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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동산, 바람을 모으는 곳여행/2021 늦겨울 작은 여행들 2021. 4. 3. 18:27
영양에 왔으니 영양이 궁금하다. 그렇게 해서 영덕을 가기에 앞서 들른 곳이 맹동산 일대에 자리잡은 영양 풍력발전소다. 숙소가 위치한 입암면으로부터 직선거리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지만, 풍력발전단지까지 가는 데 한 시간 남짓 시간이 걸렸다. 이 일대는 사과 농사가 잘 되는지 어딜 가도 사과 나무가 흔하다. 나이가 어린 사과나무들은 한창 손질을 받고 있는 듯 모양이 제각각이고, 다 자란 사과나무들은 여러 개의 와인잔을 찍어낸듯이 쌍둥이처럼 똑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겨울 산책」에서 데이비드 소로가 찬탄했던 개성 있는 야생사과와는 거리가 멀다. 저마다 재능이 다른 아이들이 평범한 어른이 되어가는 인간의 모습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이 고장에 온 이상, 이날 오후 영덕에서 청송으로 가는 길에 국도변에서 판매중인 사과 한 박스를 놓칠 수는 없었으니...
풍력단지에 가까워질 수록 허공에 우윳빛깔의 터빈과 그 주위를 유유히 돌아가는 날개가 보인다. (가까이 가서 보면 날개는 매우 빠르게 돌아간다.) 비현실적으로 거대한 구조물이 사라졌다 나타났다를 반복하는 사이 탑의 밑둥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데, 생각보다 크기가 커서 높이가 족히 산 하나만큼은 될 것 같다. 이제는 내비게이션으로도 길이 나오지 않는 풍력단지 안으로 들어섰다. 차에서 내려 발전단지 일대를 내려다보기 위해 갈아엎은 배추밭처럼 생긴 둔덕을 오르는데 정면으로 불어닥치는 바람이 매섭다.차를 타고 한 번 더 자리를 이동하고, 정자(亭子)가 있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가만 보니 어디서 강아지 세 마리가 우리를 쫄래쫄래 따라왔다. 전형적인 백구 얼굴인데, 아마 발전단지 초입에 사무실로 보이던 곳에서 밖에 두고 기르는 강아지인 모양이었다. 어떤 강아지는 목줄을 하고 있고, 어떤 강아지는 몸집이 조금 작다. 우리집 강아지와 달리 세 마리 모두 낯을 전혀 가리지 않아서, 사진을 찍는 내게 다가와 쉴새없이 아양을 부린다. 저희들끼리 신나서 부딪히며 놀기도 하고, 나한테 다가오더니 대뜸 배를 뒤집고 드러누워 배를 쓸어달란다. 늦겨울 새하얀 태양 아래서 바라보는 풍력단지는 조금 쓸쓸하지만, 이 세 마리의 강아지가 풍경의 온도를 어루만진다.
팔각정에 앉아서 한참 풍경을 바라보다가 다시 차를 타고 올라왔던 산길을 되돌아 내려간다. 세 마리의 강아지는 차의 왼편에 쏙 달라붙어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우리를 따라온다. 우리가 너무 빨리 떠나서 아쉽다는 것인지, 잘 가라는 인사를 해맑게 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행여 굴러가는 타이어에 다칠까봐 걱정이 되었다. 사무실이 있는 가건물과 강아지집 앞을 지나칠 즈음이 되어서야 녀석들도 따라오기를 멈춘다. 백미러로 바라본 강아지들은 저희들끼리 혀로 핥아주고 장난치며 다시 자신들의 세계로 되돌아가 있었다.'여행 > 2021 늦겨울 작은 여행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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