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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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음에 관하여일상/film 2022. 1. 3. 21:59
31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이 영화는 북유럽 특유의 창백하고 차분한 이미지를 담고 있다. 말끔하게 표백된 영상 안에서 우울한 군상들의 삽화(vignette)가 하나의 커다란 스케치를 만들어 나간다. 신앙심을 잃은 사제, 옛 친구에게 미운털이 박힌 한 남자, 패전하고 쫓겨나는 군인들과 폐허가 된 도시, 자신의 사랑을 알아주지 않는 여자로 인해 앙심을 품은 남자.. 영화는 루틴같은 비애와 고통이 우리의 삶을 끝없이(endlessly) 수놓고 있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일까. 영화 속 장면장면들은 마음을 무겁게 한다. 지루한 느낌도 있다. 영화에 결여된 것은 단연코 웃음이다. 영화에는 웃는 얼굴을 찾아볼 수 없다. 『장미의 이름』에서 엄격히 웃음을 금했던 호르헤 수도사의 철학이 떠오른다. 남자의 품에 안겨 하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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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편의 북유럽 영화일상/film 2020. 4. 17. 21:49
"What if you go there and discover there is no God?" 북유럽 영화로 묶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지만, 설국을 배경으로 한다는 점에서 북유럽 영화로 묶어보았다. 실제로 중부 유럽이라는 것 자체가 지리적으로 경계가 모호하기도 하고 말이다. 폴란드 영화감독 파벨 파블리코프스키의 작품은 로 처음 접했는데, 흑백으로 촬영된 점과 가로:세로=1.2:1 비율로 된 화면을 쓴다는 것이 서로 공통적이다. 뿐만 아니라 소재도 비슷하고 '선율'이 가득한 화면도 닮았다. 가 냉전 속에서 세파에 휩쓸려 난파당하는 한 연인의 사랑을 다룬다면, 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부모님의 족적을 따라가는 한 수녀의 이야기를 다룬다. 에서는 두 연인의 사랑을 통해 유럽대륙에 거칠게 드리워진 육중한 철의 장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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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못난 쏨뱅이일지라도일상/film 2019. 4. 30. 23:35
‘다름’이라는 주제는 내게 가장 어려운 주제 중 하나이다. ‘다르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다름을 인정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다름’을 규정하는 시도는 실로 다양한 영역에서 이루어진다. 가령 ‘평등’이라는 개념은 절대적 평등과 상대적 평등으로 나누어 각각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늘 첨예하게 대두되는 문제는 절대적 평등과 상대적 평등, 이 둘을 나누는 문제가 아니다. 과연 어느 선(線)까지를 상대적인 차이로 수용할 것인지를 정하는 문제야말로 지난(至難)한 문제이다. 꼭 이러한 철학적 논의가 아니라 하더라도, 누군가에게는 쌀쌀한 날씨를 누군가는 후텁지근하다고 느낄 수 있고, 누군가는 불쾌해 하는 일을 누군가는 아무렇지 않게 여길 수 있는 것처럼 아이러니한 상황은 일상에서도 쉽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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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얼굴의 히어로일상/film 2019. 4. 14. 16:27
라는 제목부터가 시선을 사로잡았던 영화로, 금요일 퇴근길 이 영화를 보았다. (아마도 직위해제된 상태인 듯한) 경찰 한 명(아스게르)이 전화로 신고를 접수하고 수리하는 다소 부산스러운 장면과 함께 영화의 도입부가 시작된다. 영화가 스릴러물이다보니 '신고'라는 소재를 토대로 어떤 이야기가 전개될지 기다리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계속 기다려도 영화의 장소에 변화도 없고 경찰은 계속 신고를 수리하기만 한다. 정확히 어떤 장면을 포착해야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잡을 수 있을까 생각을 하는 순간, 아스게르가 한 여성이 납치되었다는 신고를 접하면서 긴장감이 고조된다. 그렇다. 이 영화는 일체 장소의 이동없이 협소한 사무실을 배경으로 아스게르의 목소리와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긴박한 목소리만을 도구 삼아 이야기를 전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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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지식인의 허언(虛言)일상/film 2018. 9. 11. 23:22
SQUARE n. a person who is conventional or conservative in taste or way of life 1. 야만과 문명 i) 새로운 기획전시를 홍보하기 위한 광고에서 연출가들은 폭파되어 사라지는 굶주린 여자아이를 등장시킨다. 금발의 서양소녀가 뜬금없이 폭파되는 장면은 정말 연출가들의 의도에 부합하는가? 야만스러운 이슬람 문명에 속수무책으로 도전에 직면한 서양세계를 말하고 싶기라도 했던 것인가? 영상에서 소녀를 무참히 제거해버리는 표현방식은 과연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옹호될 수 있는 것인가? ii) 크리스티안은 만찬행사에 행위예술가를 초대한다. 분노에 가득찬 유인원을 연기하는 이 행위예술가는 어느 순간부터 예술과 현실의 경계를 넘어서기 시작하며, 만찬에 초대된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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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통일상/film 2018. 8. 31. 11:53
를 통해 이 감독을 처음 알게 되었고, 당시 영화를 재미있게 봤던 기억이 있어 를 찾아보게 되었다. 1. ZOOM zoom ZOOM 영화는 광장에서 시작해서 광장에서 끝난다. 영화는 두 번째 장면에서―영화의 첫 장면은 딸과 아버지가 눈밭을 걷는 장면이다― 사람들이 오가는 활기 넘치는 광장을 보여주었다가, 알아차리기 어려울 정도로 천천히 줌을 당겨 이 영화의 주인공 델마에게 초점을 맞춘다. 이 영화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기존에는 영화에는 자주 사용되지 않는 촬영기법이 활용된다는 점이다. 인물을 최대한 클로즈업 해서 화면에 담았다가도 어떤 풍경을 담을 때에는 매우 넓은 화면을 쓴다. 이런 식의 표현기법으로 인해, 인물이 강조된 장면에서는 인물의 심리상태에 집중하고 풍경이 담긴 장면에서는 무슨 전조(前兆)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