는 농촌에서 도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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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umn leaves일상/music 2020. 10. 23. 23:55
한동안 69년에 열렸던 우드스탁 페스티벌의 실황을 찾아보면서, 음원 스트리밍 리스트에 당시 참여했던 가수들의 음악을 꽉꽉 채워 들었다. 어릴 적 강원도를 여행할 때마다 차 안에서 가벼운 멀미를 느끼며 들었던 곡―조안 바에즈(Joan Baez)의 ―도 끼어 있어서 잠시 옛 생각에 잠겼다. 찾아본 음악 중에는 지미 헨드릭스를 연결고리로 검색했던 기타리스트들의 곡도 섞여 있는데, 사실 우드스탁 페스티벌과는 무관한 이 곡들이 내 관심을 사로잡았다. 다들 이름으로만 접했던 가수들이다. 에릭 클랩튼, 데미 무어, 레드 제플린. 특히 에릭 클랩튼의 곡들을 무한 반복으로 듣던 중 가장 마음을 움직였던 곡이 다. Autumn Leaves -Eric ClaptonThe falling leaves, drift by my 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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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편의 리처드 링클레이터일상/film 2020. 10. 16. 01:50
It’s for survival. You need to be prepared for novel experiences because often they signal danger. If you live in a jungle full of fragrant flowers, you have to stop being so overwhelmed by the lovely smell because otherwise you couldn’t smell a predator. That’s why your brain is considered a discounting mechanism. It’s literally a matter of survival. Something unexpected has just come up. Jus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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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와 시간의 놀이터일상/film 2020. 10. 8. 00:21
"What's happened happened. Which is an expression of faith in the mechanics of the world. It's not an excuse to do nothing." "It's the bomb that didn't go off. The danger no one knew was real. That's the bomb with the real power to change the world." 을 본 지도 한 달 가까이 되었다. 영화 볼 생각을 전혀 못하고 있다가 하루는 공부를 하던 중 머리를 식힐 겸 영화를 보았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작품이라는 사실보다는, 우리말로 ‘섭리’, ‘기준’ 정도의 뜻을 갖고 있는 ‘테넷’이라는 단어에 더 호기심을 느꼈던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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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지대일상/book 2020. 9. 27. 23:53
w/Dugo Sodo 이런 책을 읽을 때는 잠시 삶의 경계에 머물렀다 나온 느낌이 든다. 우리가 흔히 ‘천재’라고 하는 사람들, 예를 들어 피카소나 아인슈타인 같은 사람들은 모두가 천재라고 하니 천재인가보다 하지만, 내가 그 천재성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큐비즘은 분명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지만 나의 취향은 아니고, 오히려 큐비즘 이전 피카소의 작품을 좋아한다. 마찬가지로 시간과 공간 개념이 상대적이라는 것은 언뜻 심오하다고 느끼지만, 일상에서는 뉴턴의 고전물리학만으로도 충분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문학에서는 작가의 천재성을 곧바로 느낄 때가 많다. 어떤 작가들은 내 삶의 일부분을 부지불식간에 짚어낸다. 줌파 라히리의 작품이 그렇다. 이런 작가들은 삶의 ‘이면(裏面)’을 어디까지 들어가 보았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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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느낌 그대로일상/music 2020. 9. 18. 12:06
# 요요마 , 'Bach : Suite for solo cello no.1 in G major' 'Bach : Cello suite no.3 in C major' 'Bach : Herz und Mund und Tat und Leben BVW.147' # 이소라 '처음 느낌 그대로' 남다른 길을 가는 내게 넌 아무 말 하지 않았지 기다림에 지쳐가는 것 다 알고 있어 아직 더 가야 하는 내게 너 기대할 수도 없겠지 그 마음이 식어가는 것 난 너무 두려워 어제 널 보았을 때 눈 돌리던 날 잊어줘 내가 사랑하면 사랑한단 말 대신 차갑게 대하는 걸 알잖아 오늘 널 멀리하며 혼자 있는 날 믿어줘 내가 차마 네게 할 수 없는 말 그건 사랑해 처음 느낌 그대로 시원한 커피를 마셔야할지 따듯한 커피를 마셔야 할지 망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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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멸(Il disperezzo)일상/book 2020. 9. 13. 23:35
『영화란 무엇인가』를 읽는 동안 작가 알베르토 모라비아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읽은 『경멸』이라는 책은 누벨바그의 거장인 장 뤽 고다르에 의해 영화화된 글이기도 하다. 이 책을 덮고 나서 떠오른 말,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경멸’이라는 테마로 인간 심리를 입체적으로 파헤친 이 글은 사랑하는 여자를 그리는 한 남자의 이야기인 동시에 고전 『오디세이』에 대한 다채로운 분석이기도 하다. 어느날 남편 리카르도를 경멸하게 된 아내 에밀리아와 그런 에밀리아의 마음을 되돌려보려는 리카르도의 이야기가 『경멸』의 뼈대를 이룬다. 그리고 여기에 세속적 인물인 영화제작자 바티스타와 우울한 독일인 감독 레인골드가 합류하면서 『오디세이』 속 율리시스라는 인물이 여러 각도에서 조명된다. 분명 어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