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베르토 볼라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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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66-V일상/book 2019. 9. 5. 00:03
작가가 신(神)과 같은 존재일 리 없지만, 또한 소설이라는 것 역시 인간의 손에서 나온 것이기에 필연적으로 불멸(不滅)의 존재는 아니지만, 로베르토 볼라뇨라는 사람의 작품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악의 본질을 깊이 파고들겠다는 작가의 야심찬 구상은 물론 결국 실패로 돌아간다.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누구라도 악의 심연을 낱낱이 밝혀낼 수는 없다. 다만 악의 성질을 얼마나 가까이서 규명(糾明)하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때문에 첫 번째 권부터 아르킴볼디라는 (우스꽝스러운 이름을 가진) 묘령의 작가를 등장시켜, 이 세상의 악(惡), 그리고 악의 우스꽝스러움, 악의 현시(現示), 악의 편재(偏在), 악의 순수성에 대해 종횡무진하며 글을 전개해 나가는 로베르토 볼라뇨의 발상은 정말이지 감탄스럽기까지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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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66-IV일상/book 2019. 8. 7. 23:35
산타테레사에서 발생하는 끊임없는 연쇄살인과 이 뒤를 쫓는 형사, 후안 데 디오스 마르티네스 그리고 그와 어색한 연인(戀人) 관계를 유지하는 엘비라 캄포스 박사. 마킬라도라 공장에서 여성을 표적으로 하는 의문의 살인 사건은 무엇으로 설명될 것인가, 이에 유력한 용의자료 부상한 하스라는 독일계 미국인. 문화부 기자였던 세르히오는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살인의 행진에 점점 휘말려 드는데.. 내가 보기에 최악의 공포증은 만사 공포증, 그러니까 모든 것을 두려워하는 것과 공포 공포증, 즉 자신의 공포증을 두려워하는 공포증이에요. 두 공포증 중 하나를 겪어야만 한다면 뭘 선택하겠어요? 공포 공포증이지요. 후안 데 디오스 마르티네스가 대답했다. 잘 생각하세요. 그건 결정적인 약점이 있어요. 원장이 말했다. 모든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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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66-III일상/book 2019. 7. 4. 23:24
멕시코에서 열린 미국 선수와 멕시코 선수의 권투 대회를 취재하기 위해 파견나간 페이트라는 미국 흑인 기자가 멕시코에서 겪는 이야기. 아말피타노 교수의 제자 로사를 우연히 만나면서 멕시코에서 여성이 납치·실종되는 일련의 미스테리한 사건들에 연루된 것으로 추정된 남성과 조우하게 되는데.. 에 관하여, 그는 사람들이 수많은 종류의 별을 알거나, 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그는 밤에 볼 수 있는 별에 관해 말했다. 여러분이 80번 도로를 따라 디모인에서 링컨으로 운전을 하는데 차가 고장 납니다. 그리 심각한 고장은 아닙니다. 기름 부족이거나 라디에이터의 문제거나 타이어 펑크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차에서 내려 트렁크에서 잭과 스페어타이어를 꺼내 바퀴를 깔아 끼웁니다. 많이 잡아 봐야 반 시간이 소요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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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66-II일상/book 2019. 6. 26. 23:06
로베르토 볼라뇨의 글에 빠져들기까지는 약간의 인내가 필요하다. 그의 필체는 대담하고 다양한 테마를 종횡무진하기 때문이다. 좀 더 의 컨셉이 느껴지는 두 번째 글은 아말피타노라는 철학자의 사적인 이야기와 칠레 정치에 대한 생각을 담고 있다. 한편 이런 발상 혹은 이런 느낌, 또는 이런 종작없는 생각들은 나름대로 만족스러운 측면을 지녔다. 그것들은 타인의 고통을 자기 자신의 기억으로 만들어 주었다. 길고 오래가면서 결국은 승리하는 고통을 인간적이고 짧은 시간 동안만 지속되며 항상 교묘하게 빠져나가는 개인의 기억으로 만들었다. 그것들은 시작도 끝도 없으며 종잡을 수 없는 아우성을, 그러니까 부정과 학대로 점철된 이야기를 항상 자살할 가능성이 있는 산뜻하게 구성된 이야기로 만들었다. 그리고 비록 자유가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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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66-I일상/book 2019. 6. 22. 23:25
로베르토 볼라뇨 전집 장만+_+Good LUCK~ 어느 날 나는 관리자 중 한 사람과 만났지요. 난 그런 바보 같은 머그잔을 만드는 게 지겹다고 말했어요. 그 관리자는 좋은 사람이었어요. 이름이 앤디였지요. 항상 노동자들과 대화하려고 노력하던 사람이었지요. 그는 내게 우리가 전에 만들던 머그잔을 만들고 싶냐고 물었어요. 난 바로 그거라고 대답했지요. 진심으로 말하는 거예요, 딕? 그는 물었어요. 난 정말로 진지하게 말하는 거라고 대답했어요. 그러자 새로운 머그잔 때문에 더 일을 많이 해야 하나요? 관리자는 물었어요. 난 전혀 그렇지 않다고, 일은 동일하다고, 그러나 전에는 머그잔들이 내게 해를 끼치지 않았지만 지금의 컬러 머그잔들은 내게 상처를 준다고 말했어요. 그게 무슨 말이죠? 앤디가 다시 물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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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스러운 탐정들일상/book 2016. 12. 28. 01:31
비평은 한동안 작품과 동행한다. 이어 비평은 사라지고 작품과 동행하는 이들은 독자이다. 그 여행은 길 수도 있고 짧을 수도 있다. 이윽고 독자들은 하나, 둘 죽고 작품만 홀로 간다. 물론 다른 비평과 다른 독자들이 점차 그 항해에 동참하게 되지만, 이윽고 비평이 다시 죽고 독자들이 다시 죽는다. 그리고 작품은 그 유해를 딛고 고독을 향해 여행을 계속한다. 작품에 다가가는 것, 작품의 항로를 따라가는 항해는 죽음의 확실한 신호이다. 하지만 다른 비평과 다른 독자들이 쉼 없이 집요하게 작품에 다가간다. 그리고 세월과 속도가 그들을 집어삼킨다. 마침내 작품은 광막한 공간을 어쩔 도리 없이 홀로 여행한다. 그리고 어느 날 작품도 죽는다. 태양과 대지가, 또 태양계와 은하계와 인간의 가장 내밀한 기억, 즉 만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